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2) 메리메의 '카르멘'

필자 (匹子) 2023. 9. 5. 15:38

6. 사랑의 비극, 비극의 사랑: 돈 호세의 사랑이 더욱더 완고해지고 결연해질수록, 그미는 마치 투우장의 흥분한 소를 대하는 마타도어처럼 사랑에 눈 먼 사내를 미워합니다. 이러한 미움은 그의 마음에 분노를 끓어오르게 합니다. 카르멘은 돈 호세를 만나기 전에 이미 집시의 법에 따라 어떤 집시 사내와 혼인을 맺은 적이 있었습니다. (Jens M: 574). 그런데 그 집시 사내는 감옥에 갇혀 있다가 최근에 석방되었습니다. 카르멘은 일부러 돈 호세를 의식하면서 집시 사내와 신방을 차립니다. 이 사실을 접한 돈 호세는 순간적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집시 사내를 칼로 찔러죽입니다. 그리고 나서 카르멘에게 제발 부탁이니 함께 미국으로 떠나자고 애걸합니다.

 

카르멘은 이러한 간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카르멘은 피스카도르 루카스라는 사내를 사랑하는 척 행동함으로써 돈 호세에게 극도의 자극을 가합니다. 격분한 돈 호세는 더 이상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를 저지르면 단칼에 죽여 버리겠다고 호통을 칩니다. 카르멘은 돈 호세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끝내 거부합니다. 그미는 피스카도르 루카스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만 카르멘은 어떠한 경우에도 누군가에게 억매여 구속당하면서 살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카르멘은 자신의 점괘대로 돈 호세의 칼에 의해서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합니다.

 

7. 남쪽 나라의 따뜻한 열기에 대한 동경: 아마도 낭만주의자 치고 어떤 무엇을 동경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작가 메리메를 자극한 것은 한편으로는 무엇보다도 어떤 이국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카르멘의 소재에 매달린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남방의 따뜻하고 열정적인 문화는 마치 동방의 찬란함을 모조리 포괄하는 무엇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메리메는 다음과 같은 모토를 사용하였습니다. “피레네 산맥 너머에는 아프리카가 시작된다.” 메리메가 카르멘 소재를 선택한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작가는 사회적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인간군에 대해서 애호의 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메리메는 에스파냐에서 실제로 있었던 어떤 사건을 바탕으로 소설을 구상했는데, 많은 부분을 의도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먼 훗날 그는 고고학적 문헌을 뒤지기 위해서 에스파냐를 여행하면서 카르멘과 돈 호세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어떤 사람이 강도 행위로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형벌을 받게 되었는데, 그에게서 돈 호세와 카르멘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다는 것입니다. 메리메는 격정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처음부터 배제하고, 아주 냉정하고도 분명한 관점에 따라 카르멘과 돈 호세의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화자인 프랑스 고고학자의 냉정한 서술 방식이 이를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작가는 유럽에서 살아가는 집시들의 역사 그리고 그들의 생활방식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8. 집시의 삶, 그것은 모든 삶의 방식을 접하지만, 하나의 특정한 삶의 윤리를 선택하지 않는다. 작품의 해석 가능성은 참으로 많습니다. 수많은 책들이 이 작품에 관해서 문헌학적으로 논평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가장 단순하게 작품을 대하려고 합니다. 인간 삶의 행복은 무엇보다도 사랑의 삶에서 발견되곤 합니다. 돈과 명예, 경력과 사회적 성공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연인으로 누구와 조우하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사랑하는 임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는 일 그리고 한 사람의 임에게 극진한 사랑을 베푸는 일 – 이것은 삶의 이상과 같습니다. 누군들 이것을 원하지 않을까요? 주어진 현실에서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고뇌하고, 슬퍼하며 또 다른 방식의 사랑을 추구하곤 합니다.

 

어쩌면 카르멘과 돈 호세는 서로 맞지 않는 연인이었습니다. 모든 비극은 짝사랑에서 비롯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카르멘은 어째서 돈 호세를 거부했을까요?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집시의 삶의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삶의 방식Omne habentes nihil possidentes” (고린도 후서 6장 10절)은 재물을 탐하지 않도록 자극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는 국외자의 수수방관주의를 실천하게 합니다. 예컨대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하나의 확고한 이념을 적극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던 발터 벤야민을 생각해 보세요. 어쩌면 이러한 숙명적 이방인의 존재 방식이 두 사람을 비극으로 몰아넣었는지 모릅니다.

 

9. 작품 『카르멘』의 영향: 메리메의 작품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카르멘에 대한 가장 적확하고도 생생하며 냉정한 묘사에서 발견됩니다. 카르멘이야 말로 치명적인 요부, 즉 “팜 파탈femme fatale”의 선구자일 수 있습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즉 메리메는 자의식을 지닌 채 삶을 성찰하는 여성이 아니라, 하나의 대상으로서의 미모의 여성상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유분방하고 관능적인 여성 카르멘은 20세기 초에 대단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초의 문학예술에는 카르멘이 자주 출현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카르멘의 파괴적인 힘입니다. 20세기 후반까지 시민사회는 가부장적 남성 사회에서 여성들은 거의 질식하다시피하고 살았습니다. 카르멘이 구질서를 무시하며 남자를 유혹하는 이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 자체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카르멘의 상은 시민 사회가 표방하는 체제 순응적 성 윤리 속에서 더 이상 속박될 수 없는 에로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거의 유형적이기 때문입니다. 봄날의 아지랑이 – 그것은 호모 아만스의 마음속에 혼란스러운 희열을 안겨주지만, 때로는 주어진 관습을 망각하게 하고, 드물게 당사자를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