31 동구러문헌

서로박: 자먀찐의 우리들 (2)

필자 (匹子) 2022. 10. 7. 20:41

6. 알프레트 쿠빈의 『세상의 다른 측면』: 자먀찐에게 영향을 끼친 직품은 아무래도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 알프레트 쿠빈의 『세상의 다른 측면 Die andere Seite』일 것입니다. 쿠빈의 상상 소설은 1909년에 발표되었는데, 여기에는 디스토피아의 이중적 가상이 설계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주인공인 “나”는 친구의 부름을 받고 아내와 함께 동방의 사마르칸트라는 오지 (奥地)로 떠납니다. 작품은 기괴한 꿈의 세계, 파테라스 그리고 미국인 헤르쿨레스 벨이 설계한 질서와 행복의 파괴적인 제국을 서로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두 국가의 묵시록적 투쟁은 결국 세계의 몰락으로 귀결됩니다. 이로써 세상은 광활하고도 황량한 폐허의 영역으로 귀결됩니다. 한마디로 알프레트 쿠빈은 데미우르고스를 자웅양성의 존재로 형상화시킴으로써, 결코 합일을 이룰 수 없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 속성 내지 20세기 초의 세기말의 유럽의 분화된 현실을 문학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이후에 태동할 디스토피아 문학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됩니다.

 

자먀찐 역시 쿠빈의 작품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련의 변혁 과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품을 집필할 무렵 자먀찐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투쟁의 이단자”로 간주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자먀찐의 작품을 가치중립적으로 그리고 공정하게 평가하지 못하게 하는 악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자먀찐은 우연한 기회에 어느 공개적 석상에서 자신의 원고 일부를 낭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소련에서 책으로 간행될 수 없었습니다. 자먀찐은 자신의 원고를 비밀리에 영국으로 보냈는데, 원고는 영어로 번역되어 1924년에 처음으로 런던에서 간행되었습니다. 1929년 그리고 1971년에는 불어판이 간행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원본 원고는 유실되었는데, 50년대 초에 누군가가 자먀찐의 친필 원고의 복사본을 뉴욕으로 보내, 1952년에 러시아의 원본은 뉴욕에서 간행되었습니다.

 

6. 국가 권력, 회색의 푸른 단지: 그렇다면 자먀찐의 작품 ?우리들? (1920)은 무엇을 다루고 있을까요? 무대는 어느 이름 모를 미래 사회입니다. 사람들은 지난 200년 동안 전쟁을 치렀으며, 최근에 하나의 혁명을 경험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장벽으로 차단된 도시 국가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집들은 모두 유리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기하학적으로 축조된 유토피아의 공간과 다를 바 없습니다. (Jens V: 994). 어느 권력자는 과학 기술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의 공간인 “회색의 푸른 단지”를 만들었습니다.

 

자먀찐은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국가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모든 도로는 직선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직선이야 말로 가장 훌륭한 신이며, 신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철저한 규칙을 따르며,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살아갑니다. “회색의 푸른 단지”의 국가에서는 개인은 없고, 우리만이 존재합니다. 유일 국가의 권력자는 자신을 “선을 베푸는 자”라고 공언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전체주의적 질서 속에 살아가기를 유도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간의 자유가 제로라면, 그것은 범죄가 아니다. 인간을 범죄로부터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그들을 자유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아무런 영혼을 지니지 않고, 아무 감정 없이 맡은 바 책무만 수행하면 족하다고 합니다.

 

