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발몽, 단스니에게 발각되어 결투 끝에 사망하다.: 흐릿한 불빛 사이로 뛰쳐나왔을 때 발몽은 한 남자에게 발각되고 맙니다. 그 남자는 세실을 오래전부터 사랑하면서 그미를 지켜주겠다고 맹세한 바 있는 사랑의 기사, 단스니였습니다. 이로써 두 사람 사이에 결투가 벌어집니다. 이때 단스니의 칼에 심하게 찔린 발몽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서서히 유명을 달리합니다. 죽기 전에 단스니는 편지 한 통을 발몽의 품에서 끄집어냅니다. 편지 속에는 메르퉤이의 모든 계획이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이로써 메르퉤이의 모든 계략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됩니다. 작은 질투에서 비롯된 하나의 정사가 이처럼 커다란 파국을 불러올 줄은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소설은 비극적으로 끝을 맺습니다. 투르벨 부인은 자신의 몸을 탐한 사내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던 터였는데, 발몽의 사망 소식에 커다란 충격을 받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진 그미는 순간적 격정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즉사합니다. 메르퉤이의 정부였던 콩트 드 제르퀘르는 세실에게 파혼을 선언합니다. 그렇지만 콩트 드 제르퀘르의 부도덕한 생활방식을 접하고 사람들은 음탕한 중년 사내에게 손가락질합니다. 발몽과 세실 사이에 발생한 사건은 재미있는 소문처럼 세상에 알려집니다. 세실은 발몽의 유혹으로 처녀성을 빼앗겼다는 구설수에 오르게 됩니다. 결국 젊은 처녀는 속세와 인연을 끊으려고 수도원으로 들어갑니다. 이로써 사악하고 음탕한 메르퉤이의 간계는 마지막에 성공을 거두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9. 수구 보수주의의 화신 메르퉤이: 그렇다면 메르퉤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니중에 그미는 재판에 연루되어 모든 재산을 잃게 됩니다. 신은 그미에게 끔찍한 징벌을 내립니다. 즉 천연두에 걸려 추한 얼굴로 비참하게 살아가는 게 바로 그러한 징벌이었습니다. 사실 작품 내에서 가장 끔찍한 인물이 메르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미는 과부가 된 이후로 남자에게 종속되지 않으려고 재혼을 포기하였습니다. 그후 메르퉤이는 멋진 남자들을 사귀에 그들을 섭렵해나가는 것을 즐겼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미의 마음속에 즐거움이 아니라 파괴적 욕구가 부글거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그미는 발몽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남자를 섭렵하는 일은 그 자체 패배의 선언이었다.”하고 고백합니다. 메르퉤이라는 과부는 수많은 한량들의 시선으로 고찰하면 파리의 모든 여성과 정을 통하려는 발몽과 그의 친구들에게는 수많은 여성들 가운데 한명의 대상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사항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메르퉤이는 루소와 볼테르를 탐독하는 인물로서 앙시앵레짐을 고수하는 정치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작가는 그미를 사악하게 서술함으로써 차제에 나타날 프랑스 혁명을 예찬하려고 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10. 서간체 소설의 모토: 작품은 두 개의 짤막한 모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도의를 모르고 패륜을 일삼는 썩어빠진 자들로서 우리 시대에 생존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철학과 계몽주의라는 고매한 사고가 횡행하는 시대에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남자들은 명예를 중시하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든 여자들은 수줍고 예의바르게 처신할 것을 교육받았습니다.” (2) “편지에 거론되는 사람들로부터 나 (편집자 – 역주)는 불필요한 내용을 가급적이면 삭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줄거리 그리고 등장인물의 특성을 드러내는 대목만을 독자에게 전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첫 번째 모토는 일종의 풍자로 이해됩니다. 첫 번째 편집자의 말은 완전히 거짓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됩니다. 두 번째 모토는 독자로 하여금 말과 글로 서술될 수 없는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글로 표현되지 못한 소설 속의 이야기가 얼마나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게 될지를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10. 사랑과 성을 다루는 소설, 그것은 천박하지만 재미있다.: 작가 드 라클로는 탁월한 언어로써 발몽과 메르퉤이의 심리적 상태를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적절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이로써 작가는 앙시엥 레짐 시대의 지식인들의 파렴치한 사고와 행동을 여지없이 비아냥거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권력과 애정을 동시에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으며, 이를 위해서 퇴폐적 감정과 기회주의적 행동을 조금도 감추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귀족들의 비인간적 패륜을 가장 훌륭한 고전적 언어로 묘사하였습니다.
드 라클로는 프랑스 혁명 당시 자코뱅파에 가담했습니다. 또한 그는 1783년에 집필한 「여자들과 그들의 교육에 관하여 Des femmes et de leur éducation」에서 모든 사회 체제의 변화 그리고 혁명을 부르짖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귀족들의 부정과 더러운 술수를 비판하고 파괴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위험한 정사"를 익명으로 집필, 발표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의 심성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작가, 스탕달 역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였으며, 시인 보들레르 역시 이 작품을 라신의 탁월한 분석극과 비교한 바 있습니다.
'32 근대불문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로박: 레티프의 "니콜라씨" (1) (0) | 2020.02.20 |
---|---|
서로박: 루소의 '신 엘로이즈' (0) | 2020.02.10 |
서로박: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 (1) (0) | 2019.12.21 |
서로박: 비용의 '큰 유언 작은 유언' (0) | 2019.08.11 |
플로라 트리스탕 (0) | 2018.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