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3) 우베 텔캄프의 '탑'

필자 (匹子) 2024. 5. 19. 09:09

(앞에서 계속됩니다.)

 

(10) 두 번째 화자, 리하르트: 이제 두 번째 화자에 관해서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리하르트 호프만은 1932년 시계공의 아들로서 에르츠 산맥 근처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드레스덴은 미군의 공중 폭격으로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13세의 나이의 리하르트는 공병 보조원으로 활동했는데, 안타깝게도 부당을 당했습니다. 그의 팔은 처음에는 움직이지 못했는데, 레니 뷔히터라는 의사의 수술로 거의 완쾌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마친 뒤에 그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합니다. 자신도 나중에 훌륭한 의사가 되어서 자신과 같은 위험에 처한 환자들을 성심껏 돕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리하르트는 외과 전문의가 되어, 자신보다 13세 나이어린 안네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거느립니다. 리하르트는 아내와 함께 드레스덴의 “탑 속에서”라는 지역에 거주하며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11) 리하르트의 생일: 이야기는 1982년 12월 4일에 시작됩니다. 50세 생일에 리하르트는 자신의 친구 그리고 동료들을 초대합니다. 그들은 귀한 선물을 가지고 옵니다. 이것들은 동독에서는 쉽사리 구하기 어려운 생필품들입니다. 리하르트는 하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우리는 여기서 그의 정치적 입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국가, 흥, 소련 군인들의 장총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유지되고 있지요.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이러한 국가는 즉시 무너질 수 있어요. 만약 자유로운 선거가 치러진다면 말이지요.“ (74쪽) 그의 아내, 안네는 행여나 누군가 고발할까봐 리하르트의 말을 가로막습니다. 축하객 가운데에는 울리히 로데도 있습니다. 울리히 로데는 안네의 오빠로서, 동독의 국영기업의 대표 관리로 일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생일 파티이지만, 사실 이것은 리하르트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사람인가? 하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드레스덴에 있는 프리드리히슈타트 병원

 

(13) 리하르트의 이중생활: 그런데 리하르트에게는 내연의 처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목요일만 되면, 그는 수영한다고 말하고 요스타의 집으로 달려갑니다. 요스타는 병원에서 여비서로 일하다가 사귀게 된 여인이었습니다. 리하르트는 수년간 비밀리에 그미를 만나 사랑을 나누곤 했는데, 5년 전에 관계를 끝내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요스타가 임신했기 때문입니다. 리하르트가 낙태를 요구했지만, 그미는 애인의 말을 듣지 않고 루시를 출산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리하르트에게 아름다운 딸이 생긴 것입니다. 요스타에게는 이전의 결혼생활에서 태어난 아들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다니엘인데, 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리하르트의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요스타의 집에 들락거리는 것을 이웃 아이들이 알게 되고, 다니엘 역시 아이들에게 낯선 아저씨의 이야기를 꺼내곤 하였기 때문입니다.

 

(14) 리하르트와 슈타지: 어느 날 동독 국가 안기부, 즉 슈타지가 리하르트의 복잡한 사생활을 간파하게 됩니다. 리하르트는 아내인 안네에게 자신이 슈타지의 감시 그리고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털어놓습니다. 안네가 무엇으로 그들이 협박하는가? 하고 묻자, 리하르트는 대답을 얼버무립니다. 이때 안네는 차라리 서독 행 여행 비자를 신청하는 게 어떠한가? 하고 제안합니다. 말하자면 고향을 저버리고 서독에서 새 출발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안네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친척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가령 레기네 노이베르트는 당국에 심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남편 위르겐이 1년 전에 서독으로 건너갔다는 것이 심문의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레기네는 두 아들과 함께 외국 여행을 허가해달라고 당국에 신청했는데, 감감 무소식이라는 것입니다. 이때 리하르트는 “당국이 의사를 출국시키는 경우는 드물어.”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합니다. 결국 리하르트는 “슈타지에 협조하겠다.”는 각서에 사인합니다. 이때 그는 모든 것이 형식적 절차일 뿐이라고 자위합니다.

 

(15) 요스타의 자살 시도 그리고 이별: 리하르트는 슈타지의 감시를 받고 있는 동안에 요스타의 집을 더 이상 찾아가지 않습니다. 이때 요스타는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힙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그미는 깊은 우울 속에서 수면제를 과다 복용합니다. 다행히도 이웃이 쓰러져 있는 요스타를 발견하고 프리드리히 슈타트 병원으로 긴급하게 이송합니다. 요스타는 응급 치료 후에 목숨을 부지합니다. 리하르트는 이웃 여자, 니나 슈뮈케에게 아이들을 돌보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니나는 어물전을 운영하면서 살아가는 이혼녀인데, 술을 즐기면서 이따금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였습니다.

