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4) 데자크의 급진적 아나키즘 유토피아

필자 (匹子) 2023. 5. 13. 11:46

(앞에서 계속됩니다.)

 

17. 과학 기술의 활용을 통한 노동 시간의 감축: 조합으로 구성된 위마니스페르 공동체는 푸리에게 언급한 바 있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생산에 임하고, 물품 생산에 있어서 발전된 자연과학의 기술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공동체 내의 노동 조직은 성과를 중시하는 기존 시민 사회와 마찬가지로 놀라운 생산량을 거둘 수 있습니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것을 발전된 과학 기술의 도입이 절실합니다. 새로운 공동체에서는 모든 재화는 사유재산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두가 생산된 물품을 공동으로 소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집니다. 이와 상응하게 자연과학 및 기타 학문은 더 이상 폐쇄적으로 세분화되지 말아야 합니다. 학문 영역 사이에 상호 보완될 필요가 있을 경우 지식은 서로 보조 역할을 담당하고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습니다. 과학 기술의 활용으로 사람들은 더 이상 오래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기술의 활용으로 빠른 시간 내에 열심히 노력하면, 노동자는 얼마든지 자신이 의도했던 바를 생산해낼 수 있습니다. 하루의 일과 속에 노동 시간이 별도로 책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나름대로의 일하거나 유희의 삶을 즐길 수 있습니다.

 

19. 자발성에 의거한 경제활동, 노동의 필연성: 데자크는 경제적 측면의 세부 사항에 관해서 자세한 언급을 생략하였습니다. 모든 노동 행위는 자발성의 자유의 원칙에서 행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노동에 대한 즐거움 외에도 노동의 필연성입니다. 각자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면, 남는 시간에 얼마든지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과거 사람들은 팔을 위로 뻗어서 힘들게 열매를 땄지만, 이제는 나무 밑에서 다리 뻗고 휴식을 취하면 족할 뿐이라고 합니다. 다른 한편 데자크는 위마니스페르에서 노동의 필연성을 역설합니다. 왜냐하면 공동체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바로 노동의 생산력이며, 이를 통해서 공동체의 기본적 재화가 산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데자크는 특히 과학 기술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권장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제창합니다. “권위는 게으름을 의미하며, 자유는 노동을 의미한다. 노동은 생명이고, 게으름은 죽음이다.” (Déjaque B: 155).

 

