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가스카르의 해안
출항에서 입항까지
박설호
모딜리아니의 「여자」 멋진 목과
긴 다리를 좋아하던 미술 선생님
미술실 복도에 윤동주의 「소년」을
걸며 들려주던 말씀 “가을 하늘은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바다.”라고
그래 푸르렀지 마음속 내 화폭은
오른쪽은 안개에 가려 있는 오륙도
왼쪽엔 정박 중인 외항선 몇 척
출렁이는 파도의 하얀 젖가슴 만지던
방파제 가운데에는 갈매기섬
해안의 삼층 바위 오 설레던 유년이여
닻은 흐릿한 기억 속으로 가라앉고
놀란 등 푸른 물고기의 살점에서
떨어져 나온 추억의 비늘 하나
그때 나는 기암절벽의 해안에서
수영을 배웠지 형은 겁먹은 나의 몸을
물속으로 밀치고 고래의 거대한
입으로 빨려간 요나 사지가 부들부들 저리는
물병 인공호흡으로 게워내던 나의
두려움 정말 고래의 배 내부는
어둠의 심연과 같았지 바다 없이는
상상할 수 없던 나의 꿈 나의 삶
죽을 때까지 선원이기를 맹세하던 그날 밤
처녀들은 가난으로 매미노래 부르고
뱃놈들은 만선을 위해 술독에 빠지고
선창에 열 지은 유암화명(柳暗花明)의 붉은 빛
술 취한 내 눈에는 그저 휘황찬란한
샹들리에 네덜란드 튤립꽃으로 비쳤어
별장이나 보트에서 느긋하게 즐길
선남선녀와의 달착지근한 저녁 식사
첫 번째 출항은 그렇듯 애송이에게
어설픈 두근거림과 포부 안겨주었지
그러구러 헤엄쳐 지나간 수많은 세월
다시 만난 항구는 변함이 없고
옛날의 어둠은 그대로 남아 있네
잔잔한 물결은 술 담배 멀리 했는데도
중년의 내 얼굴 마냥 일그러뜨리고
무감어수(無鑑於水)라 나는 정말 나인가 *
회한과 그리움 분노 등은 깡그리
어구와 그물로 변해 태평양 심해 속으로
침잠하고 어느 섬세한 돌고래가 가끔
인간의 꿈을 꾸듯이 바다 위에서
그리워한 이승의 하늘 자락
과거의 나 그대는 정작 나를 아는가
티모르 딜리의 나무에 걸린 흔들침대에서
즐기던 낮잠 시간 왕모기와의 싸움
리우데자네이루의 질펀한 술집 골목
향료 냄새 몽롱한 마리화나 연기에
약혼녀로 착각되던 메스티소 혼혈여자
평생 함께 살자 하던 거짓된 약속
그건 다만 키르케의 망각이었지
그곳 아니면 마다가스카르의 안개 해안
야자 파파야 그리고 망고의 즙액
흙솥으로 구운 신묘한 상어 고기 맛
캐비아 그건 바다 잊으려 하는
멀미에서 깨어나려는 탐닉이었지
나의 낮꿈은 정어리 떼와 함께 헤엄치고
버섯구름 피어오르는 저승꽃 유로파
땅속의 숲이 지상의 숲을 태워버리고
동종 포식하는 흰곰이 절멸될 즈음
발견한 이타카 이곳은 과거의 고향
저곳은 체온이 상승하는 미래의 타향
바이킹의 전사여 항해를 자랑하지 말라
나의 바깥 생활은 그래 우국의 병사
그대에겐 청정 해역의 노닥거림 평생은
일순간 갇혀 있던 해적이 그것이었지
* 무감어수 감어인(無鑑於水 鑑於人): (묵자의 발언) 물이나 거울에 자신을 비추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비추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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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박설호 시집 '반도여 안녕 유로파', 울력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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