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야한 소설이 명작이 되다.: 피에르 A. F. 쇼데를로 드 라클로 (Pierre A. Fr. Choderlos de Laclos, 1741 - 1803)의 서간체 소설, "위험한 관계 Les Liaisons dangereuses"는 1782년 익명으로 파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총 175개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는 소설은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며,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고 도덕적으로 몹시 분개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독자들은 익살스럽고도 음탕한 텍스트에 익숙해 있었는데도, 그러한 기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작가는 루소의 『엘로이즈의 새로운 소식Nouvelle Héloїse』에 실린 모토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내 시대의 도덕을 고찰한 뒤에, 나는 이 편지들을 공개하였습니다.” 사실 드 라클로는 방종한 성 (性)생활을 묘사한 게 아니라, 소위 지성인이라는 자들의 아무런 열정 없는 기계주의의 사고를 예리하게 질타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지성인이라는 작자들은 쉽사리 악의 도구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이 독일어로 번역된 시점은 이미 1783년이었는데, 나중에 하인리히 만 또한 1905년에 이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2. 다양한 관점을 활용하는 서간체 소설: 작품은 175개의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편지 서술자는 여러 명의 등장인물입니다. 말하자면 각자가 자신의 관점에서 그들이 처하고 있는 인간관계를 서술하는 셈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전지적 시각과는 무관한 것으로서 각자의 제한된 시각에 의해서 사태 내지 상대방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같은 내용이라고 하지만, 등장인물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해석되는 효과를 드러냅니다.
이는 어쩌면 “긴장 효과Suspense-Effekt”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20세기 범죄 소설에서 이러한 관점의 변화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독자는 개별 인물들의 특성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줄거리의 진행 과정을 유추해나갈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독자는 다양한 편지를 읽으면서 발몽과 메르퉤이 사이의 음험한 계략, 고결한 투르벨 부인을 유혹하려는 발몽의 야심 등을 유추해낼 수 있습니다.
1797년에 만들어진 동판화의 한 장면
3. 방탕하고 간교한 여성, 메르퉤이 복수를 결심하다.: 주인공, 마르퀴스 메르퉤이는 파리의 귀족층 여성입니다. 과부인 그미는 음탕하고, 몹시 권력 지향적입니다. 그미의 마음은 (거의 파괴적이라 할 정도의) 지적 욕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욕구를 바탕으로 해서 메르퉤이는 권력을 추구하고, 남성 지배의 세계에 도전장을 보냅니다. 그미의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특히 남성의 마음속에 이글거리는 사랑과 욕정의 정체를 알아내는 일입니다. 어느 날 메르퉤이의 정부 (情夫) 콩트 드 제르퀘르가 다른 여성을 사랑하는 이유로 자신을 마치 헌신짝처럼 저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그미는 몹시 속상해 합니다.
어느 날 콩트 드 제르퀘르가 세실 드 볼랑쥐와 결혼하려고 합니다. 제르퀘르는 나이든 여성들과의 사랑 놀음에 더 이상 신명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숫처녀와 동침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40의 나이에 마치 꽃봉오리와 같은 10대의 처녀, 세실 드 볼랑쥐를 아내로 맞이하려고 합니다. 메르퉤이는 이때 복수를 결심합니다. 그미는 (자신의 옛 애인이자) 친구인 비콩트 드 발몽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합니다. 즉 세실을 납치해서, 그미의 성을 마구잡이로 유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4. 발몽, 메르퉤이의 제안에 자극 받다.: 발몽은 이러한 제안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어째서 메르퉤이가 하필이면 자신에게 처녀를 겁탈해달라는 부탁을 하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발몽은 천하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대단한 한량이지만, 도덕적으로 완전히 썩어문드러진 인간은 아니었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재정적으로 패망한 어느 가족의 빚을 탕감해주기도 합니다. (21편지). 그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너무나 색을 밝힌다는 점이었습니다. 메르퉤이는 이러한 제안을 성공리에 끝내면 자신도 발몽에게 돈 외의 다른 대가를 지불하겠노라는 묘한 암시를 던집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과의 동침이었습니다.
