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시 그들은 누구인가? 오늘은 프랑스의 낭만주의자, 프로스퍼 메리메Prosper Merimée, 1803 – 1870)의 작품 「카르멘Carmen」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원래 “집시Gypsy”란 단어는 “이집트의”라는 뜻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실제로 집시는 15세기 초에 이집트를 포함한 비잔틴 문화권에서 유래한 집단을 가리킵니다. 독일 지역에서는 보헤미안으로 일컬어졌으며, 에스파냐 사람들은 “플라밍고”라고 명명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단어들은 모두 “동방에서 유래한 이방인”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그들은 음주가무 그리고 카드놀이를 즐기는데, 판돈이 놀라가면, 교묘한 속임수를 사용하여 돈을 버는 타짜의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녀 모두 성적으로 자유분방하여, 구속되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유랑민들로서 주이진 국가 내에서 언제나 아웃사이더로 취급당하는 자들입니다. 특히 히틀러의 제 3제국에서는 집시 역시 정치범과 동성연애자들과 함께 사회의 쓰레기 같은 족속으로 간주되어서 강제수용소에서 수감되기도 하였습니다.
2. 어리석은 순정남, 돈 호세: 메리메는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곱추』 (1831)를 읽고 이 작품을 착안한 게 분명합니다. 추악하지만 선량한 곱사등이, 과지모도 그리고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근접하기 어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 사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낭만주의자 메리메의 마음에 문학적 착상의 불을 지핀 게 분명합니다, 소설의 화자는 프랑스 출신의 고고학자입니다. 그는 열정적 이야기를 가급적이면 냉정하게 서술합니다. 놀라운 것은 화자가 소설 속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사건을 논평할 뿐 아니라, 카르멘과 돈 호세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그러한 한 프랑스 고고학자는 비인칭적 주체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송진석: 238).
돈 호세는 에스파냐 북부 바스크 지역의 기마 포병대에서 존경받는 군인입니다. 그는 우연히 세비야에서 담배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집시 여인을 만납니다. 카르멘은 자신감 넘치고 어느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기질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돈 호세는 그미를 처음 보는 순간 가슴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카르멘은 자신을 사랑하면 다친다고 경고하지만, 돈 호세는 자신의 열정을 도저히 제어할 수 없음을 느낍니다. 어느 날 카르멘은 함께 일하는 다른 여성에게 심리적으로 심한 상처를 주게 되고, 당국은 그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돈 호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려고 합니다. 그는 카르멘을 송치하다가 역으로 그미에게 설득 당하고 맙니다. 자신을 풀어달라는 그미의 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끝내 도망치도록 수수방관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돈 호세는 상부로부터 문초를 받게 되고 결국 한 계급 강등되는 수모를 겪습니다.
3. 돈 호세의 사랑은 집착인가? 아니면 거절당할수록 더 강렬하게 불타는 게 남자의 연정인가?: 돈 호세는 자신이 카르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깨닫지 못합니다. 마치 마법에 걸린 듯이 어떤 기이한 열정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언제나 카르멘 곁에서 서성거리는 이유를 간파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군인으로 살지 않고, 카르멘이 속해 있는 집시들과 함께 산속에서 집단생활을 영위합니다. 몰래 물품을 국경 안으로 수입하는 일, 즉 밀수업에 가담하게 됩니다. 일반 사람들은 천박하고 바람기 많은 집시 여인으로 인하여 자신의 모든 삶을 저버린 돈 호세를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으로 동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게 경멸의 눈길을 보냅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돈 호세의 사랑과 집착이 강해진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는 카르멘에게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해 달라고 애틋한 마음으로 호소합니다. 그렇지만 카르멘은 이러한 요구에 무척 답답해합니다. 그것은 카르멘의 입장에서 고찰하면 사랑을 사적 소유하려는 강박적 의지 내지는 사랑을 차지하려는 병적인 집착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그의 애타는 사랑의 호소는 결국 카르멘의 마음을 더욱 차갑게 만들고, 정나미 떨어지게 만듭니다. 프랑스 고고학자는 카르멘에 대한 감정을 접고 돌아서는데 비해, 돈 호세는 끝내 그미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4.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냉정한 나르시시즘: 카르멘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다 결국 비극을 초래하는 여성의 전형입니다. 카르멘은 자신의 얼굴과 몸매에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카르멘의 나르시시즘은 도를 넘어선 것입니다. 그미의 자기만족은 안타깝게도 한 남자의 사랑을 거부하게 작용합니다. 다른 한편 수많은 남자들의 구애와 사랑 고백은 의외로 그미를 즐겁게 해줍니다. 이러한 심리적 태도는 카르멘 콤플렉스라고 명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심리가 자리하게 된 배경에는 집시라는 생활방식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인기 연예인이 특정 이성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대신 ,모든 이성들의 사랑을 끌어내기를 희구하듯이, 카르멘 역시 모든 남자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카르멘은 자신의 삶에 철저할 정도로 냉혹한 여성은 아닙니다. 그미는 오히려 빨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그미는 자신의 점괘를 보았는데, 그 점괘에 의하면 자신이 지극히 사랑하는 남자로 인하여 일찍 사망한다고 했습니다. 어리석게도 카르멘은 이러한 운명을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이를 잘 알면서도 카르멘은 오로지 자신에게 순정을 바치려는 가엾은 사내, 돈 호세를 멀리합니다. 카르멘은 마치 파파라치처럼 끈덕지게 자신의 뒤를 쫓는 순정남을 급기야는 증오하기 시작합니다.
5. 돈 호세가 이명 환자라면, 카르멘은 코골이 환자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간 유형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명 환자와 코골이 환자가 그들입니다. 이명이란 주지하다시피 일종의 환청으로 인한 질병입니다. 이명 환자는 귀에서 들리는 여러 가지 소음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이명이 발생하는 원인으로서 우리는 때로는 정신 질환을 들 수 있고, 때로는 빈혈, 갑상선 기능 항진증, 갑상선 기능 저하증, 당뇨, 고 콜레스테롤 혈증, 매독, 면역결핍증 등을 언급하곤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인간의 신체적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달팽이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명 환자가 어지럼증으로 혼자서 고통스러워하는 데 비해, 주위 사람들은 이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정 반대의 유형이 있습니다. 코골이 환자는 스스로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데, 함께 잠을 자는 사람이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새곤 합니다. 돈 호세는 비유적으로 말하면 이명 환자입니다. 자신은 불가능한 사랑으로 인하여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는데, 주위의 집시들은 이러한 고통을 조금도 이해해주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 카르멘은 코골이 환자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돈 호세에게 얼마나 커다란 상처를 가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 치마폭이 넓은 처녀이지만, 깊은 사랑의 감정을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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