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에서 계속됩니다.)
페처: 루카치씨, 당신은 제 1차 세계대전의 시기부터 에른스트 블로흐와 개인적으로 친교를 맺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사항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지요?
루카치: 세부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한편으로는 블로흐는 나에게는 놀라운 청춘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니까요. 그를 알게 된 것은 나에게 정말로 커다란 체험이었습니다. 대부분 고리타분한 교수들이 철학을 연구해 왔는데, 갑자기 기발한 철학자가 부활한 것 같았으니까요. 블로흐는 고대의 철학자 그리고 고대 철학의 정신을 독일어로 설파했습니다. 그건 놀라운 경험이었지요. 오랫동안 우리는 친밀한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전쟁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했어요. 두 사람 모두 세계대전을 혐오했으며, 정치적으로 좌-편향적인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 서서히 견해 차이가 출현한 것은 사실입니다. 내 생각에는 블로흐의 『유토피아의 정신』 그리고 『혁명의 신학자 토마스 뮌처』라든가 나의 책, 『역사와 계급의식』을 살펴보면, 두 사람 사이에 어떠한 의견 대립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완전히 결별하여 다른 길로 향했다는 것을 알 태지요. 비록 두 사람 모두 좌파였으며, 공산주의에 대해서 호의적 감정을 지니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이러한 결별은 나의 신념을 더욱더 확고하게 했으며, 내가 더욱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의 걸음을 걸어가게 했습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은 사항입니다. 즉 1920년대 지식인들 가운데에는 급진적으로 공산주의를 표방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상당수는 비타협적으로 타협한 사람들이었는데, 블로흐는 자신의 입장을 배반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항상 좌파의 지조를 견지했습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이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 나는 블로흐를 내가 아는 지식인 가운데 가장 정신적으로 깊이 있는 작가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감히 말해도 된다면 블로흐의 글은 요한 페터 헤벨의 『이야기 보석 상자』 그리고 헤겔의 『정신 현상학』을 뒤섞어 놓은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이러한 성향은 독일 산문의 역사에서 거의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잊어서는 안 될 사항이 있습니다. 블로흐가 주요한 관건으로 생각한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시스템이 아니라, 유토피아의 시스템이라는 사항 말입니다.
페처: 블로흐씨, 당신은 루카치의 사상적 미학적 발전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루카치와의 관계에서 당신은 어떠한 고유한 입장을 견지했는지요?
블로흐: 루카치가 당시의 나의 견해가 더욱더 타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한 내용과는 어긋나는 말씀을 전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회고하건대 우리 사이가 벌어진 것은 아마도 1917년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루카치는 내가 뮌헨에 정착하려는 의도를 비판한 것 같습니다. 루카치는 나의 이러한 선택이 너무나 근시안적이며, 불필요하다고 강하게 지적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뮌헨의 예술적 분위기는 더 이상 거대한 변화를 촉구하는 질풍과 노도도 없었고, 청년 양식의 예술적 움직임도 없었습니다. 그 대신 표현주의의 예술적 운동이 활성화되고 있었습니다. 루카치는 표현주의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조토 Giotto 그리고 세잔 Cézanne의 예술이 보여주는 조화로움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표현주의 예술은 이러한 조화로움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다는 것이었지요. 가령 “어느 집시의 찢어진 신경” 등은 루카치에 의하면 엄격한 형식을 넘어선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표현주의에 대한 가장 부정적인 비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루카치에게는 고전적인 것이 그야말로 가장 훌륭한 예술이었습니다. 그는 신고전주의자였으며, 지금도 아마도 그러할 겁니다. 루카치는 소련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신-고전주의라는 예술적 경향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루카치는 이러한 신고전주의에 근친해 있으며, 이에 어긋나는 모든 예술적 경향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바이마르 시대에는 이러한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지만, 오늘날의 단어로 표현하면 데카당스, 혹은 변종과 같은 표현을 생각해 보세요. “어느 집시의 찢겨진 신경”은 신-고전주의자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것들이지요.
