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 Gleichzeitigkeit der Ungleichzeitigkeit [우리는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데도 우리의 세계관 그리고 정치적 아비투스가 서로 다른 경우를 자주 체험한다. 말하자면 이질적인 의식 구조 내지는 서로 다른 세계관은 지금 여기에 동시적으로 자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다. 비-동시성은 역사의 불연속성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것은 블로흐에 의하면 독일 낭만주의다. 낭만주의에서는 시대를 형성하는 리듬 (반동적 복고주의 + 진취적 사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Bloch, GdU1: 311).
가령 블로흐는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 1933년 독일에서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특징이 자리한다고 구명하였다. 당시에 독일의 임금 노동자 내지는 수공업자의 의식은 농부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주로 시골에 거주하는 소작 농부들은 자본주의 이전의 단계,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낙후된 현실적 조건 속에 처해 있다. 농부들은 한편으로는 거대 자본의 산업화로 인해 지금까지의 초라한 삶의 토대를 잃을까 두려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이전의 봉건 시대를 동경한다는 것이다. (Bloch, EdZ: 112, 122).
그러나 이들의 전근대적인 세계관 내지는 의식 상태는 (독일 공산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무조건 낙후하거나 반동적이라고 매도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들의 의식 구조는 블로흐에 의하면 다만 비동시적 특징만을 드러낼 뿐이다. 왜냐면 그들의 과거지향적인 동경 속에도 자본주의에 대한 노여움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블로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회의 변화와 혁명을 꾀하려는 사람이라면 그는 차제에 그들의 이러한 분노에서 미래를 위한 어떤 동력의 언어를 찾아내어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고는 한계를 뛰어넘는 행위다. Denken heißt Überschreiten. 사고는 블로흐에 의하면 한계를 뛰어넘는 행위이며, 통상적 규범 내지는 상식의 사고를 벗어나는 행위다. (Bloch, PH: Vorwort). 인간은 언제나 내적으로 갈구하는 무엇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인간의 눈과 귀는 지금 여기에 주어져 있는 무엇을 인지하게 하는 수단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는 불가능한 무엇, 불충분한 무엇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그렇기에 블로흐에게 사고는 일차적으로 사회 경제적 당면 문제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어째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나의 의향이 주어진 현실에서 실현하기 어려운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라.
“사고는 한계를 뛰어넘는 행위다.”라는 주장은 그 자체 “불가능성의 가능성 Möglichkeit des Unmöglichen”을 추구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불가능성의 가능성 속에는 근본적으로 유토피아의 함의가 도사리고 있다. 불가능한 무엇을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점을 모색하는 행위가 바로 인간을 치열하게 자극하고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변화를 촉구하는 모티프로 작용하게 된다.
“사랑이란 어떤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향하는 여행이다. Die Liebe ist eine Reise in ein gänzlich neues Leben” (영) Love is a journey into a totally new life.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 제1장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청년에 관해서 서술한 바 있다. 사랑하는 임이 거주하는 집은 찬란한 왕궁처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블로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랑하는 자는 몸과 마음이 임의 어떤 새로운 세계로 몰입하게 되는 것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비근한 예로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의 한 구절을 언급할 수 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인간의 열망은 블로흐에 의하면 확정된 사고를 변화시키고, 유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새로운 무엇 Novum [이것은 “전선” 그리고 “궁극성”과 함께 블로흐의 철학에 언급되는 세 가지 미래 지향적인 사고의 카테고리 가운데 하나이다. “새로운 무엇”은 전선Front 궁극성Ultimum과 함께 세계 과정의 구조적 틀을 해명하고 있다. 현실은 블로흐에게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변증법적 과정이다. 현실의 파괴된 형체는 전선, 새로운 무엇 그리고 궁극성이라는 세 단계에서 개별적으로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세 단계는 시간적인 순서로 이해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뛰어넘는 힘으로써 구성적으로 출현하는 무엇들이다. 그렇기에 그것들은 현재 순간의 연속이라든가 현실적 변화 과정의 순서와는 다른 관점에서 이해된다. 전체적 목표 내용을 고려한다면, 새로운 무엇은 마지막의 시작을 가리키며, 근원에서 파생되는 시작의 충직성을 견지해야 한다. (Bloch TE: 376).
