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4) 우베 텔캄프의 '탑'

필자 (匹子) 2024. 5. 19. 09:12

(앞에서 계속됩니다.)

 

(19) 세 번째 화자, 멘노 로데: 이번에는 세 번째 화자를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멘노 로데는 안네보다 다섯 살 나이 어린 남동생으로서 1940년 모스크바에서 쿠르트 로데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나중에 높은 정치적 경력을 쌓은 분이었습니다. 멘노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했는데, 루터교의 학생 종교단체에 속했기 때문에 전공에 맞추어서 바로 취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출판 일을 전전하며 지냈습니다. 멘노는 하나라는 이름을 지닌 여의사와 결혼했으나, 이혼한 경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부인은 현재 프라하에 있는 동독 대사관 주재의 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멘노의 직장은 베를린에 있는 헤르메스 출판사의 드레스덴 지점이며, 그곳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독에서 문학 작품을 책으로 출판하기란 몹시 어려웠습니다. 출판의 기회가 워낙 적다보니, 구동독의 일부 유명 작가들은 서독으로 원고를 보내어 그곳에서 책을 간행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출판의 권한은 멘노에게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상급 기관에서 책의 출판에 관한 모든 것을 결정하며, 멘노의 수중에 전해지는 원고는 출판이 결정된 것들입니다. 원고의 앞부분에는 전문가의 소견서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멘노의 상사는 여러 명 있습니다. 가령 요제프 레드리히, 하인츠 쉬퍼 등이 그들입니다. 이들에게도 출판의 권한이 없습니다. 그들은 상부로부터 원고를 수령하여, 부하 직원들로 하여금 체제 파괴적인 구절이라든가 당국을 비판하는 문구들을 교정하게 할 뿐입니다.

 

(20) 멘노는 상류층에 속한다.: 멘노의 아버지는 모스크바에서 활동한 고위 인물이므로, 그 역시 “붉은 관료주의”의 노멘클라투라에 속합니다. (421쪽) 드레스덴에는 일명 “동로마 Ostrom”라고 불리는 제한 구역이 있습니다. 그곳은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구역입니다. 시간이 나면 멘노는 “동로마”로 가서 여러 명의 작가들 그리고 지식인들과 조우하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교적인 성격을 지닌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자신의 직업이 문인들과의 교우를 부추깁니다. 멘노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문학에 친숙해졌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세포 연구를 진척시키리라고 바라지만, 주어진 현재 편집자로 일하는 것에 대해 커다란 불만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멘노는 이를테면 작가, 게오르크 알트베르크라든가 역사가 요헨 론도너와 그의 아내를 만나는 것을 항상 즐거워합니다.

 

 

 

드레스덴에 있는 상류층 가옥

 

(21) 멘노가 고찰하는 동독 지식인들의 심리 구조: 작가들 사이의 표리부동한 우정: 작가들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자주 만나지만, 속마음을 고스란히 터놓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왜냐하면 주위에는 항상 그들을 감시하고 미행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멘노는 극작가 에두아르트 에쉬슬로라케의 집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에두아르트는 큰 소리를 지릅니다. 그의 아들 알빈이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에 거실에 있는 수족관에다 교묘하게 도청장치를 설치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구동독에서는 부자 사이에도 신뢰의 벽이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해줍니다. 멘노가 만나는 사람 가운데에는 물리학자인 루드비히 폰 아르보가스트 백작이 있습니다. 그는 언젠가 사진기와 경보 장치를 만들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이 돈으로 그는 물리학 연구소를 신설하기도 했습니다. 루드비히는 동물학에 관심이 많으므로, 멘노와 무척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집필하려고 하는데, 멘노에게 이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22) 멘노의 거주 지역: 멘노 역시 호프만 가족과 마찬가지로 “탑 속에서” 지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가 사는 집은 “천일가 (千一家)”라고 불리는데, 여러 가족이 살아갑니다. 기술자 슈탈 박사의 가족, 이전에 해양 선박 의사로 살았던 랑게 부부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전화기는 집에 단 한 대 설치되어 있는데, 슈탈 박사만 이것을 사용합니다. 그는 약 15년을 기다려서 당국으로부터 전화기를 공급받았습니다. “천일가” 사람들은 독자적으로 생활하며, 아침식사만큼은 함께 정원에 모여서 즐깁니다. 최근에 카민스키 가족이 이사 들어와서 소란이 있었을 뿐, 평소에는 아주 조용합니다. 드레스덴의 거주 담당직원은 1984년 말에 멘노 로데의 거주지 그리고 랑게 부부의 거주지가 너무 크다고 판단하여, 집을 개조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천일가가 개조된 뒤에 새로운 두 가족이 전입해 옵니다. 이들 가운데에는 호니히 가족도 있었습니다. 페드로 호니히는 당의 고위 관료이며, 그의 아내, 바베트는 루이스 퓌른베르크 학교의 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입주한 뒤부터 다음과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는 사실입니다. 즉 집의 모든 방문객은 한 명도 빠짐없이 방명록에다가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동독은 이렇듯 사생활까지 개개인을 철저하게 통제하려 하였습니다.

