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레싱의 "에밀리아 갈로티" (2)

필자 (匹子) 2022. 1. 23. 10:19

(앞에서 이어집니다.)

 

물론 극작품은 맨 처음의 작업 계획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권력자의 사악한 집단 내지 국가 체제 전체의 전복 등을 의도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관객은 전제 군주가 휘두르는 권력의 횡포 그리고 권력자의 농간 등에 대한 비판적 태도 등을 명확히 접할 수 있습니다. 오르시나 그리고 에밀리아 등에 대한 왕자의 애정은 사랑을 권력으로 강탈하는 짓 내지는 무작위적인 정복의 욕구와 밀접한 관련성을 지닙니다. 곤차가는 사악하고도 잔악한 행위를 직접 자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하수인인 마리넬리에게 떠맡긴 다음, 나중에 살인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하수인에게 전가시킵니다.

 

그는 결혼을 앞둔 남녀의 행복을 무참하게 짓밟을 정도로 방약무인하게 행동하며, 에밀리아는 왕자의 간계 때문에 아버지에 의해서 목숨을 잃습니다. 모든 것을 권력으로써 장악하는 봉건주의의 원칙은 에밀리아 그리고 그미의 아버지로 대변되고 있는 성장하는 시민계급의 원칙에 대립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 계급은 권력을 지닌 귀족 계급에 혁명적 저항으로 대응하지 않고, 자신을 희생시킬 뿐입니다. 여주인공이 아버지의 손에 찔려 죽는 게 바로 그러한 희생입니다. 극작가는 여주인공의 죽음을 마치 “폭풍 전야에 꽃잎을 잃는” 장미의 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제 군주의 음모로 인하여 가족 구성원 전체는 희생되고 맙니다. 오도아르도는 전통적인 가부장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도 제대로 (도덕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세계로부터 딸을 구제하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사위가 될 뻔했던 아피아니와 함께 사악한 왕궁을 떠나 편안한 전원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레싱의 극작품 「민나 폰 바른헬름 Minna von Barnhelm」에 등장하는 텔하임 소령 Major Tellheim에게서도 엿보이는 자세입니다.

 

여주인공은 오도아르도의 살해 행위로써 결국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스스로 유혹을 떨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조리 상실합니다. 친애하는 J, 마지막 대목은 연극의 역사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여주인공의 아버지는 전통적인 가부장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실 오도아르도는 자신의 딸로 하여금 아직 성숙하지 못한 봉건주의 세상 속에서 스스로 선택하도록 조처하지 않았습니다.

 

친애하는 J, 그렇다면 레싱은 작품의 결말부에서 실패를 드러낸 셈일까요? 글쎄요. 마지막 장면에서 레싱은 (리비우스가 전하는 것과 같은) 폭동으로 인한 어떤 정치적 변화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작품은 종교적 의미에서 저승의 구원에 대한 위안으로 해석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레싱이 작품을 집필한 다음에 오랜 시간 원고를 서랍 속에 넣어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작품의 주제가 비록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권력자의 비리와 사악함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레싱은 궁극적으로 봉건적 전제군주에 대한 무조건적 저항을 일차적 관건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일차적으로 18세기 유럽 시민들의 반정치적 태도를 비판하려 했을지 모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극작품을 감상한 독일 관객들은 작품의 주제를 결코 정치적 사항으로 수용하지 않고, 애정 관계에 얽힌 사건으로 이해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프리드리히 슐레겔 Friedrich Schlegel은 당시 관객들의 반정치적 태도를 고려하면서, 「에밀리아 갈로티」를 “연극의 대수학 Algebra에 관한 거대한 예”라고 냉담하게 평한 바 있습니다.

 

에밀리아 갈로티는 윤도중 교수의 번역으로 "현인 나탄" (창작과 비평사)에 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