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하 시인은 생명체의 갈망에 관해 깊이 생각하는 분입니다. 주로 다루어지는 시적 대상은 나무. 새, 꽃 등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생명체에 관해 세심하게 이름을 붙이지만, 박주하 시인은 이러한 생물학의 세밀한 명명 작업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수없이 많은 것을 갈망합니다. 이러한 수많은 갈망 속에는 우리가 긍정적으로 고찰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애타게 바라는 바를 고수하거나 이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바람과 집착이 궁극적으로 부질없을 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박주하 시인의 시를 읽으면 언제나 어느 영혼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분은 무언가를 갈구합니다. 그것은 탐욕일 수도 있고, 사랑의 갈망일 수도 있으며, 여러 가지 유형의 명예욕일 수도 있습니다. 그분은 이러한 갈망 속에 번뇌라든가 탐욕이 자리하는 것을 일순간 감지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인간의 갈망을 불필요한 망상이니 떨쳐버려야 한다고 자신을 다독이곤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모든 갈망을 포기해야 할까요? 만약 우리가 갈구하는 무엇을 처음부터 배척하면, 삶 자체가 따분할 정도로 허망함만을 안겨줄 뿐입니다. 때로는 갈망이 실현될 때 우리는 어떤 실망감이 엄습하는 경우를 체험합니다. 그것은 성취의 우울 내지는 실현이 가져다주는 아포리아라고 말할 수 있지요. 요약하건대 박주하 시인의 시작품들은 대체로 갈망과 포기를 둘러싼 갈등 내지는 모순 구조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시인이 시집 제목을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라고 정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 나무 겨드랑이에서
다투며 피었던 꽃들
모두 날아간 뒤
나무는 혼자 무슨 생각을 하나
어깨가 휘도록 무성했던
잎 지고난 뒤
이리로 오라던
간절한 손짓 내려놓고
나무는 날마다 무슨 생각을 하나
「새가 날아간 후」를 살펴보겠습니다. 나무는 인간을 가리키는지, 생명체를 상징할까요? 이러한 물음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나무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확실한 것은 나무가 힘들게 꽃을 피운다는 사실입니다. 나무는 언제나 삶의 불편함 그리고 내적 고통에 시달리는 것 같습니다. 꽃들이 사라진 다음에 “나무는 혼자 무슨 생각을 하나” 잎이 지고 난 뒤에 “나무는 날마다 무슨 생각을 하나”
재잘거리던 씨앗들
박수를 치며 웃던 잎사귀들
다 떠나보낸 뒤
비우고 비운 마음속에는
또 무엇이 들어오나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나무는 옷을 벗고 겨울을 맞이합니다. 장년을 훌쩍 넘은 여성과 같이 보입니다. “씨앗”은 나무의 곁에서 재잘거렸으며, 잎사귀 아래에서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떠들썩한 잔치를 벌였는지도 모릅니다. 나무의 마음은 마치 텅 비어 있습니다. 마음이 비게 되면, 무엇이 나무의 공허함을 채워줄까요?
말하지 않아도 굳은 다짐이 있었나
아무도 모르게 번진 약속들이 있었나
서쪽 하늘이 붉게 타오르자
누군가는 지구의 끝이라 말하고
가지 끝에 앉았다 날아오르는 새는
그것을 시작이라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올바른 삶일까? 나무는 나의 삶이 최소한의 가치가 있었다고 나중에 누구에게 고백할까요? 나무는 태어나기 전에 누구 앞에서 그런 식으로 “다짐”하고 행복하게 살리라고 약속했을까요? 아니 나무는 삶의 시작과 삶의 종말을 의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생물체 가운데 탄생과 죽음을 의식하는 자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나무는 죽음과 사멸 사이의 아픔과 곤혹스러움을 인지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황혼 무렵에 서쪽을 바라보면서 “지구의 끝”이라는 인류세의 장소를 의식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지 끝에 앉았다 날아오르는 새”는 시작을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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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나무 겨드랑이에서
다투며 피었던 꽃들
모두 날아간 뒤
나무는 혼자 무슨 생각을 하나
어깨가 휘도록 무성했던
잎 지고난 뒤
이리로 오라던
간절한 손짓 내려놓고
나무는 날마다 무슨 생각을 하나
재잘거리던 씨앗들
박수를 치며 웃던 잎사귀들
다 떠나보낸 뒤
비우고 비운 마음속에는
또 무엇이 들어오나
말하지 않아도 굳은 다짐이 있었나
아무도 모르게 번진 약속들이 있었나
서쪽 하늘이 붉게 타오르자
누군가는 지구의 끝이라 말하고
가지 끝에 앉았다 날아오르는 새는
그것을 시작이라 말한다
(박주하 시집: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걷는 사람 2021, 91쪽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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