19. 교육: 위마니스페르는 교육의 영역에서도 자율성의 원칙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학생이든 교사든 간에 자신의 의지에 상응하게 무언가를 배우고 가르칩니다. 교육의 내용은 삶에 있어서 필요한 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으로 정해집니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교과목도 인위적으로 설정되어 있지 않으며, 수업 시작 시간과 수업 마치는 시간이 처음부터 확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농기구의 생산과 농기구의 활용법을 배우는가 하면, 어떤 학생들은 미술 작품 제작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돌, 대리석 그리고 여러 가지 제재를 활용하여 조각 작품을 생산해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육에 있어서 위로부터 내려오는, 이른바 상명하달의 강령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밖에 데자크의 공동체에서는 무상 교육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20. 단일 언어 내지 혼혈 문화에 대한 찬양: 인류는 공동의 삶을 통해서 인류는 생물학적으로 단일 인종으로 발전되고, 언어학적으로는 단일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단일 인종이리고 해서 오로지 백인을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데자크는 아시아인, 유럽인, 아프리카인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서로 피를 나누어 피부 차이, 언어의 차이를 없애나가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하나의 단일성을 이루어, 평화롭게 아우르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온화한 성품과 자부심 그리고 고귀함은 찬란하게 빛을 발하리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인류는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합니다. (Déjaque B: 172). 여기서 데자크는 과거의 계몽주의자인 드니 디드로에서 많은 사항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드니 디드로는 이미 앞장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부갱빌 여행기 보유』에서 백인의 영특한 두뇌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강인한 체력은 혼혈인을 통해 계승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나아가 남쪽 대륙을 가상적으로 설계한 푸아니, 그리고 “고결한 야생”을 언급한 라옹탕 역시 인류가 차제에는 혼혈을 통해서 단일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창한 바 있습니다. 인종과 인종을 구분하고, 서로 대립하고 차단하는 것 자체가 민족적 이기주의를 부추기고 세계의 평화에 불을 지피는 짓거리나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인종으로 구분하고, 출신 지역을 따지는 것은 나중에는 얼마든지 폐쇄적 분리주의자 내지 국수주의자들의 정치적 농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1. (요약) 아나키즘과 과학 기술이 서로 접목된 이상 사회: 얼핏 보면 데자크의 유토피아는 “전-지구적인 무정부주의의 연대”로 이해될 수 있는데 (달라스-로세리외: 209), 부분적으로 푸리에의 아나키즘 공동체를 모방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푸리에의 “팔랑스테르”와는 한 가지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지닙니다. 그것은 데자크가 놀라울 정도로 과감하게 아나키즘과 발전된 과학 기술을 서로 결합시켜, 공동체 내의 노동의 생산성을 극대화시켰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푸리에 역시 과학 기술을 경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푸리에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산업 혁명의 중요성 및 놀라운 영향력 등을 직접 피부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발전된 과학 기술을 필연적으로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데자크는 푸리에와는 달리 19세기의 과학 기술의 가능성과 이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 수단에 관해서 잘 숙지하고 있었습니다. (Affeldt-Schmidt: 188f). 게다가 그가 공동체의 번영을 위하여 찬란한 생산력을 애타게 갈망한 까닭은 자신이 영위해온 비참한 삶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24. 위마니스페르의 한계 그리고 영향: 위마니스페르는 5천에서 6천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경제 활동을 위한 세부 지침과 최소한의 질서가 정해지는 게 바람직한데, 데자크는 이러한 기준과 구체적 강령을 의도적으로 설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상부의 질서에 집착하지 않고 구성원들로 하여금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공동체는 크든 작든 간에 하나의 최소한의 질서의 체계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령 회원들을 하나로 결속시킬 수 있는 공동의 신앙이라든가 가슴속에 간직한 어떤 이념은 -어떠한 유형의 공동체든 간에- 하나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자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공동체는 빠르든 늦든 간에 해체되거나 와해되고 말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데자크는 바로 이 점을 간과하였습니다. 그는 신대륙에서 아나키즘 공동체의 실험을 성공리에 실천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프랑스로 돌아와서 경제적으로 거의 절망적인 상태 속에서 목숨을 연명하게 된 것도 궁극적으로 공동체를 보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질서 내지 체제 고수를 위한 장치를 등한시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데자크는 아나키즘과 과학 기술을 서로 접목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데자크 자신이 개인적으로 성취하지 못한 욕망 충족의 측면에서 이해될 뿐 아니라,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놀고먹는 사회에 관한 소시민들의 갈망의 상과도 기막히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데자크의 공동체 사상은 나중에 로시의 아나키즘 공동체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데자크의 아나키즘 공동체는 19세기 중엽 유럽의 가부장주의 시민 사회에서 결실을 맺을 수 없었지만, 20세기 후반부 이후의 생태 공동체 운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습니다.

 

 

참고 문헌

 

- 달라스-로세리외, 욜렌 (2007): 미래의 기억, 김휘석 역, 토머스 모어에서 레닌까지. 또 다른 사회에 대한 영원한 꿈, 서해문집.

- Affeldt-Schmidt, Birgit (1991): Fortschrittsutopien, Vom Wandel der utopischen Literatur im 19. Jahrhundert, Stuttgart.

- Borries, Achim von u. a. (2007)(hrsg.): Anarchismus. Theorie, Kritik, Utopie. Texte und Kommentare. Verlag Graswurzelrevolution, Nettersheim.

- Bruns, Theo (1980): Einleitung, in: Joseph Déjacque, Utopie der Barrikaden, (hrsg.) Theo Bruns, Berlin, 9 – 23.

- Déjaque A (1980): Déjaque, Joseph, Die revoluionäre Frage, in: ders., Utopie der Barrikaden, (hrsg.) Theo Brund, Berlin 1980, 25 – 67.

- Déjaque B (1980): Déjaque, Joseph, Die Humanisphäre, anarchistische Utopie, in: ders., Utopie der Barrikaden, (hrsg.) Theo Bruns, Berlin, 101 – 189.

- Euchner, Walter u. a (2000).: Geschichte der sozialen Ideen in Deutschland. Sozialismus- Katholische Soziallehre Protestantische Sozialethik, Essen, 19 – 145.

- Mackay, John Henry (1924): Die Anarchisten. Kulturgemälde aus dem Ende des XIX Jahrhunderts, Berlin.

- Nettlau. Max (2016): A Short History of Anarchism, Kindle: München.

- Saage, Richard (2002): Utopische Profile Bd. III, Industrelle Revolution und Technischer Staat im 19. Jahrhundert, Mün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