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빌란트의 "아가톤의 이야기" (2)

필자 (匹子) 2022. 1. 18. 11:12

아가톤은 델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르페우스 종교에 의해 교육받았다. 오르페우스 종교는 하나의 시스템이며, 이에 의하면 창세기가 세계의 창조자만큼이나 측량할 수 없다고 한다. 열여덟 살 되던 때에 어느 여자가 아가톤에게 애정을 품는다. 그미는 피티아라고 불리는 나이든 여 사제였다. 당시 아가톤은 프시케를 사랑하는 순정남이었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피티아는 천진난만한 프시케를 추방시키고, 아가톤 또한 델피를 떠나도록 조처하였던 것이다.

 

델피를 떠난 아가톤은 아테네 풀신의 어느 부유한 관료와 친구 관계를 맺게 된다. 관료는 주인공의 아버지와 잘 아는 사이였으며, 아가톤이 고향에서 높은 명예를 얻도록 도와준다. 그렇지만 그 관료의 동료 제자들은 주인공의 경력에 대해 몹시 질투심을 느낀다. 그리하여 아가톤은 아테네에서 추방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이상이 아가톤이 다나에에게 들려준 자신의 과거사이다.

 

아가톤은 그리스 출신의 창녀 다나에를 사랑함으로써 그미를 정결한 여성으로 변모시킨다. 스미르나의 부유한 궤변론자, 히피아스는 주인공, 아가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 못한 셈이다. 그는 주인공을 부를 탐하는 향락주의자로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행복한 남녀에 질투심을 느낀 히피아스는 주인공에게 다나에의 과거사를 들려줌으로써, 심정적으로 괴롭히고 만다. 말하자면 다나에는 오랫동안 그리스 창녀로 살아가며, 돈 많은 남자들과 살을 섞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을 들은 아가톤은 비로 과거사이지만, 다나에에 대한 실망감을 떨칠 수 없게 된다.

 

이윽고 아가톤은 다나에가 살고 있는 스미르나를 떠난다. 그리하여 그가 당도한 곳은 시라쿠스 섬이었다. 이곳은 젊은 디오니소스가 다스리고 있었다. 젊은 디오니소스 왕은 고립된 그곳에서 향락적 삶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서 주인공은 왕의 환심을 사게 된다. 아가톤은 부패한 이곳 지역을 하나의 이상적인 국가로 만들려고 계획하지만, 다시금 실패를 맛본다. 이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아가톤은 젊은 왕과 가깝다는 이유로 구금되고 만다. 죽을 고비를 넘긴 주인공은 결국 도주에 성공한다.

 

주인공은 다시 히피아스를 만난다. 그는 주인공에게 다시금 친절을 베풀려고 하지만, 아가톤은 이를 거절한다. “나의 마음은 저절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떤 무엇에 빠져듭니다. 영원히 진실하고, 정의로우며, 선한 무엇, 바로 그것입니다.” 아가톤은 아버지의 친구, 아르히타스를 찾아간다. 아르히타스는 타렌트 지방의 현명한 군주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아르히타스의 순수한 성격은 그의 눈 그리고 그의 얼굴에 이미 그려져 있었다. “아르히타스의 눈 그리고 그의 용모에는 진리, 조용한 위대성 그리고 품위 등이 새겨져 있었다.

 

아가톤은 아르히타스의 집에서 꿈에 그리던 옛 애인, 프시케를 다시 만난다. 그러나 그미는 아르히타스의 아들이자 주인공의 친구인 크리톨라우스의 부인이 되어 있다. 주인공은 이를 접하고 몹시 낙심한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방랑은 오로지 사랑하는 프시케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아가톤은 최소한 한 가지 위안을 얻게 된다. 프시케는 오래 전에 죽은 줄로 알았던 자신의 여동생이었던 것이다. 아가톤은 아르히타스의 집에 오래 머물면서, 많은 것을 공부한다. 그는 초감각적인 대상에 관해 깊이 연구하고, 이에 관해 아르히타스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한다. 다나에가 아가톤을 찾아왔던 것이다. 다나에는 애인 아가톤이 떠난 뒤 선을 행하면서 조용히 살아왔다. 다나에의 등장은 주인공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아가톤은 다나에를 아내로 맞으려고 한다. 스스로 역시 자신의 돌발적 행동을 후회하고 있던 터였다. 그렇지만 다나에는 이를 정중히 거절한다. 아가톤과 다나에는 많은 대화를 나눈다. 다나에는 자신의 과거사를 모조리 들려준다. 그미는 어째서 창녀가 되었는지, 현란하고도 슬픈 창녀의 삶 등을 모조리 고백한다. 다나에는 차제에 카리클레아라는 가명을 사용하면서, 선을 실천하며 살아가겠노라고 말한다.

 

아가톤 역시 다나에의 계획에 약간 자극을 받고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저술하기로 결심한다. 시간이 흐른 뒤에 아가톤의 이야기는 아르히타스에게 건네진다. “이렇게 하여 아가톤 스스로 설정한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탄생하였다. 이는 주인공의 정신 그리고 심장에서 나온 고유한 것으로서, 그 자체 유일하고도 가장 순수한 근원과 다름이 없었다. 바로 이러한 근원으로부터 작품 속에 보존된 소식들은 완전히 소진되어 있지 않는가?

 

아르히타스는 독서 후에 아가톤이 인간적 완전성이라는 가장 높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두 가지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하나는 다나에-카리클레아에 대한 타오르는 사랑의 정념을 잠재우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머리와 가슴을 하나로 일치시켜 도덕적 인간의 본질의 내용과 화해시키는 일이라고 한다. 아르히타스는 주인공에게 진리와 신성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해 있는, 고유한 삶을 살아가라고 권고한다. 아가톤은 그의 말을 듣고 원해 자신이 생각하던 바를 재확인한다.

 

그리하여 아가톤은 세계를 방랑한다. 타민족의 삶을 피부로 접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확신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유일한 것은 인간이 도덕적으로 더 나아지는 일이며, 이를 해명하는 작업이라고 말이다. 도덕적으로 더 나아짐으로써 더 나은 시대에 대한 희망이 싹틀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침내 자신을 발견한 아가톤은 타렌트 지역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즐겁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공화국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한다.

 

빌란트는 헨리 필딩Henry Fielding의 소설, 『탐험가 톰 존스의 이야기The History of Tom Jones a Foundling』 (1749)을 바탕으로 장편 소설을 집필하였다. 그렇지만 빌란트의 작품은 필딩의 통속 소설의 수준을 완전히 극복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다. 60년대에 프리드리히 젱글레Friedrich Sengle 그리고 프리드리히 바이스너Friedrich Beißner 등과 같은 연구가들은 『아가톤의 이야기』를 고전주의 교양 소설의 이전 단계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빌란트의 훌륭한 작품이 출현했기 때문에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와 같은 대작이 창조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현대의 연구는 작품에 나타난 자전적 요소를 부각시키고 있다. 가령 아가톤이 아테네 도주는 작가 빌란트의 비베라흐로 향한 이주를 연상시킨다. 다나에는 빌란트의 애인, 크리스티네 호겔과 여러 가지 면에서 일치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빌란트의 장편 소설은 오히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의 고뇌』의 선구적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관적으로 반응하고 성찰하는 자아는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보존하는 데 실패한다. 작품에서 이채로운 것은 맨 처음에는 모든 게 삼인칭으로 묘사되다가, 나중에 일인칭 고백 형식으로 서술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근본적으로 작가가 내면적으로 무언가를 고백하려고 했다는 가설을 입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