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은 어째서 아름답게 느껴지고, 성은 더럽게 비치는가?: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더러운 성 사이의 위화감은 어느 정도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가? 이 물음은 주어진 사회의 강제적 성윤리를 진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질문입니다. 어째서 사랑이 마치 찬란한 연꽃처럼 아름답게 수용되지만, 섹스는 마치 진창 속에서 영그는 연의 뿌리처럼 더럽게 각인되는 것일까요? 사실 사랑과 성은 동물에게는 동일한 방식으로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두 단어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온존하고 있습니다.
이는 순결 이데올로기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미성년자들, 특히 여성들의 혼전 순결을 강요하였습니다. 혼전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성년자들이 성을 아예 처음부터 접하지 못하게 하거나, 성이 더럽고 끔찍한 무엇이라고 교육시키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한국, 대만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 그리고 중동 국가 등의 나라에서는 사랑 그리고 성 사이에 대한 인식 차이가 엄청나게 큰 반면에, 유럽과 미국 등의 나라에서는 사랑은 성을 나누기 위한 전초적인 단계이고, 성은 사랑을 확인하려는 인간 동물의 몸부림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 점을 인식하는 일이야 말로 유럽 문화를 공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일감이라고 여겨집니다.
2. 사랑과 성은 동일한 생명체 속에 도사린 욕망이다.: 만약 사랑과 성이 동일한 것이라고 수용하는 순간, 우리는 이른바 “외설 문학”이라는 표현 속에 담긴 허구를 인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애정 문학은 존재하지만, 외설 문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문학이 인간의 가능성의 현실 그리고 내적 갈망을 표현하는 수단의 예술이라면, 적어도 문학을 그러한 영역으로 수용한다면, 우리는 남녀 간의 상열지사를 무턱대고 더럽고 추악하다고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사랑과 성을 동등한 기능을 지닌 의미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외설과 음란성에 관한 도덕적 기준을 서서히 떨쳐버리게 될 것입니다. 주어진 현실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문학에 있어서 외설성 그리고 음란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치 “여성 작가”라는 표현이 페미니스트들에게 하나의 끔찍한 수치로 작용하듯이, “외설 문학”은 먼 훗날 기껏해야 검열관의 표독스러운 잣대로 기능했다고 문학의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3. 니콜라스 에듬 레티프 드 라 브르톤은 오랫동안 세인에게 잊혀졌다가 21세기에 이르러 각광을 받는 프랑스의 소설가입니다. 오늘 다루려고 하는 것은 그의 『니콜라씨, 혹은 벗겨진 인간의 심장Monsieur Nicolas ou Le cœur humain dévoilé』입니다. 이것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서술한 장편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도합 16장으로 구분되는데, 1794년에서 1797년 사이에 집필되고 발표되었습니다. 『니콜라씨』는 약 5000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작품으로서 세계 문학에서 거의 유례가 없는 대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인공은 왕성한 성욕을 자랑하는 기이한 인물로서, 지방에서 파리로 올라온 출판업자입니다. 내용을 고찰할 때 주인공은 작가를 방불케 하는 인물입니다. 시골에 살다가 파리로 이주한 니콜라씨는 작품을 집필하여, 이를 지속적으로 책으로 간행합니다. 스스로 책을 집필하고, 교정하며 조판한 책은 모두 소설 작품으로서 도합 250권이나 됩니다. 다만 돈벌이가 되지 않아서 쓰라린 가난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3. 파리의 소시민 그리고 무산계급의 사랑의 삶: 레티프가 서술하는 인물들은 시골과 도시에 거주하는 단순한 사람들입니다. 주인공 니콜라씨는 청년시절부터 왕성한 성욕을 자랑하면서 성을 탐하기 시작합니다. 고향을 떠나 파리로 올라온 니콜라씨는 파리의 중심가에 해당하는 구역, 포부르 생 제르망Faubourg St. Germain에서 주로 생활하면서, 여성들과 교제합니다. 그의 유혹은 대부분 성공을 거둡니다. 니콜라씨는 처녀든 유부녀든 가리지 않고 약 700 명의 여성들과 살을 섞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자신의 성 도락의 경험을 달력에 빼곡하게 기술해 둔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니콜라씨의 취미는 달력에 기록된 여성의 이름 그리고 동침의 세부적 사항들을 바라보면서 그날의 짜릿함을 떠올리며 쾌감을 추체험하는 일입니다. 니콜라씨의 연인들은 시골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들이 태반이며, 파리에서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여성들도 상당수에 달했습니다. 이들의 직업은 하녀, 세탁하는 여자, 판매원으로 일하는 여자, 이른바 "공순이"라고 놀림당하는 공장 노동자, 몸 파는 여인들 등 매우 다양했습니다.
4. 여성의 신발 모으기, 혹은 페티시즘: 레티프는 여성들 가운데에서 특히 창녀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가급적이면 그들을 존중해주곤 하였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엽색 행각만을 서술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지엽적으로 서술한 것은 사악한 사회 계층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창녀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그들에게서 정기적으로 돈을 갈취하는 자들은 경찰들이었으며, 몸 파는 여자들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온갖 변태 행위를 강요하는 자들은 방탕한 귀족들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창녀들은 일부일처제의 사회 내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그야말로 버림받은 인간군에 속했습니다.
니콜라씨는 섹스 파트너를 선택하는 데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이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도 않았고, 뚱뚱하거나 야윈 여성들을 구분하지도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니콜라씨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었던 것입니다. 다만 그가 애호하는 것은 여성의 예쁘게 생긴 작은 발이었습니다. 실제로 레티프는 자신과 하룻밤을 보낸 여인들에게서 신발을 얻거나 훔치곤 하였습니다. 옹기종기 모아둔 여성의 신발들은 –마치 가수 잉글버트 험퍼딩크가 여성의 팬티를 모아 그것을 물신으로 숭배했듯이- 레티프가 깊이 애호하는 물신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5. 레티프, SM (사디즘, 마조히즘)의 성행위에 구역질을 느끼다.: 니콜라씨는 정치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장 작 루소에 열광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루소야 말로 인간의 심장에 불을 점화시키는 정념의 사상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주인공은 루소와 마찬가지로 여성과의 밀회를 통하여 자신의 심장 속에 영혼의 열정이 사랑으로 활활 불타기를 갈구하였습니다. 물론 그의 사랑은 지고의 청순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열정을 느끼기 위해서 자신의 정념에 따라 충직하게 행동하는 것이야 말로 사랑을 위한 최상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대신에 주인공은 난잡한 성적 방종이라든가, 고통을 강요하는 변태적 가학 내지 변태적 피학 행위에 대해 끔찍한 혐오감을 드러내었습니다. 레티프는 자신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작가 마르키 드 사드Marqués de Sade를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말하자면 사드가 서술하는 영혼은 끔찍한 독에 중독되어 있으며, 사드의 문학은 사랑이 아니라, 독자에게 악덕을 강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사드는 작품 속에 고문 기계를 등장시켰는데, 이러한 기계는 남성의 엽기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여성들을 고통으로 몰아가는 끔찍한 도구였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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