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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설호: (4) P. M.의 "볼로 볼로"

필자 (匹子) 2023. 2. 13. 06:01

(앞에서 계속됩니다.)

 

16. 자적 야수로서의 자기 파괴적이고 성도착적 인간상: 20세기 중엽까지 인간은 수많은 전쟁, 인종 탄압 등을 자행하였습니다. 이로써 제기된 것은 타인종을 살상하는 야수의 모습입니다. 게다가 인간의 문명을 위해서 생태계는 서서히 파괴되기에 이르렀습니다. 70년대 이후에 나타난 문학 유토피아는 이러한 세계의 상황을 반영하면서 새로운 인간형을 설정합니다. 이를테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 파괴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신뢰할 수 없는 지적 야수라고 합니다. 인간은 역설적으로 자기 파괴적이며, 성 도착적 충동을 지닌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는 갈등을 해결하려는 여러 가지 유형의 유토피아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가령 칼렌바크의 『에코토피아』에서는 전쟁놀이가 정기적으로 치러지는데, 서로 피터지게 싸우는 놀이를 통해서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볼로의 볼로』에서도 엄격한 규칙 하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 결투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결투를 “야카스 yakas”라고 명명합니다. 볼로의 사람들은 이러한 결투를 통해서 자신의 우울 내지 심리적 좌절감을 떨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볼로 가운데에는 이러한 결투를 상시적으로 치르는 볼로가 있습니다. 볼로 사람들은 다음의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즉 서로 피 흘리면서 싸우는 게임을 통해서 국가의 대중적 전쟁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7. 분권화된 시장 경제, 화폐는 드물게 사용되고 있다: 경제 역시 인간의 변화된 본성에 맞추어 변모되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소유물에 집착하는 동물입니다. 그렇기에 경제는 더 이상 (과거 고전적 유토피아에서 나타난 바 있는) 전적으로 이타주의의 생활 방식에 토대를 두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 사람들은 물품을 생산하여, 그것들을 거대한 물품 보관소에 저장해 두었습니다. 공동체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물품을 가지고 가면 족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볼로는 자신의 고유한 경제적 조합을 결성하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의 수는 정해져 있으며, 서로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이타주의의 태도를 취하면서 상대방을 도우며 함께 노동합니다. 이들이 이타주의의 태도를 취하는 까닭은 이웃의 노동이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 결코 공동체의 강령 때문은 아닙니다. 다른 볼로의 사람들은 인접해 있는 볼로에서 생산된 물품들을 물물 교환의 방식으로 구매합니다. 이 경우 모든 것은 분권화된 시장 경제의 체제 속에서 이행되고 있습니다. 이 경우 화폐는 사용되지 않으며, 공동체 사람들의 모든 재화의 수입과 지출은 물품 거래소에서 제각기 기록됩니다.

 

18. 농업에 종사해야 하는 의무: 모든 볼로는 농업을 통한 식자재를 자급자족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공동체가 식료품의 자급자족을 공동체의 독립의 기본적 조건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기이하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농산품의 자급자족은 20세기 후반에 출현한 포스트 물질주의 유토피아의 특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농업 생산품의 자급자족이 생필품 결핍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채택된 르네상스 유토피아의 필연적 특성을 생각해 보세요. (70년대 이후의 유토피아는 물질적 빈곤에서 벗어난 현실 상태에서 설계된 유토피아이므로 “포스트 물질주의의 유토피아”로 규정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농사짓는 일은 그다지 과학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감이 아닙니다. 모든 공동체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한다는 것은 볼로 공동체에서는 하나의 의무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볼로 사회의 유일한 강제적 규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19. 직접적으로 행하는 육체노동, 농사짓기: 볼로 공동체에서는 밭을 직접 가꾸어 곡식과 과일 그리고 채소를 생산하는 행위는 하나의 의무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강제 규정은 고전적 유토피아에서 언급되는 농업 종사의 의무와는 약간 다른 각도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농업 생산을 위한 자연과학 기술이 발달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힘든 육체노동을 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P. M.은 공동체 사람들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자연 과학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게 조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노동을 직접 행하게 함으로써, 고도의 기술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차제에 산업에 대한 욕구 내지는 산업 발전에 대한 필요성을 약화하도록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육체노동은 공동체 사람들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20. 재화의 분배 방법: 볼로 사람들은 모든 생필품을 물품 보관소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혹은 이웃이 생산한 물건을 필요한 만큼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이는 작가의 발언에 의하면 사회주의 내지는 공산주의의 생활방식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수도 전기는 공동으로 사용되고, 소금 설탕 등은 공짜로 분배됩니다. 특수한 물품의 경우 사람들은 세 가지 방식으로 물품들을 다른 볼로와 교환합니다. 첫째는 물물 교환의 방식입니다. 가령 향신료, 올리브유, 호두, 대추, 치즈 그리고 소시지 등은 직접 생산이 불가능할 경우 다른 물품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다른 볼로를 통해서 공급받습니다.

