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박설호: (2) 사랑은 이별을 연습하는 격정적 트레몰로. 슈테핀의 시

필자 (匹子) 2022. 10. 18. 18:36

2  “축축해졌는가 하고 그가 처음 물었을 때”

 

너: 일단 작품 「축축해졌는가 하고 그가 처음 물었을 때」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편의상 제1행을 제목으로 붙여보았습니다. 기이하게도 슈테핀의 작품에는 제목이 없습니다.

나: 슈테핀의 시작품은 주로 브레히트의 소네트에 대한 답신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작품 발표를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축축해졌느냐 하고 그가 처음 물었을 때

그게 대체 뭐람? 하고 생각했어요.

한 번 살펴볼까? 하고 다시 물었을 때

매우 부끄러웠어요, 축축해졌으니까요.

 

맨 처음 나를 가지게 되었을 때

그는 물었지요, 감이 오는가? 하고.

김이 무엇인지 나는 몰랐답니다.

대답하지 않았어요, 감이 왔으니까요.

 

나이 어린 소녀처럼 그리 행동했어요.

(정확히 4년 반 동안 한 남자와

그런 식으로 동거하게 되었어요.)

허나 그를 통해 -그를 위해- 여자가 되었어요.

 

그와 함께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고 묻지 않았어요.

마침내 지금을 즐기는 방식을 배웠어요.

사랑이 변화될 수 있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박설호 역)

 

Als er mich zum ersten Male fragte

Ob ich naß sei, dacht ich: Was ist das?

Als er fragte, ob er nachsehn sollte

Schämte ich mich sehr. Ich war ja naß.

 

Und er fragte, ob ich kommen würde

Als er mich zum ersten Male nahm.

Ich wußte nie, daß ich auch kommen könnte.

Doch sagte ich ihm das nicht. Denn ich kam.

 

Ich benahm mich wie ein kleines Mädchen.

(Dabei lebte ich doch schon genau

Viereinhalbes Jahr mit einem Manne.)

Doch durch ihn erst wurd ich - für ihn - Frau.

 

Ich begann, mit ihm auch mich zu lieben

Und ich fragte nicht mehr: Was kommt dann?

Endlich lernte ich, das Jetzt auskosten

Ohne Furcht, daß es sich ändern kann.

 

너: 섹스는 말로 표현하기가 참으로 껄끄러운 것입니다. 첫 경험을 이렇게 진솔하게 서술한 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나: 동의합니다. 그런데 시인의 첫 경험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어요. 슈테핀은 브레히트와 만나기 전에 헤르베르트 딤케 (1902 - 1944)라는 젊은이와 동거한 적이 있는데, 너무 가난해서 아기를 낳을 수 없었어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젊은이들은 대체로 오르가슴이 무엇인지 처음에는 잘 모릅니다. 물론 간접 경험을 통해서 접할 수는 있지만, 성의 쾌감은 대체로 파트너와의 개별적 접촉을 통해서 생성되는 것입니다.

 

너: 시적 자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허나 그를 통해 -그를 위해- 여자가 되었어요.

나: 이러한 발언은 처음부터 성행위에 관한 모든 생물학적 논의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젠더 Gender는 고착된 문화의 구성체가 아니라, 오히려 성적 접촉을 통한 개인적 감흥에서 비롯하는 역동적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너: 여성성은 생물학적으로 미리 주어진, 미리 구조화된 사실적 토대가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의 체험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말씀이지요?

 

나: 그렇습니다. 한 인간이 성적 접촉을 통해서 자극받게 되면, 내면 깊숙한 곳에서 어떤 떨림을 감지합니다. 그것은 주체와 결부된 감성적 정체성을 녹여버릴 수 있습니다. 슈테핀 역시 한 사람이 사랑의 주체, 다른 한 사람이 사랑의 객체로 기능하는, 이른바 양극으로 분할된 애정 관계를 거부하면서 상호성의 만남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너: “그와 함께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어요.”라는 구절이 이를 반증해줍니다.

나: 네, 그렇지만 그미는 각자 이기적으로 성을 즐기자는 브레히트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각자의 일방적인 쾌락 추구 대신에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슈테핀에 의하면 자신의 “갈망을 내세우지 않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