7. 통제된 삶, 틀에 짜인 일상생활: 회색의 푸른 단지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이름을 지니지 않습니다. 그들은 번호로써 자신을 소개합니다. 게다가 동일한 유니폼을 걸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실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집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직장 생활과 사생활 사이의 구분도 없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어떤 비밀이 존재할 리 만무합니다. 취침시간도 분명히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취침시간에 거리를 배회하는 자는 경범죄로 처벌받게 됩니다. 가족제도는 이미 파기된 지 오래되며, 성적 욕망 역시 “선을 베푸는 자”의 일괄적 정책에 의해서 조절됩니다. 이를테면 모든 “남성 숫자”는 당국의 지시에 따라 어느 “여성 숫자”와 성적으로 결합할 수 있으며, 모든 “여성 숫자” 역시 제각기 어느 “남성 숫자”를 선택하여 살을 섞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성행위는 쾌락 추구가 아니라, 하나의 욕구 충족 내지는 배설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8. 통제된 성생활: 성문제를 관장하는 실험실의 담당자는 모든 개별적 인간 숫자들의 성적 호르몬 수치를 세밀하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 숫자들은 특정한 날 (섹스 데이)에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알약 그리고 며칠에 아무개 숫자를 만나서 성교하라는 명령문 한 장을 받게 됩니다. 바로 이 날이 되면, 개별 침실에는 밖에서 들여다볼 수 없도록 일시적으로 장막이 가려집니다. “선을 베푸는 자”는 다음의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즉 성이 억압되면 인간 숫자들의 억압된 심리적 에너지는 다른 곳으로 돌출해 나온다는 사실 말입니다. “선을 베푸는 자”는 거대한 에너지가 행여나 권력자에 대한 저항의 힘으로 돌변할까 두려워, 사전에 이를 차단시키려고 섹스 데이를 창안하였습니다. (Samjatin 84: 26). 성의 통제는 플라톤의 『국가』에 이미 반영된 정책입니다. 플라톤 역시 가족 제도를 철폐하고, 국가에서 자신 출산 내지 개개인의 성을 관리해야 한다고 설파한 바 있습니다. 『우리들』에서는 개개인의 사적 욕망 역시 국가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 통제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사랑, 신뢰 그리고 안온함의 감정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9. 로켓 기술자 D-503: 작품의 화자이자 주인공은 로켓 기술자 D-503입니다. 그는 “인테그랄 Integral”이라고 불리는 우주선을 개발하는 기술자입니다. 이렇듯 개개인은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지니지 않으며, 숫자로 명명되고 있습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우주를 정복하려 하는데, 주인공은 과학자이자 수학자로서 우주선 개발에 직접 참가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주인공이 남긴 40장의 회고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설은 주인공의 용모에 관해 상세히 언급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가 32세의 준수한 사내이며, 자신의 손등의 털을 무척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D-503 주위에는 자신을 감시하는 여자, U가 항상 서성거립니다. 주인공 D-503은 처음에는 국가에 충성하는 체제순응적인 숫자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서서히 체제를 비판하는 개인으로 변합니다. 바로 이 점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오웰의 『1984년』의 주인공에게서도 동일하게 엿보입니다.

 

10. 연정을 품는 것은 하나의 범죄로 간주된다.: 소설 내의 갈등은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사랑의 감정을 품은 데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어느 날 아름다운 여자 I-330를 만납니다. 그미는 차가운 인상을 풍기지만, 다른 여자보다 더 강력한 오르가슴을 느끼는 열정적이고 대담한 여성이었습니다. D-503은 마치 화산처럼 자신의 몸이 활활 불타오르던 그미와의 정사를 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기억은 어느새 I-330에 대한 연정으로 뒤바뀌게 됩니다. 주인공은 U에게 부탁하여 그미를 다시 한 번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당국에 의해 섹스의 허가를 받지만, I-330은 만남의 자리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기이하게도 밀고 당기고를 반복합니다. 주인공이 다가가면, I-330은 그로부터 멀어지고, 그미를 잊으려 하면, 그미는 불현듯 주인공 앞에 출현합니다. 주인공은 그미의 연인이 되지 못하리라는 상념 때문에 몹시 슬퍼합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우연히 오래 된 집에서 다시 만납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연인 관계를 확인이라도 하듯이 마치 맹수 두 마리처럼 거칠기 이를 데 없는 육체적 사랑을 나눕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주인공의 곁에는 I-330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미는 주인공이 잠든 사이에 자취를 감추었던 것입니다.

 

11. 주인공, 영혼을 지닌 채 사랑의 감정을 느끼다: 몇 달 후에 주인공은 어떤 치유될 수 없는 병을 얻게 됩니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는 “영혼”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감정은 주인공이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주인공의 마음에 지고의 기쁨과 고통을 안겨줍니다. 사랑의 성취에 기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고통을 느낀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즉 주인공은 모든 감정과 감각을 억압하는 국가의 질서 메커니즘에 대해 서서히 거부감을 느끼게 된 것이었습니다.

 

D-503의 견해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사항이 논리적 균형을 앗아간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랑과 굶주림이라고 합니다. 인간 삶의 행복을 완전히 성취하려면, 근본적으로 이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이 모든 사항을 오로지 I-330을 통해서 접하게 됩니다. “영혼”을 지닌다는 것은 사랑과 미움의 감정을 지닌다는 것을 뜻하며, 이는 미래 사회에서는 추호도 용납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사랑과 미움의 감정을 느끼면서, 주어진 체제를 점차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행여나 타인이 자신의 일기장을 훔쳐볼까 전전긍긍합니다. 만약 일기장의 내용이 백일하에 공개되면 자신이 당국에 잡혀서 고문을 겪다가 끝내는 처형당할 게 자명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