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박설호: (1) 사랑은 이별을 연습하는 격정적 트레몰로. 슈테핀의 시

필자 (匹子) 2022. 10. 17. 09:51

1. “즐기면서 함께 창조하기”

 

: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베르톨트 브레히트 (1898 - 1956)의 연인이자 공동 작업자, 마르가레테 슈테핀 (1908 - 1941)의 시편을 다루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슈테핀의 시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 슈테핀이 남긴 시작품은 불과 15편에 불과합니다. 작품들은 1991년에 간행된 슈테핀의 작품집 『공자는 여성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에 실려 있습니다. 시작품을 살펴봄으로써 시인의 삶과 문학을 논하고 싶습니다.

 

너: 작품들은 주로 사랑과 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흔히 성격은 성(性)의 격식(格式)이라고 하지요?

나: 그렇다고 무조건 성과 직결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성이 인간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지만 말입니다.

너: 그런가요? 성격은 심리학에서 거의 부정적으로 이해되는 것 같은데요?

나: 네, 성격은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크고 작은 경험들은 아시다시피 개개인의 기억 속에 축적되지요. 이로써 인간의 특정한 성격이 형성됩니다. 인격은 자기 소외라는 지점 위에 세워져 있지요. 이를테면 콤플렉스는 감정의 뒤엉킨 실타래 내지는 성격의 모난 부분으로서 어떤 병적 증상과 같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약화하는 길이 당사자의 심리적 치유의 방향이라고 합니다.

 

: 가령 창작 행위는 자기 치유의 과정일 수 있겠지요? 독자는 슈테핀의 작품을 접하고 자신의 심리적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그미의 삶에 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나: 그미는 1908년 베를린 리히텐베르크의 가난한 노동자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대학 진학이 불가능했지요. 회계와 상업 연수에 참여했고, 야간학교에서 타자와 속기 그리고 여러 외국어를 배웠습니다. 브레히트를 만나게 된 것은 1931년이었습니다. 33세의 사내와 23세의 처녀는 이때부터 급속도로 가까워졌습니다.

 

: 브레히트의 두 번째 아내인 헬레네 바이겔 (1900 - 1971)은 당시의 염문(艶聞)을 접하고 이혼을 결심했지요?

: 그렇지만 이혼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브레히트 주위에는 루트 베를라우 (1906 - 1974)라는 연인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고난의 망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지요. 1933년에 독일에는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이 발생했는데 히틀러는 그 배후를 사회주의 정당 및 비판적 지식인들을 지목했습니다. 그래서 브레히트의 가족들은 서둘러 독일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웃 나라를 전전하다가 그들이 정착한 곳은 덴마크의 스벤보르였습니다. 브레히트는 30년대 초에 슈테핀에게 열광했습니다. 애인으로서 그리고 창작의 협조자로서 걸출한 인재였기 때문입니다.

 

: 한 가지 사항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대학의 문턱에도 가보지 않은 여성이 어떻게 천재 작가를 도울 수 있었을까요?

나: 인품과 문학적 능력은 학벌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슈테핀은 놀라운 어학 실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독서를 통해서 문학적 소양을 쌓았지요. 말하자면 브레히트가 그미의 천재성을 알아본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바이에른의 부유한 제지공장주의 아들이었던 그는 노동자들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이때 슈테핀은 베를린 노동자의 생활환경, 애환 그리고 해원 등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