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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호프만슈탈의 그림자 없는 여인

필자 (匹子) 2022. 10. 2. 10:12

오스트리아의 시인, 극작가, 평론가, 후고 폰 호프만슈탈 (Hugo v. Hoffmannstahl, 1874 - 1929)의 오페라, 「그림자 없는 여인 (Die Frau ohne Schatten)」은 1911년에서 1914년 사이에 탈고되었다. 리햐르트 슈트라우스는 여기다 곡을 붙였으며, 1919년 10월 10일 빈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수년에 걸쳐 작가는 동화의 소재로 계속 작업하여 1919년에 비로소 한 편의 오페라 텍스트를 완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림자 없는 여인은 유령 왕의 딸이다. 유령 왕은 결코 죽지 않는 존재들이 거주하는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 그미가 한 마리의 하얀 가잴 영양으로 변신했을 때, 남동쪽 섬나라의 황제는 그미를 체포하였다. 그미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황제는 그만 넋을 잃고 만다. 그미 역시 기이한 만남이지만, 황제를 사랑하게 된다. 두 사람은 결혼한다. 이에 반해 그미의 유모는 인간을 증오한다. 유모는 12월의 마지막 3일 동안 황제 부인이 전혀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도록 조처하려 한다. 이를 명령한 자는 다름 아니라 유령 왕이었다. 유령 왕이 그렇게 저주를 내리게 되면, 황제는 돌로 변하고, 자신의 딸은 유령의 나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황제 부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그림자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미는 인간들과 동류의식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황제 부인은 사랑하는 남편을 저주로부터 보호하려 한다. 그러나 남편은 어느새 돌로 변해 있다. 이제 와서 그미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일밖에 없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인간의 그림자를 얻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생명의 물을 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그미는 인간이 마주치는 “죽음의 동굴” 속으로 과감하게 내려간다. 이때 그미는 어느 염색 공장 부인과 마주친다. 공장 부인에게는 착하지만 못생긴 남편이 있는데, 남편으로부터 자식을 낳아달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염색 공장 부인은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유모와 그미는 다음의 사실을 예리하게 간파한다. 즉 염색 공장 부인이 부귀영화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를 갈망하고 있다는 점 말이다. 유모는 3일 동안 일하여 염색 공장을 차리도록 염색 공장 부인을 도와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모는 염색 공장 부인에게서 그림자를 구매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염색 공장 남자는 자신의 부인을 끝내 찾아낸다. 부인이 자신의 그림자를 황제 부인에게 팔겠다고 말했을 때, 그는 아내를 죽이려고 한다. 이때 정령들의 힘이 작용하여, 두 사람 모두를 어느 동화 속의 산 속으로 이전시킨다. 염색 공장 부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남편의 의도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눈물을 흘린다. 이때 주인공인 황제의 부인은 인간의 피로 더럽힌 그림자를 가지려하지 않으면서, 모든 잘못이 자신의 욕심 때문에 빚어졌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그미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그림자 그리고 (자신의 남편인 황제를 구할 수 있는) 생명의 물을 포기하게 된다. 이로써 그미는 모든 시험을 극복하게 되고, 이미 돌로 변한 남편을 구원하게 된다. 동시에 그미는 그림자를 던진다. 이때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목소리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울려 퍼진다.

 

호프만슈탈은 동화의 모티브를 고치 Gozzi의 마력적인 작품 그리고 모차르트의 「마술 피리 Zauberflöte」에서 빌었으며, 수많은 고전 작품들에서 여러 가지 범례들을 찾아냈다. 오페라에서 “인간의 연기”는 유령에게는 “죽음의 공기”에 해당하고, 황금의 생명수는 죽음보다도 더 끔찍하다고 묘사되고 있다. 이로써 동화는 다음의 가설을 그대로 확인시켜준다. 즉 유령들과 인간의 생명은 상호 대립되는 게 아니라, 서로 돕고 사랑하는 존재들이라는 가설 말이다. “그림자”가 상징하는 바는 인간성 그리고 결실 맺음, 죽어야 하는 운명 그리고 죄 등이다. 죄를 모면하는 인간은 하나도 없다. 예외가 있다면, 그 인간들은 오로지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은 염색 공장 부인과는 달리 자신의 그림자를 벗어 던지려하지 말아야 한다. 주어진 죽음의 가르침에 순응하는 인간만이 생명의 물을 얻을 수 있고, 돌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 존재를 구원하는 것은 황제의 “열정적으로 즐기는 사랑”이 아니라, 염색 공장주인 앞에서 죄를 인정하고 부인의 그림자를 의식적으로 포기하는 행위 바로 그것이다. 부인의 심장에 감긴 매듭을 풀지 못하는 황제는 동굴 속에서 어떤 가르침을 체험한다. 즉 혼란과 수치 그리고 더러움은 깨달음을 위해 필요하다는 가르침 말이다. 문제는 자신의 마음을 극복하는 일이다.

 

호프만슈탈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즉 탄생에 의해서 조건화되는, 인간성과 관련되는 모든 사항은 모성에 대한 찬양으로 해명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적인 무엇의 알레고리이다. 모든 지상 존재의 사슬은 영원히 비밀스럽게 엉켜 있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어떠한 무엇도 그 자체 고유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을 어떤 다른 무엇에 의해서 받아들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