루카치에 비하면 나는 프란츠 마르크 그리고 칸딘스키의 그림을 놀라운 마음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가령 「푸른 기수(騎手)」 그리고 새로운 음악을 생각해 보세요. 이것은 완전히 다른 세상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이었습니다. 1930년대의 유럽 사람들은 더 이상 안정된 질서에 만족하지 않았지요. 미지의 세계 그리고 이에 대한 탐험은 표현주의 예술에 반영된 파괴된 세상 그리고 부정적으로 묘사된 대상과 함께 돌출해 나왔습니다. 암호 찾기, 기존의 세상에서 발견할 수 없는 부호를 추적하는 일은 특히 칸딘스키의 회화 작품 그리고 그래픽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지요. 근본적인 문제는 루카치가 나를 설득하려고 노력한 회화 예술의 영역에 있었습니다. 모든 게 일치되지 않았어요. 당시에 신고전주의는 너무 고상하고, 그다지 결실을 안겨주지 않는 아류처럼 나에게 다가왔지요. 신고전주의에서 첨부되는 “네오”라는 단어는 내 눈에는 전혀 새롭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는 그야말로 놀라운 시대였지만, 오래된 커피 맛은 그다지 신선하지 않았지요. 신고전주의는 당시 현실에 도사리던 열기를 담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파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예술적 파괴 현상은 1916년에 집필한 나의 논문 「장식의 생산Die Erzeugung des ornaments」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근대 예술에 나타난 장신구 내지는 장식을 주제로 다루었지요. 장식은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예술과는 전혀 걸맞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당혹스러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게다가 장식에 관한 주제는 지금까지 예술사에서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는 것이었지요. 어쩌면 그 속에는 깊은 철학적 함의가 숨어 있는지 몰라요. 루카치는 당시에 이러한 표현에 대해서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았습니다만, 장식 속에는 어쩌면 어떤 형이상학적인 의미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장식품은 어쩌면 언어적 부호일 수도 있어요. 다시 말해 그것은 사물이라든가 외부 세계에 나타난 암호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장식품은 하나의 형태로 서술하고 있는 어떤 부호를 전달해줍니다.
만약 구상화로 표현되는 대상의 특성이 파괴될 경우, 어떤 다른 대상의 특성이 강조될 수 있습니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대상을 생각해 보세요. 스스로 침묵을 지키는 장식품은 무언가 비밀스러운 암호를 드러내려고 합니다. 따라서 암호의 해독은 필수적이지요. 장식품은 그런 식으로 우리 앞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장식품의 배후에는 “아직 아님”이라는 무엇이 발효되고 있지요. 이 세상에 한 번도 드러나지 않은 무엇을 생각해 보세요. 음악 예술의 경우 아직 아님의 특성은 더욱 강하게 출현합니다. 음악 예술은 가시적 대상과는 전혀 관계없는 예술이기 때문에 새롭게 도래하고 출현하는 무엇을 다만 귀를 통해서 전해주지 않습니까?
나는 음악 예술이 전해주는 철학적 특징에 관해서 『유토피아의 정신Geist der Utopie』에서 세부적으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음악과 직결되는 단어가 바로 유토피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유토피아는 일상적 삶에서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도 아니고, 허튼 소리와 관련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세계 속에서 검증되고, 시대정신에 의해 나타나는 “습득한 희망docta spes”과 연결되는 개념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올바로 수정된 희망이라고 표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아님”과 관련하여 우리는 흔히 사람들이 “그건 더 이상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야.”하고 일갈하는 부정적 의미를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 사람들은 찬란한 삶에 관해서 너무나 거창하게 서술한 바 있습니다. 그게 유토피아의 전통이지요.
미래의 찬란함은 전혀 보상받지 못한 과거 속에 자리하고 있지요. 이는 모든 가능한 영역에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요약하건대 유토피아는 장식의 핵심적 거처입니다. 그건 음악과 신비주의 속에 용해되어 있지요. 『유토피아의 정신』의 마지막 대목 「카를 마르크스, 죽음과 묵시록」은 세상의 바람직한 방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향성은 내면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다시금 내면으로 유동할 수 있지요. 세계사의 변화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거나, 확실시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것아 바로 가능성의 카테고리지요. 아직 의식되지 않은 무엇 그리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무엇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 자신 그리고 세계는 아직 개방된 면모를 활짝 열어젖히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변화야말로 루카치가 이전에 추적한 바 있는 과업이었습니다.
(4로 이어집니다.)
'30 bloch 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로흐: (5) 청춘 시대, 실험 예술, 실증주의 비판 (0) | 2024.05.11 |
---|---|
블로흐: (4) 청춘 시대, 실험 예술, 실증주의 비판 (0) | 2024.05.09 |
블로흐: (2) 청춘 시대, 실험 예술, 실증주의 비판 (0) | 2024.05.06 |
블로흐: (1) 청춘 시대, 실험 예술, 실증주의 비판 (0) | 2024.05.06 |
박설호: 블로흐의 "재기억" 비판 (0) | 2023.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