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15.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 철학적 발전 단계: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 철학적 발전 단계에 의하면 유년기는 아담으로부터 노아에 이르며, 소년기는 노아로부터 아브라함에, 청년기는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에, 성년기는 다윗의 성장으로부터 바빌로니아 유수 시기까지 이릅니다. 그리고 마지막 두 시기는 다윗의 마지막 생애로부터 예수의 탄생까지, 그때부터 최후의 심판의 날까지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은 신의 나라 그리고 그 붕괴의 역사에 입각한 것입니다. “지상의 국가”는 대홍수에 의해서 멸망하고, “신의 국가”는 노아와 그의 아들에 의해서 생명력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노아의 후손들에 이르러서는 사악한 국가의 저주가 새롭게 득세합니다. 헤브라이어를 사용하던 유대인들은 다시 왕이 타고 다니는 옥좌 중심으로 모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제의 민족, 너희는 내게 성스러운 민족이어야 한다.” 당시 다른 민족들은 악마적 죄악의 권력 국가들에 의해서 피해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특히 아시리아 지역에서 극심하게 나타났습니다. “신의 국가”란 역사 철학의 결론으로서 이해될 수 있으며, 범죄와 폭력을 일삼는 정치 국가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인 셈입니다.
16. 악마의 나라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비판: 기원후 4세기의 상황은 정치와 종교가 아직 동일시되지 않았습니다. 교회와 국가 사이의 관계는 그 당시에는 완전히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권력자의 지배가 신의 국가와는 무관하다고 간주했습니다. (블로흐 2004: 1030). 아우구스티누스는 실제로 교회를 장악한 권력자들과 전적으로 대립하였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속으로 역겨웠지만 겉으로는 로마를 찬양하는 등 영리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신국 론을 집필할 때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에 대한 증오심을 노골적으로 표명했습니다. 오직 예수, 바로 그만이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구원의 역사”만 있을 뿐, “세속적인 국가로 인한 구원화의 역사”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사 속에 나타난 국가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적들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세속적인 국가들은 악마의 나라이며, 로마 역시 여기에 부분적으로 속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에 담겨 있는 이러한 사고는 국가와 타협한 사도 바울과는 달리 거의 혁명적입니다.
17. 자연신과 인간신: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 론』의 마지막 12장을 통하여 천국 그리고 지상의 천국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대 신들에 관해서 서술하면서, 고대의 저술가,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Marcus Terentius Varro, BC. 116 - 27)의 신관 (神観)을 인용합니다. 고대인들의 믿음은 바로에 의하면 어떤 “시적인 신앙religio fabulosa”, 어떤 “정치적인 신앙religio civilis” 그리고 어떤 “자연적인 신앙religio naturalis” 등으로 나누어진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세 가지 신앙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시적인 신앙은 인간의 갈망을 풍요롭게 하고, 정치적인 신앙은 사회 전체의 안녕과 축복을 도모케 하며, 자연적인 신앙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의 구분은 고대인들의 다양한 갈망을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18. 참된 존재자로서의 예수: 고대의 철학자 가운데에서 가장 순수한 “유신론Theismus”을 설파한 사람은 바로 플라톤이었습니다. 신적 존재야 말로 인간에게 가장 심층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전지전능한 존재이며 인간 영혼이 현세에서 방황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신 플라톤주의자들은 인간 영혼이 신적 중개자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몹시 비난하였습니다. 그들은 심지어는 플라톤조차도 사악한 영혼마저 숭배한다고 단언하였습니다. 그들에 비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야훼 신을 숭배하면서도, 신의 중개자를 인정하였습니다. 가령 인간과 신 사이에 가교를 이을 수 있는 하나의 유일하고도 참된 중개자가 존재하는데, 그분이 바로 인간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는 일을 자신의 가장 훌륭한 과업으로 간주하였다는 것입니다.
19. 신의 국가와 악마의 국가: 그렇다면 신의 국가는 악마의 국가와 어떻게 다를까요? 이는 마지막 12권에 차례대로 개진되고 있습니다. 천사의 추락으로 인하여 신의 영역에는 어떤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이로 인하여 신의 영역은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그 하나는 신의 국가이며, 다른 하나는 악마의 국가입니다. 신의 영역에 자리한 균열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아담과 이브 그리고 그들의 후예에 의해 복원되고, 신의 인민에 의해서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이는 오로지 자연적으로 나타난 국가들, 즉 지상의 국가와 천상의 국가를 성스러운 영혼으로 가득 채워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아담과 이브가 천국에서 추방당한 뒤에 은총을 갈구하는 성자들의 공동체는 천사들과 함께 신의 국가를 형성하게 됩니다. “신의 국가civitas Dei”가 원래의 천국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악마의 국가는 “지상의 국가civitas terrena”에 해당합니다. 신의 국가가 신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조직적 원칙으로 삼고 있다면, 세계 국가는 이와는 반대로 자신에 대한 이기적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0. 군주는 강도와 다를 바 없다: 고대인들은 지상의 국가가 얼마나 사악한 탐욕에 집착하는가를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키케로는 자신의 글 『국가론』에서 군주가 백성들의 재화를 마음대로 강탈한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상의 국가를 신랄하게 탄핵합니다. “정의로부터 완전히 등진 지상의 국가들이 과연 강도가 사는 거대한 동굴과 다를까?Remota igitur justitia quid sunt regna nisi magna latrocinia?” (아우구스티누스: IV, 4).