새로운 무엇은 목표에 대한 열광과 격정을 담고 있는 카테고리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재-기억이라는 과거 지향적 사고를 배격한다. 재기억에 관한 사고는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헤겔을 거쳐서 니체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데, 과거 지향적으로 시작과 근원만을 중시할 뿐이다. 근원을 강조하는 과거 지향적인 사고는 새로운 무엇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인간이 추구하는 유토피아적 탐색을 사전에 차단하게 한다. (Bloch, PH: 234). 새로운 무엇의 혁신성은 블로흐에 의하면 가령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에서의 트럼펫 연주를 방불케 한다고 한다, 트럼펫 연주는 예속 상태의 인간이 마침내 드러내는 궁극적 저항과 해방의 몸부림으로 이해된다. 새로운 무엇의 열정은 블로흐에 의하면 궁극적으로 고향에 당도하려는 목표 의향을 전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선한 사람은 항상 초보자다. Semper homo bonus tiro est.” [이 문장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마르티알리스( Marcus Valerius Martialis, 40 – 104)의 12권으로 이루어진 『경구집Epigramata』에 실린 것인데, 블로흐는 이를 자주 언급하였다. 자고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아는 자는 없다. 우사인 볼트는 100미터 달리기에서 일시적으로 세계 최고이고, “신공 지능”으로 알려진 신진서 바둑선수는 오로지 바둑에서만 일시적으로 세계 최고일 뿐이다. 가령 두 사람이 러시아어를 배운다고 가정해 보면, 그들의 실력은 처음에는 초보자다. 다른 한 편 자전거를 밟고 있는 동안에는 넘어지는 법이 없다.]
선험적 transzendental [칸트는 경험을 벗어나 있으나, 경험을 가능케 하는, 즉 정험적(定驗的)이며 인식 초월의 특징을 선험적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칸트는 “대상이 아닌 대상에 대한 인식의 방식, 더욱이 선천적으로 가능한 인식 방법을 다루는 모든 인식”의 특징을 선험적이라고 정의한다. (조영준: 184) 선험적 특성은 칸트에 의하면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특징을 지니는데, “정험적”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여기서 정험적이라는 말은 여기서 경험에 앞서 있으면서 또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세계영혼 Weltseele [세계영혼은 셸링에 의해서 체계화된 개념으로서 질적 자연의 의미와 관련된다. 고대에는 삼라만상을 관장하는 신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신적 존재이거나 요정 등으로 제각기 사물의 영혼을 관장하였다. 기독교가 도래하면서 이들 존재는 악한 영혼으로 취급되었다. 셸링의 『세계영혼에 관하여 Von der Weltseele』 (1798)에는 우주는 유기질의 통일체와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자연 전체가 하나의 보편적인 조직체라는 것이다. 셀링은 괴테의 시, 「세계 창조Weltschöpfung」(1803)를 처음으로 접하고, 세계영혼을 상정했다고 한다.
문제는 셸링이 이에 관한 모든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양적 계산을 위한 수학 그리고 물리 역학 등은 초기 자본주의 시대 이후로 우위를 점하게 되어, 질적 자연과 세계영혼과 관련되는 질적 자연에 관한 관심사는 이후의 시기에 현저하게 약화하고 말았다. 나중에 블로흐는 셸링의 세계영혼의 우주론에서 스피노자가 말한 “산출하는 자연natura naturans”으로서의 자연 주체의 개념을 도출해내었다. 세계영혼과 자연 주체의 사고는 오늘날 물질의 존재론과 관련하여 신유물론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10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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