 

그날 저녁 리하르트는 그미의 눈동자를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니나는 그의 음탕한 시선을 피하지 않습니다. 이미 술에 약간 취해 있는 니나는 “나는 당신과 즉시 침대로 갈 준비가 되어 있어요.”하고 말을 건넵니다. 리하르트는 여성의 도전적 발언에 겁을 먹은 듯이 이를 거절합니다. 니나는 몹시 실망스러운 듯이 술잔을 바닥에 팽개친 뒤에 맨발로 유리 조각 위를 걷습니다. 1984년 병원에서 퇴원한 요스타는 리하르트에게 결별의 편지를 보냅니다. 그가 아내와의 이혼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다른 남자와 약혼하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절대로 자신의 집을 찾지 말 것을 강하게 요구합니다. 설령 루시가 보고 싶더라도 비정한 아버지는 딸을 절대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레스덴 중앙역

 

(16) 레기네의 국경 탈출: 요스타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무렵에 안네의 친척인 레기네 노이베르트는 당국으로부터 편지를 받게 됩니다. 그미의 외국 여행 허가는 기각된 것이었습니다. 레기네는 두 아들과 함께 라이프치히로 되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안네와 멘노 로데는 그들을 배웅하려고 드레스덴 중앙역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레기네는 비밀리에 행선지를 바꿉니다. 그미는 로슈토크에세 뮌헨으로 향하는 휴양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미는 아들과 함께 서독으로 건너가려고 작심했던 것입니다. 드레스덴 중앙역에는 소련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군인들의 시선을 따돌리고 선로를 건너는 일이었습니다. 레기네는 구내매점에서 차, 감자 스프, 소시지 그리고 빵을 사서 보초를 서고 있는 소련 군인들에게 건네줍니다. 군인들은 이를 호의로 생각하고 등을 돌린 채 잠시 자리에 앉아 그것을 먹고 있었는데, 레기네는 이 틈을 타서 아들과 함께 선로를 건너 뮌헨 행 기차에 오르게 됩니다. 군인들은 안네와 멘노를 취조하기 위해서 그들을 경찰서로 데리고 갑니다. 이들은 레기네 가족이 라이프치히로 떠난다고 하기에 배웅하러 왔을 뿐이라고 해명한 뒤에 풀려납니다.

 

(17) 안네,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채다: 안네의 조카 이나가 임신하여 어느 젊은 의사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토마스 베른하르트라는 남자였는데, 리하르트와 함께 병원에서 일하는 신참이었습니다. 결혼식에는 하객들 가운데에는 요스타의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리하르트를 향해서 잔뜩 인상을 찌푸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엄마를 괴롭힌 남자에 대해 저주의 눈길을 보냈던 것입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안네는 “저 아이를 아는가?” 하고 남편에게 묻습니다. 이때 리하르트는 “글세, 어느 환자의 아들이겠지.”하며 말꼬리를 흐리면서 얼버무립니다. (600쪽) 안네는 결혼식에 참석한 뒤에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미는 오래 전부터 남편의 바람기를 감지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리하르트는 어느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미는 라이나 코스만으로서 아들 크리스티안의 학교 친구였습니다. 아니, 아들이 옛날에 사귀던 여자 친구와 바람을 피우다니, 안네는 이제 더 이상 모든 것을 묵인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미는 리하르트의 외도 혐의를 차례대로 나열하면서 꼬치꼬치 따집니다. 이로써 안네는 모든 것을 파악하게 됩니다.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배신감에 치를 떨던 안네는 마침내 유리조각을 거머쥐고 자신의 왼손 동맥을 끊어버립니다. 안네는 결국 수술대에 오릅니다. 수술실에서 집도한 의사는 바로 그미의 남편, 리하르트였습니다. 퇴원 후에 안네는 남편의 꼴이 보기 싫어서 친구인 슈페르버 박사의 집에 한시적으로 거주합니다.

 

(18) 리하르트 호프만 결국 칼에 찔리다.: 리하르트는 영리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지니며, 자유분방한 사람입니다. 게다가 그는 직장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의사입니다. 그에게 문제가 있다면 오직 하나 여성 편력이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옛 친구 만프레트 베니거가 찾아옵니다. 리하르트는 약 수 십년 전에 친구를 스타지에 고발한 적이 있었습니다. 만프레트는 이에 앙심을 품고 리하르트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라이나와의 애정 행각을 담은 사진들을 스타지 본부에 제출한 장본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리하르트는 만프레트가 휘두른 칼에 심하게 부상당하는데, 그의 몸은 서서히 망가집니다. 여기서 작품은 구동독의 사회주의적 의료 체계 그리고 느릿느릿 진행되는 병원 생활 등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리하르트의 몸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19) 리하르트, 당국에 적대적 태도를 취하다: 리하르트가 환자로서 병원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당국은 리하르트의 재산을 압류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어느 기술자 부부의 동독 탈출 계획을 알면서도 스타지 본부에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스타지는 그의 복잡한 사생활을 노골적으로 거론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리하르트는 자신과 관계되는 모든 고위층 간부들의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맞대응합니다. 이 와중에서 그는 심리적으로 몹시 위축되고, 결국 요양원에 이송됩니다. 이 시기에 안네는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고, 리하르트를 돌보아줍니다. 그미는 비밀리에 야권 세력에 가담하며, 여러 가지의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1989년 10월 리하르트 역시 데모하는 인민의 편에 서서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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