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의 시

박설호의 시, '다시 바쿠닌'

필자 (匹子) 2024. 11. 16. 10:45

다시 바쿠닌

박설호

 

기특하게도 학문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하다니

자네도 나처럼 거부당한 식객

자청해서 지구 반을 돌아

서방으로 왔는가

서유럽의 개나 소는 자네가

무얼 위해서 살아가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어

그저 높새바람으로 인한

편두통 걱정만 하지

자네를 맞이해주는 건 오직

눈밭과 전나무 숲이야

그러니 망명의 삶에서

눈보라 나무들만 벗 삼게

저녁에 시간 남으면

TV에서 극동의 소식이나

접하게 빛고을 광주의

광경을 아 섬뜩한

그럼 자네는 깨달을 걸세

세상이 과연 어떤 식으로

구원되어야 하는지를

 

.................

 

박설호 시집: '반도여 안녕', 울력 2024 수록

 

 

 

시작품은 미하일 바쿠닌(1814 - 1876)의 혀를 빌어 나의 망명을 서술하고 있다. 나는 낯선 곳에서 무얼 하고 살아가는가?

 

미하일 바쿠닌은 1849년 유럽 혁명 운동에 가담하다가, 당국에 체포되어 종신형 선고를 받고, 러시아로 이송되었다. 그는 신의 존재를 극렬하게 증오하였으며, 동시에 리바이어던과 같은 국가 자체를 철저히 혐오하는 아나키스트였다. 1861년 8월 8일 그는 몇 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시베리아의 감옥을 탈출하는 데 성공을 거둔다. 굶주림과 추위에 떨면서 그가 맨 처음 도착한 곳은 블라디보스토크였다.

 

언젠가 장준하 선생은 일본 군부대를 탈출하여, 온갖 고초를 겪으며 험준한 산을 타고 중국의 낯선 산하를 혈혈단신 지나친 다음에 독립군을 찾아가는 데 성공을 거둔 적이 있었다. 그의 고달픈 행적은 "돌베개"라는 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장준하: 돌베개 (장준하의 항일 대장정), 돌베개 2015.)

 

바쿠닌은 있는 힘을 다해서 블라디보스토크항을 떠나 일차적으로 일본 열도에 당도한다. 그다음에 미국으로 밀항하는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넌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바쿠닌은 광활한 미국 본토를 거쳐 동부 지역으로 향한다. 그가 보스턴에 도착했는지, 아니면 뉴욕에 당도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어쨌든 바쿠닌은 다시 미국 동부지역에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포르투갈의 리스본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이탈리아로 향한다. 지구를 반바퀴도는 데 무려 1년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그가 어떻게 여행비를 마련했는지, 고난의 방랑 속에서 어떻게 배고픔을 참아내었는지 오늘날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바쿠닌은 이탈리아에서 러시아 폭군의 전제정치를 알리면서, 함께 투쟁하자고 소리 높이 외친다. 그러나 이곳의 노동자들은 남의 나라의 폭정을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제 살기 바빴고, 눈앞의 당면한 저임금 노동 그리고 가난한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바쿠닌은 작전을 바꾸기로 작심한다. 이탈리아 노동자들에게 절실한 것은 저임금 노동 착취와 관련되는 노동 운동이었다. 그제야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바쿠닌과 함께 자본가의 횡포에 대항하여 적극적으로 투쟁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독일에 도착했을 때 유럽 사람들은 한국의 5.18 광주의 비극에 관해 별반 관심이 없었다. 유럽 사람들은 매스컴을 통해서 가난한 국가의 끔찍한 폭정에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나와 상관이 없다. Id est nemo meus negotium” 광주에서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망명의 삶을 통해 한반도 문제와 분단을 극복하는 과업 - 그것은 적어도 유럽에서는 제삼세계의 낯선 비극,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참담함을 되새기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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