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서로박: (1) 문창길의 시, 꽃의 상징성

필자 (匹子) 2024. 1. 9. 09:32

1.

: 안녕하십니까? 선생님께서는 문창길 시인의 작품, 메꽃 1. 메꽃 2를 논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훌륭한 시편도 많은데 왜 하필 이 두 편을 선정했는지요?

: 그것은 세 가지 사항, 즉 사랑과 평화 그리고 통일 가운데 하나의 중요한 테마와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문창길 시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지향점을 집요하게 추적해 왔습니다. 첫 번째는 저주스러운 성폭력의 역사를 끊어낼 수 있는, 하해와 같은 사랑이고, 두 번째는 폭력과 참혹한 전쟁을 극복하게 하는 평화이며, 세 번째는 시기와 암투 그리고 증오를 근본적으로 끊어낼 수 있는 연대의식을 가리킵니다. 이 가운데 문 시인의 작품은 특히 사랑의 본질적 의미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 , 사랑, 평화 그리고 통일은 민초들의 구체적이고 절실한 갈망입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사랑할 수도, 평화롭게 생활할 수 없으며, 분단 상태에서 채 살아가는 흰옷들의 현실적 아픔에서 비롯된 바람이지요. 문 시인은 누구보다도 가진 것 없고 배우지 못한 분들에게 주목합니다. 그들은 지적으로 신체적으로 부족하다 하더라도 마음만은 누구외도 비할 바 없이 풍요롭습니다.

: 어쩌면 그것들은 가난의 극복이라는 당면한 문제보다도 더 소중하고 신실한 희망 사항이 아닐 수 없습니다.

: . 그런데 한 가지 지적할 게 있습니다. 2019년에 발표된 북국 독립 서신에 나타난 시인의 호흡은 첫 시집 철길이 희망하는 것은 (2001)에 비해 더욱 첨예하고 격렬하게 변한 것 같아요.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미리 한 가지 사항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언젠가 동독 출신의 시인 귄터 쿠네르트(Günter Kinert, 1929  2019)는 다음과 같이 일갈한 적이 있습니다. “시인은 지진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없는 지진계과 같은 존재라고 말입니다. (역주: “Dichter sind Seismographen, die nicht für das Erdbeben verantwortlich zu machen sind.” Pola Groß: Depression oder Fröhlichkeit?, in: Germanica 63/ 2018, 55  69.) 예술은 주어진 시대적 현실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음악의 장르라 하더라도 그것이 태동한 현실적 조건을 간접적으로 반영합니다. (역주- 사실 어떠한 예술도 음악만큼 사회적으로 조건화된 것은 없다. 예컨대 소나타 형식이라든가 쇤베르크의 12음계법조차도 주어진 현실적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소나타 형식은 17세기 유럽의 계층 사회의 특징을 반복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12음계법은 전문화된 시민 사회의 구도를 의식과 무의식에 의해서 복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에른스트 블로흐: 희망의 원리,  4, 열린책들 2004, 2233.) 특히 문학 작품은 그것이 집필되고 발표된 시점의 시대정신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특정 주제를 표방합니다.

 

: 시인과 예술가는 주어진 시대에 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시대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책임질 수는 없는 존재라는 말씀이지요? 참으로 놀라운 발언입니다.

: 문창길 시인은 정체되어 있음을 직감합니다. 정체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예술적 정치적 발언은 동시대인들에게 아무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어쩌면 역사의 걸음걸이는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더욱 강력한 사자후(獅子吼)로 토로할 수밖에 없습니다.

 

2.

: 공감할만한 말씀입니다. 오늘날 시 예술이 독자에게서 외면당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습니다. 시인이 은폐된 진실을 예견하면, 소시민들은 이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시인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카산드라의 운명을 답습하는 존재입니다. 그미가 미래에 다가올 전쟁의 파국을 알리면, 트로이 사람들은 이를 무시하거나, 오히려 예언녀에게 비난을 가하지요. 세상의 질서를 허물어뜨리는 방해분자Störenfried라고 규정하면서 말이지요. (역주 - 플라톤에 의하면 시인과 예술가는 뜬금없이 황금의 시대를 예찬하면서 현 질서를 어지럽히는 족속이므로 국가에서 추방당해야 한다고 했다. 플라톤의 국가 제 10권을 참고하라. 그밖에 동독 작가, 크리스타 볼프는 작품 카산드라에서 진리를 발설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외면당하는 시인과 지식인의 숙명을 묘사한 바 있다. Christa Wolf: Kassandra. Luchterhand 1983. (한국어판) 크리스타 볼프: 카산드라, 한미희역, 문학동네 2015.) 이와 같이 시인의 발언은 외면당하고 무시되며, 심지어 시인 자신이 검열로 핍박당하기까지 합니다.

 

: 그렇지만 시 예술이야말로 현대인의 내면에 도사린 가장 절실한 정서를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닐까요? 나는 문학의 장르 가운데 시대정신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르는 시와 시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비하면 산문작품, 특히 장편 소설은 짜릿한 가십거리의 스토리에 불과합니다.

: 그런가요? 일단 작품을 토론한 다음에 문창길 시에 나타난 꽃의 상징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의 시는 메꽃 1의 전문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 작품은 주제 상으로 이어지는 시편 메꽃 2와는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발뿌리에서 그녀의 세상은 넓다 언덕을 넘는 바람이 그녀와 함께 옷을 벗는다 메마른 핏줄을 따라 칼칼한 목구멍을 삼키는 그녀 시든 꽃술을 감추는 혓잎 끝으로 연분홍 시절을 뒤척이며 무심한 꽃대궁을 키운다.

 

: 작품은 메꽃을 한 명의 여성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메꽃의 세상은 광활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시작품은 여성 저체의 사랑을 은근하게 형상화합니다. 혹은 흘러간 사랑에 대한 기억일 수도 있어요. “바람과 함께 옷을 벗는 메꽃은 사랑의 기쁨을 누리려는 한 영혼의 열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 여기서 바람은 사랑의 자연스러운 탈피로 이해될 수 있겠지요?

: , 그게 아니라면 바람은 그녀의 연인일 수도 있어요. 시의 해석은 다의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모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시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 그런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습니다. 순간의 행복, 즉 조랑복은 지나가고, 세월이 쓰라리고 답답한 듯 칼칼한 목구멍을 인지하게 합니다.

: 네 달콤하지만, 메꽃이 완전한 사랑을 만끽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끝없이 솟구치는 생명체의 욕구가 완전한 사랑을 방해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혓잎 끝으로 그때의 아름답던 시절을 반추할 뿐입니다.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편안한 만남 그리고 자연스럽게 스쳐 간 연분홍의 사랑이라고 추측됩니다. 언젠가는 죽는 존재로서의 생명체에게도 조랑복만큼은 순간의 놀라운 희열로 인지되지 않습니까?

: 동의합니다. 시간의 흐름은 생명체를 시나브로 늙게 하고 죽음으로 인도하지요.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서글프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습니다. 생로병사는 자연현상이니까요. 그래서 시인은 무심(無心)”하다고 표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