어쨌든 메르퉤이의 제안은 차제에 자신과 메르퉤이 사이의 만남을 기약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발몽으로서는 여성을 유혹하는 일이라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까지 무수한 여자들을 그런 식으로 정복해 왔기 때문입니다. 발몽은 메르퉤이의 부탁대로 세실을 유혹하여 통정하려고 계획합니다. 그는 이를 위한 사전 포석으로서 세실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세실의 어머니, 투르벨 부인은 발몽과는 이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그미는 언젠가 발몽의 엽색 행각을 방해하며, 그를 부도덕한 바람둥이라고 공개적으로 모욕한 적이 있었습니다.
5. 발몽, 투르벨 부인을 정복한 다음에 사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다.: 투르벨 부인은 남편에게 정조 지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요조숙녀입니다. 그미는 결혼과 무관한 남녀의 짝짓기 행위를 더러운 짓거리로 매도하였습니다. 그런데 투르벨 부인의 이러한 근엄함은 발몽의 마음속에 놀랍게도 딸 세실을 유혹하는 일보다, 더 강하게 투르벨 부인을 정복하고 싶은 욕구를 부추깁니다. 발몽은 한편으로는 그미를 농락함으로써 이전에 자신이 당한 공개적 모욕을 섹스를 통해서 분풀이하고 싶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난공불락의 여성을 정복할 때의 짜릿한 쾌감을 맛보고 싶어 합니다.
그리하여 발몽은 투르벨 부인에게 서서히 접근해나갑니다. 이는 신중한 계획에 따라 행해집니다. 일단 그는 애틋한 말로써 투르벨 부인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만약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말하면서 그미를 유혹합니다. 결국 투르벨 부인은 자신 때문에 죽고 못 사는 가련한 사내를 일단 구제하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하고 그에게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엽니다. 결국 발몽의 시도는 그미와 육체적 사랑을 나눔으로써 성공을 거둡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발몽이 그미와 설레는 밤을 보낸 다음에 투르벨 부인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6. 새롭게 체결된 악마의 계약: 메르퉤이는 발몽의 애정 행각을 전해 들었을 때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것은 투르벨 부인에 대한 질투의 감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메르퉤이는 발몽을 만나 그와 심한 언쟁을 벌입니다. 그미는 투르벨 부인에 대한 발몽의 사랑을 “하나의 패배”라고 규정합니다. 메르퉤이는 자신이 발몽에게 요구한 것이 투르벨 부인과의 통정이 아니라, 세실을 유혹하는 일임을 분명히 전달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요구한 임무를 수행하지 않은 발몽에게 수고비를 한 푼도 지불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메르퉤이는 다시 다음과 같이 그에게 분명하게 제안합니다. 발몽이 세실의 순결을 빼앗으면, 메르퉤이는 그에게 자신의 몸을 바칠 뿐 아니라, 약속한 거액까지 지불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그미는 자신의 정부에 복수하면서, 동시에 발몽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고 획책합니다. 이렇게 결심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투르벨 부인에 대한 자신의 시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7. 발몽, 처녀 세실의 몸을 탐하다.: 재미있는 것은 발몽이 투르벨 부인에게 그미의 딸 세실을 겁탈하려고 한다는 계획을 털어놓은 것이었습니다. 이때 투르벨 부인은 경악에 사로잡혀,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경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몽은 메르퉤이와의 약속을 실천에 옮깁니다. 어느 날 밤에 그는 세실의 침실에 몰래 잠입하여, 그미를 끌어안습니다. 처음에 세실은 자신의 방에 뛰어든 사내를 몹시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발몽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말로 세실을 안정시킨 다음에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단순히 외모만 따진다면 발몽은 참으로 아름답고 준수한 사내였습니다. 그는 아무런 경험이 없는 세실에게 달콤한 사랑의 말을 전하면서 그미를 황급히 끌어안습니다. 세실은 처음에는 저항하다가, 바람둥이의 달콤한 말에 자신도 모르게 정신이 나간 듯이 발몽의 품에 자신의 몸을 맡깁니다. 발몽은 서서히 그미의 처녀성을 유린합니다. 한 순간 경천동지의 풍파가 스쳐지나간 다음에 세실은 정신 나간 듯 의식을 잃게 됩니다. 그런데 모든 일이 끝낸 발몽은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세실의 방을 빠져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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