 

둘째는 기술 교환입니다. 인접한 볼로스들은 상호 연구 교환 협정을 맺어서 인접한 이웃 볼로와 상호부조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를테면 어느 불로가 다른 볼로스의 창문을 수리해주면, 이번에는 다른 볼로가 이웃 볼로의 화장실을 고쳐줍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기술 교환을 “페노 feno”라고 명명합니다. 셋째는 기계의 공동 사용을 가리킵니다. 모든 볼로는 건축 기계, 이를테면 포클레인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볼로와 볼로 사이에는 중앙집권적으로 운영되는 기계 저장소가 위치합니다. 사람들은 필요할 경우 그곳으로 가서 일정 기간 동안 사용할 기계들을 빌려올 수 있습니다.

 

21. 화폐의 사용과 시장과 바자회: 화폐의 경우 교환의 매개물로서 일부 용인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생필품의 경우 사람들은 화폐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특별한 물품을 소유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시장과 바자회에서 방랑 상인들에게 화폐를 지불하고 물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귀중품, 기이한 옷, CD, 예술 작품, 화장품 등은 화폐로 구매가 가능합니다. 여기서 지방 화폐가 사용되는가, 미국 달러가 공용으로 사용되는가? 하는 물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볼로 공동체는 가급적이면 생태계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는 자연과학과 기술을 도입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다고 해서 『볼로의 볼로』에서 고도의 기술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기 제품, 자동차 연료 등과 같은 특정 상품은 예외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2. 볼로의 자동차 산업: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거의 자가용을 타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하나의 볼로 공동체마다 약 20대의 공용 자동차가 비치되어 있어서, 필요한 경우 얼마든지 대출이 가능합니다. 볼로스에서는 자동차 산업이 거의 축소화되어 있습니다. 은행 역시 더 이상 자동차 산업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석유 산업과 같은 중공업이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가전제품 또한 생산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볼로의 볼로는 생태계를 교란하는 산업을 더 이상 육성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자동차 생산이 완전히 중단된 것은 아닙니다. 모든 필요한 공업 용품은 특정 볼로스에서 부품으로 생산되고 있습니다. 자동차 한 대를 필로 하는 어떤 볼로는 다른 볼로로부터 부품들을 공급받아서, 공장에서 직접 조립해서 사용합니다.

 

23. 생태학의 관심사보다 중요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욕구: 볼로 사람들은 어니스트 칼렌바크의 『에코토피아』의 사람들처럼 그렇게 진지하게 생태계 파괴에 대해 깊은 우려와 최대한의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볼로 공동체가 생태계 문제를 간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볼로 사람들이 기존의 산업 발전 중심의 경제 체제를 지양하고, 현대의 과학 기술에 대해서 소극적 태도를 취하며 살아가는 까닭은 생태계의 난제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의지 때문입니다. P. M.은 볼로 공동체 내에서 자연 환경의 보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볼로 사람들은 자연의 자원을 최대한 절약하는 가운데 경제성장을 최소화하려는 경제 정책을 추구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자치적 방식으로 농업에 종사하면서 살아갑니다. 볼로 공동체는 밭을 직접 가꾸어나감으로써, 보다 건강한 식자재를 얻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행위는 건강한 생태계를 복원시키려는 노력에 기인하는 게 아니라, 무엇보다도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되는 조처들입니다. 볼로 공동체는 경제 성장을 줄이고 소비를 억제하는 대신에, 이에 대한 보상으로서 개인적으로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려고 합니다.

 

24. P. M. 의 공동체의 실현 가능성: 이 문제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닙니다. 인간은 5분 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볼로의 볼로』가 미래에 나타날 이상적 삶의 상태를 선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삶의 상태를 실현하는 가능성으로서 작가는 개인을 내세웁니다. 다시 말해 혁명을 이어나가는 주체는 당도 아니고 조직체도 아닙니다. 당이나 조직체는 기계의 싹과 같습니다. 그것들은 나중에 거대한 권력을 지닐 수 있으며, 권력을 남용할 소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개별적인 개인들은 주어진 시스템에 대해 사보타주의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자급자족의 공동체에 개별적으로 가담하여 자유롭게 연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돈”이라든가. “거대 산업” 그리고 “국가”는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하리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이행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테면 19세기에는 역사적 합법칙성이 작용하여, 유토피아의 의향은 거의 필연적으로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그리고 소련 국가의 탄생 등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지만 20세기 후반 이후의 현실은 사정이 다릅니다. 『볼로의 볼로』는 어떤 출발점으로서의 유토피아이며, 하나의 임시적인 제안으로 그칠 수도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