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볼테르의 캉디드

필자 (匹子) 2020. 2. 24. 21:05

1. 볼테르의 익명의 작품: 가장 찬란한 이상 사회에 관한 상상은 역으로 주어진 현실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도록 추동합니다. 가령 찬란한 이상으로서의 엘도라도의 상은 절대 왕정의 반대급부로 태동하였습니다. 엘도라도는 찬란한 이상 사회로서 볼테르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 처음으로 언급되었습니다. (Voltaire: 15). 볼테르는 1759년에 익명으로 이 작품을 발표했는데, 내심 라이프니츠의 견해를 비판하고 싶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주어진 세계가 모든 가능한 세상 가운데 최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럽 사회에 온존해 있는 독재와 폭정 그리고 도덕적 파괴 현상을 외면하고 어떻게 지식인으로서 편안하게 자족할 수 있는가? 하는 게 볼테르의 항변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리스본의 지진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땅이 갈라지고, 불과 하루 사이에 6만 명이 사망했는데, 상식을 지닌 자라면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최상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Saage: 79).

 

2. 줄거리 (1), 낙관주의와 끔찍한 세계: 젊은 캉디드는 평민이었지만, 어느 남작의 비밀스러운 조카라는 사실로 인하여 독일의 베스트팔렌에서 평화롭게 귀족의 자제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독일 제후의 아름다운 딸, 쿠니군데를 만나게 되고, 그미를 깊이 연모하게 됩니다. 그미 역시 늠름한 사내의 구애를 받아들입니다. 두 사람은 어느 비밀스러운 성에서 사랑을 나누다, 발각됩니다. 캉디드는 금지된 장난으로 인하여 마치 천국과 같은 베스트팔렌에서 추방당하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는 귀족의 자제로 안락하게 살면서, 은사인 판글로스로부터 낙관주의의 세계관을 접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판글로스Pangloss는 어원상 모든 언어를 구사하는 자라는 뜻을 지니는데, 철학자 라이프니츠를 암시합니다. 캉디드는 세상을 방황하는데, 주어진 세계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험악한 세상은 주인공에게 온갖 고난을 안겨줍니다. 심지어 불가리아의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총알받이로 끌려 다니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캉디드는 놀라운 소식을 접합니다. 그것은 쿠니군데가 노예로 끌려가, 온갖 사내들에 의해 성폭력을 당했는데, 지금은 리스본에 체류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임이 창녀가 되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은 찢어지게 아파옵니다. 캉디드는 군영을 탈출하여, 리스본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리스본에는 끔찍한 지진이 발발하여,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3. 줄거리 (2), 비관주의와 안온한 시골: 캉디드는 살아남기 위해서 끔찍한 리스본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가 카캄보라는 친구와 함께 향한 곳은 파라과이였습니다. 파라과이에서 캉디드는 예수회 수사로 일하던 쿠니군데의 오빠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공을 살해하려 합니다. 캉디드가 자신의 여동생을 불행의 나락으로 빠지게 한 장본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결투의 와중에서 그미의 오빠는 사망하게 되고, 캉디드는 다시 파라과이를 떠나야 합니다. 그가 찾은 곳은 잉카 문명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엘도라도라는 지역이었습니다. 그곳은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불가능한 지역이었습니다. 찬란하고 안온한 그 지역에서 한 달 정도 머물다가, 주인공은 카캄보와 함께 엘도라도를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자신의 행복은 오직 쿠니군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캉디드는 수리남에서 마르탱이라는 사내를 만납니다. 그는 네덜란드 출신의 철학자였는데, 인간의 본성이 탐욕과 사악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파합니다. 이때부터 캉디드는 서서히 낙관주의에 대한 맹신을 떨치게 됩니다. 캉디드, 카캄보 그리고 마르탱은 파리에 잠시 머물다가 콘스탄티노플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노쇠한 판글라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애인, 쿠니군데를 만납니다. 그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처참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캉디드는 그미와의 결혼을 결심합니다. 두 사람은 시골의 어느 영지를 구입하여, 농사지으며 평화롭게 살아갑니다.

 

 

4. 소규모의 유토피아의 공간으로서의 엘도라도: 볼테르가 묘사한 엘도라도는 비록 소규모이지만 만인에게 행복을 가져다두는 이상적인 공간입니다. 엘도라도는 과학 기술 그리고 고도의 경제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땅입니다. 캉디드가 처음으로 그곳으로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를 영접하고 음식을 제공한 사람은 172세의 노인이었습니다. 주위에는 수많은 금은보화가 즐비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귀중품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금과 보석들은 기껏해야 아이들의 장난감 내지 여인들의 장신구로 사용될 뿐입니다. 엘도라도의 사람들은 어떤 유일신을 숭배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곳에 한 명의 수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신과 인간의 만남 속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수사의 설교가 아니라, 믿음과 이성의 판단력이기 때문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수사라고 간주하며, 아침에 함께 찬가를 부르면서 신을 경배합니다. 물론 엘도라도는 군주제를 정치체제로 도입하고 있지만, 분쟁이나 갈등이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입법기관과 재판정이 아예 처음부터 불필요합니다. 이곳에서 중시되는 것은 학문 탐구입니다. 학자들을 위해서 마치 솔로몬의 사원과 같은 궁궐 한 채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엘도라도에서는 노동이 하나의 규칙으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마치 고대의 유토피아의 경우처럼 풍요로운 땅에는 과일과 곡식이 풍부하게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곳은 강제 노동이 필요 없는 천혜의 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5. 캉디드가 엘도라도에 정착하지 않은 이유: 그러나 주인공은 마지막에 이르러 엘도라도에 정착하지 않고, 끝내 유럽으로 돌아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 사항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캉디드는 무엇보다도 애인 쿠니군데와 재회하고 싶었습니다. 둘째로 유럽에 가더라도 부유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금과 보화를 담은 12개의 포대기를 양떼에 묶어서 귀국하면, 어느 군주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살 것 같았습니다. 셋째로 행복을 수동적으로 향유하며 망각 속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고향의 사악한 현실적 정황을 바로잡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일단 자신의 여행기를 발표하여 엘도라도의 축복받은 삶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볼테르의 엘도라도 유토피아에 내재해 있는 역동적 특성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볼테르는 자신의 작품 캉디드를 통해서 주어진 세상은 결코 최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귀족들, 편협한 수사들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을 노예로 전락시켜 이득을 챙기려고 하는 노예 상인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인간들이 사악하게 행동하도록 용납하는 제후의 폭력에 있다는 게 볼테르의 지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