아우구스티누스는 여기서 키케로의 문헌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어느 해적은 알렉산더 대왕을 만나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배 한 척 가지고 도둑질하므로 해적이라 불리지만, 당신은 큰 함대를 가지고 도둑질하므로 황제라고 불립니다.” 말하자면 불법을 저지르며 작은 재물을 강탈하는 자가 해적이라면, 타인의 거대한 재물을 합법적으로 빼돌리는 자가 바로 황제라는 것입니다. 큰 도둑에 해당하는 황제는 합법이라는 이유로 처벌받지 아니하고, 작은 도둑에 해당하는 해적은 불법이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고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했습니다. 국가의 수장이 죄악을 일삼는다면, 백성들은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살아가야 할까요? 국가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비판은 이처럼 신랄합니다.
21. 아우구스티누스의 사회 비판, 실정법의 토대, 신의 국가의 한계: 아우구스티누스의 비판은 정의를 내세움으로써 실정법의 기본적 토대와 묘하게 연결되고 있습니다. 지상의 국가에서는 불법이 활개를 치고 있으므로, 해적이든 황제든 상관없이 모두 도둑질을 자행한다는 것입니다. 주어진 국가의 법은 신의 뜻에 일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의 국가에서는 정의로움이 법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면, 지상의 국가에서는 권력자의 이권이 법적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정의가 실현되어, 세계는 결국 사멸되고 말리라.Fiat iustitia, et pereat mundus.”라는 속담이 생겨나게 되었고, 칸트 역시 이를 인용한 바 있습니다. (Höffe: 54). 이와 관련하여 장 제비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즉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국가를 근거로 하여 실정법의 기초 내지 토대를 축조했다고 말입니다. (Servier 64).
그런데 문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갈구한 신의 국가의 상은 하나의 이상으로서 추상화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시간에 이르게 되면 신의 국가와 지상의 국가는 완전히 서로 별개의 존재로 분할됩니다. 그렇게 되면 상기한 균열의 흔적은 교회 그리고 국가의 가시적인 공동체에 두드러지게 구별된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러한 주장은 중세가 끝날 때까지 계속 유효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현실을 인위적으로 개선하려고 하지 않고, 다만 막연히 추상적으로 신의 국가를 기대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노력은 한계가 있으며, 오로지 신의 뜻에 의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다는 게 중세의 통념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중세의 시대는 유토피아의 역사에서 텅 빈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Schulte Herbrüggen: 115).
22. 사도 바울과 달리 고찰한 신의 국가: 『신국 론의 근본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성스러움의 공동체는 인간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머물다가 역사의 마지막에야 비로소 지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기존의 국가들이 그들에게 속하는 악마에게로 귀의하면, “신의 국가”는 그제야 현실 속에서 정착되기 시작합니다. “성스러운 사회적 삶socialis vita sanctorum”은 지상에서의 초월을 의미합니다. 물론 바울 역시 신의 국가를 추구하였습니다. 예수에서 바울로 이르는 기독교의 방향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듯이, 사도 바울은 오직 초월적인 의미에서 천국을 현세와 무관한 저편에서 찾으려 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새로운 지상에다 의미심장한 무엇을 다시 설정하였습니다. 이 점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초월적 사고는 유토피아의 특성과 부합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 역사의 창조적인 희망과 결속되어 있으며, 마주침, 위험 그리고 승리를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의 국가”는 마치 위험하게 솟아난 날카로운 바위 조각같이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무엇입니다. 그것은 기존의 역사가 종말을 고할 때 비로소 유토피아로서 존재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완전한 정태적 국가보다 한발 더 나아간 역동적 목표를 부여하였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37 고대 문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로박: (5)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 론' (0) | 2024.09.24 |
---|---|
서로박: (4)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 론' (0) | 2024.09.23 |
서로박: (2)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 론' (0) | 2024.09.21 |
서로박: (1)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 론' (0) | 2024.09.20 |
소포클레스 강의 자료 (0) | 2024.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