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Bloch 번역

블로흐: (2) 가짜뉴스와 왜곡뉴스를 생산하는 신문

필자 (匹子) 2025. 1. 23. 10:33

(앞에서 계속됩니다.)

 

새 술은 새 부대라고 두 가지 수단이 서로 결착되어 있다. 그 하나는 광고를 통해서 가능하게 된다. 대대적인 광고는 하나의 정책을 중단 없이 밀어붙이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다. 오늘날 의사와 변호사는 국가의 도움 없이 함부로 일할 수 없다.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은 그야말로 서서히 진척되고, 경쟁은 더욱더 심화하여, 개별적 가정 곳곳으로 침투해 있다. 그렇기에 국가의 수장이 광고를 통해서 개별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활용하는 일은 새로운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예컨대 티눈 연고를 판매할 때 사람들은 마치 정부에서 이를 권장하여 놀라운 업적을 거두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고객들은 문이 열리자마자 쏜살같이 약국 앞에 줄을 서곤 한다. 그렇게 되면 무혈(無血) 의사의 이름은 널리 퍼지게 된다. (역주) 우매한 사람들은 광고 그리고 전문가의 논평을 곧이곧대로 믿고 이를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이 눈앞의 이득에 판단력을 상실하고, 전문가의 교활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또 다른 수단은 구태의연하기 이를 데 없다. 자유 시민이 활보하던 시대에는 학교라든가 극장이 인민들에게 바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변론술과 관련되는데, 사람들은 마치 소피스트들처럼 언어 기술을 통해서 인민을 설득하려고 했다. 이는 진리를 통해서라기보다는 기습적인 언변을 통해서 가능했다. 학교와 학부모 사이의 협의에서 중요한 것은 심리적 허풍이었을 뿐, 빛과 그림자 사이의 논리적 구분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방청객을 무시하는 처사라든가, 사안에 대해 냉소적 태도 등이 바로 일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전문가의 발언 가운데에는 소피스트의 궤변이 아니라,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의 정제된 논평도 있다. 필리포스 2세가 다스리는 마케도니아를 침공하자고 하는 데모스테네스의 위대한 연설이라든가, 두 명의 윌리엄 피트가 18세기 영국 의회에서 행한 연설 등은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연설문에 해당한다. 그 밖에 프랑스의 드레퓌스 법정에서 졸라와 드레퓌스를 변호한 페르낭 라보리의 변론의 문장 역시 여기에 속한다. (역주) 페르낭 라보리 (Fernand Labori, 1860 – 1917)는 프랑스의 법률가, 저널리스트였다. 그는 법정에서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무죄임을 밝혀낸 사람이다.

 

그렇지만 ”오 남자들이여“라는 데모스테네스의 발언은 남자가 남자들에게 전하는 군인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소피스트의 궤변이 아니라, 미라보, 로베르트 블룸, 레닌 등이 역설한 실질적 빛 내지는 불길을 부추겼다는 점에서 동일한 가치의 로고스를 표방한다. (역주)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했을 때 왕국은 국민회의를 해산시키려고 했다. 제3신분 대표였던 오노레 미라보 (1749 – 1791)는 놀라운 연설로 국민회의 해산을 차단했다. 작센 출신의 독일 혁명가인 자유주의자 로베르트 블룸 (1807 – 1848)는 1848년 프랑크푸르트 국민회의의 창립 멤버로서 명연설을 남겼으나, 그해 10월에 보수 반동차의 탄압으로 빈에서 처형되었다. 블라디미르 레닌 (1870 – 1924)은 1919년 5월 1일에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혁명의 당위성에 관한 명 연설을 남겼다. 세 사람의 연설은 의향에 있어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 다시 말해 연설의 내용과 형식은 동일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들에 비하면 여기서 말하는 파시스트의 의심스러운 연설은 그야말로 소피스트의 궤변을 방불케 하는데, 과거 로마의 가식적 치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전혀 같은 특징을 지니지 않는다.특히 그들의 바로크 식으로 과장된 표현은 진리를 비켜가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그들의 비밀스러운 목적을 감추고 있다. 이를테면 예수회 수사들은 18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그들 교리에 관한 문헌을 출판한 바 있는데, 여기에는 기이하게도 의식적 몽롱함만이 실려 있을 뿐이다. 이 문헌에는 낯설기 이를 데 없는 ”개념 그룹quaternio terminorum“으로부터 ”이형화(異形化, Heterozetesis)“에 이르기까지 이런 식의 뱀의 간교한 혀로써 연설한 자는 로마의 안토니우스였으며, 가장 명예로운 인간인 브루투스가 아니었다. (역주) 기원전 59년에 브루투스는 카이사르가 왕위를 노리고 있다고 판단하였고, 그를 살해하였다. 로마 시민들은 갑작스러운 카이사르의 죽음 앞에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 이때 브루투스는 살해의 이유를 설명하며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안토니우스는 로마 시민 앞에서 추도사를 낭독하였다. 그는 카이사르의 유언장을 공개하고, 선혈이 낭자한 카이사르의 주검을 보여줌으로써, 지지 세력의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실러의 작품 「제네바 출신 피에스코의 반란Die Verschwörung des Fiesco zu Genua」에 등장하는 주인공 피에스코는 고대의 소피스트 사상에 도취해 있다. 그에 반해서 등장인물 베리나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킨다. 베리나는 말 대신 행동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리부동하게 드러낸다. (역주) 실러의 초기작 피에스코의 반란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피에스코는 친구들과 함께 제네바의 독재를 종식한다. 그러다 권력을 탐하게 되자, 베리나와 친구들에 의해 처형당하는 비운을 맞이한다. 자고로 거짓된 미사여구를 물리치는 것은 참된 어눌함이다. 한비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교묘한 속임수는 치졸한 진실만 못하다(巧詐不如拙誠).”

 

거짓된 발언은 어떤 확신에 가득 찬 바보 멍청이를 전제로 한다. 허튼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약속에 맹종하거나, 황당한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그의 음색은 참되지 못하며, 최소한 연극 대사로서도 적절하지 못하다. 그가 큰 소리를 내지르며 떠들어도 그 내용은 소시민의 얄팍함을 드러낼 뿐이다. 이로써 사람들은 쥐 한 마리가 행하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조소를 터뜨리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주관적이고 객관적으로 은폐된, 진정한 열정적 언어의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간파하게 된다. 그것은 탁월한 언변 내지는 데모스테네스라든가 레닌 등의 남성적 말솜씨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전제주의의 이성적 도구는 한마디로 암거래와 부정특혜의 발언이다. 권력 기반이 확고하지 않을 때, 혹은 –1930년대 독일의 경우처럼- 억압 기제 하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술수를 부리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마음을 휘감을 수 있는 것은 달콤한 사탕발림의 선동이다.

 

(3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