 

(23) 멘노, 리첸부르크로 이사하다: 어느 날 멘노는 시당국으로부터 히덴 호수 근처의 리첸부르크에 위치한 휴양 가옥으로 이사하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시당국은 혼자 살아가는 멘노 로데를 불순분자로 설정하고, 그를 감시해 왔던 것입니다. 워낙 집안의 배경이 막강한 터라, 시당국은 지금까지 어떠한 불이익도 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리첸부르크에서 새로운 작가들과 조우하게 됩니다. 히덴 호수의 해변에는 게오르크 알트베르크 그리고 요헨 론도너의 아들인 필립이 나체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습니다. 필립은 라이프치히 도서 축제 기간 동안 이곳에 와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곁에는 벌거벗고 일광욕을 즐기는 여자들도 많았습니다. 35세의 유디트 셰볼라 역시 나체로 모래 백사장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미는 멘노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면서, 자신의 등에 크림을 발라달라고 부탁합니다. 일순가 멘노는 “나체 문화 FKK”를 역겹다고 여기면서, 그미의 부탁을 들어줍니다. 어깨 너머로 유디트의 팽팽한 젖가슴과 붉은 젖꼭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24) 핍박당하는 지식인들, 그리고 그 이후: 멘노는 나중에 유디트 셰볼라의 근황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접하게 됩니다. 그미는 체제 비판의 작품을 썼다는 이유로 동독 작가연맹으로부터 추방당합니다. 멘노는 이 소식을 접하고도 그미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유디트는 생계를 위하여 묘지 관리인으로 일하지만, 이 일마저 여의치 않아서 동독의 “국영 기업 VEB” 코소라로 직장을 옮깁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직장 일을 행하다보니, 정작 작품 집필을 위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미는 직장 일을 능수능란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이유로 언제나 상사에게 꾸중을 듣습니다. 유디트는 서서히 절망감을 느끼면서 알코올 중독자로 변해갑니다. 멘노 역시 어느 누구와도 오랜 대화를 나누지 못합니다. 그는 지인으로부터 “천일가” 사람들의 슬픈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슈탈 부부가 며칠 전에 스타지에 체포되어 어디론가 끌려갔다는 게 그 소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슈탈 부부는 동독을 탈출하려고 사전에 공모했는데, 그만 당국에 발각되었다는 것입니다. 멘노는 스스로를 더욱더 고립시키면서, 오래 전에 꿈꾸던 세포 연구에 몰입하게 됩니다.

 

(25) 장벽 붕괴와 멘노 로데: 1989년 10월 3일 멘노 로데는 드레스덴의 중앙역에 있습니다. 중앙역은 체코의 프라하로 여행을 떠나려는 여행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프라하에 있는 서독 대사관이 동독인들에게 자유 여행 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드레스덴에도 전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근에 헝가리에 있는 서독의 대사관 또한 동독인들에게 여행비자를 발급했습니다. 드레스덴의 경찰들은 여행객을 해체시키려고 무력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전투경찰의 곤봉과 방패 앞에서 마치 추풍낙엽처럼 쓰러집니다. 이 와중에서 멘노 역시 두 명의 경찰에게 질질 끌려갑니다.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가방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가방 속에 여러 원고를 넣어서 서독으로 건너가려고 했던 멘노의 의도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몇 달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 멘노는 가방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나이든 부인이 끌려가는 멘노의 가방을 집으로 가지고 갔던 것입니다.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