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마르코 폴로의 필사본 그리고 그의 죽음: 수많은 사람들은 약 200년 동안 마르코 폴로의 필사본을 접했습니다. 문헌은 약 150 편의 필사본으로 오늘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토스카나어로 이루어진 문헌도 있습니다. 도미니크 수사인 프란체스코 피피노는 이 문헌을 라틴어로 번역했는데, 이 문헌의 필사본만 하더라도 50권이 넘습니다. 특히 이 문헌은 지리학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크리스토프 콜럼버스는 인도 항해의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서 이 책을 활용하였는데, 이 자료들은 오늘날 세비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콜럼버스는 거리를 측정하기 위한 수단을 찾으려고 마르코 폴로의 문헌을 뒤진 것으로 추론됩니다. 1324년 1월 마르코 폴로는 죽기 전에 자신의 유언을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즉 1299년 자유의 몸이 된 마르코 폴로는 베네치아로 돌아와서 상인, 비달 바되어의 딸 도나타 바되어와 결혼하여 세명의 딸을 두었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마르코 폴로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쿠빌라이 칸에게서 선물 받은 “황금의 판”을 자신을 호위하던 몽고의 노예 피드로 타라티노가 감옥에서 석방되는 데 써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11.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는 150 편의 필사본이 남아 있지만, 정작 마르코 폴로에 관해서는 세부적인 문헌이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헨리 열 (Henry Yule)이 분류한 바에 의하면 41편은 라틴어판, 21편은 이탈리아 판, 10편은 프랑스 판, 네 편은 독일어 판으로 전해집니다. 많은 연구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마르코 폴로는 자신이 직접 여행기를 집필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메모 첩을 지니고 있었는데, 함께 수감되어 있었던 루스티켈로가 구술한 것을 받아썼다고 합니다. 연구자들은 여러 필사본 가운데 고대 프랑스어로 기술된 필사본이 가장 원본에 가깝다고 합니다. 1824년 파리에 있던 지리학 연구회는 마르코 폴로의 필사본을 책으로 간행했던 것입니다. 그밖에 프랑스 이태리 텍스트와 라틴어로 기술된 첼라다 원고가 학자들의 관심을 끕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원본으로 밝혀진 문헌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12. 과연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했을까?: 마인츠 대학교 라틴어문학 교수 바르바라 베어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마르코 폴로가 구술한 것을 루스티켈로가 받아썼는데, 그가 사용한 언어는 고대 프랑스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는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란체스코 피피노 수사가 쓴 라틴어판은 루스티켈로가 받아썼다고 하는 고대 프랑스판과는 어떠한 연결고리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루스티켈로는 나중에 텍스트에 무언가를 삽입하였고, 마르코 폴로가 직접 고대 베네치아어로 집필한 판본이 있다는 결론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판본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학자들은 “과연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있었는가?”하고 의구심을 드러내었습니다. 마르코 폴로가 언급하는 지명의 이름은 잘 알려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학자들은 마르코 폴로의 서술이 약간 과장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13. 몇 가지 의구심: 1978년 존 헤거 John W. Haeger는 마르코 폴로가 중국 남부에 머문 것에 대해 의구심을 표명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을 만났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1995년에 역사가 프랜시스 우드 Frances Wood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즉 마르코 폴로는 실제 중국으로 여행하지 않고, 여러 다른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지어냈다는 것입니다. 특히 중국의 특수한 문화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코 폴로의 문헌은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가교를 놓아주었습니다. 특히 우드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의 만리장성에 관해서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고 말입니다. 1667년 알타지우스 키르허 역시 이 점에 관해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물론 만리장성의 기초적 토대는 마르코 폴로의 시대에 존재했지만, 만리장성의 놀랍고도 웅장한 모습은 명나라 시대에 비로소 등장한 것을 고려하면, 마르코 폴로가 만리장성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중국에 가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14. 중국의 기록에는 마르코 폴로를 가리키는 유럽인에 관한 언급이 더러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역사가, 양지주는 중국의 문헌에서 마르코 폴로의 흔적을 발견해내었습니다. 중국의 사초에는 쿠빌라이 칸과 마르코 폴로가 만났다는 기록이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중국의 공주가 사절단과 함께 페르시아로 떠났다는 기록이 분명히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우리는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십 여 년을 살았다는 것을 완전히 증명해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했을까요? 아니면 콘스탄티노플에 머물면서, 여러 여행기를 바탕으로 황당한 이야기를 지어내었을까요? 이는 학문적으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15. 몇 가지 놀라운 사항 (1): 놀라운 것은 세 가지 사항입니다. 첫째로 인류 최초로 중국에서 지폐가 만들어졌는데, 이 지폐는 마르코 폴로의 증언에 의하면 뽕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지폐의 성분을 오늘날의 과학 기술로써 세밀하게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중국의 지폐가 뽕나무로 만든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요약하건대 중국을 여행하지 않고, 중국의 커다란 지폐를 그렇게 정확하게 묘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둘째로 마르코 폴로는 중국인들이 염전을 개간하여 소금을 생산하는 것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해안가에서 바닷물을 말려서 소금을 생산해내는데, 이는 유럽에서는 참으로 낯선 사항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광산을 개발하여 땅속에서 소금의 성분을 추출해내곤 하였습니다. 마르코 폴로가 직접 염전을 관찰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중국인들의 소금 생산의 과정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할 수 없을 것입니다.
16. 몇 가지 놀라운 사항 (2): 셋째로 마르코 폴로는 양자강 하류에 건설된 교각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교각 사이의 받침대는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마치 배 모양과 같은 타원형의 모습을 띄고 있다고 마르코 폴로는 정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 중국 양자강 하류의 교각과 일치합니다. 실제로 양자강 하류는 밀물과 썰물이 교차될 때 일시적으로 역류하는 현상이 나타기 때문에, 중국의 건축가들은 물살이 양쪽 방향으로 잘 지나칠 수 있도록 받침대를 그런 식으로 타원형으로 설치하였던 것입니다. 그밖에도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직접 여행했다는 고증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이 아닐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르코 폴로와 그의 여행기를 통해서 동방과 서방 세계가 서로 교류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후의 사람들은 비단길 그리고 동서양을 오가는 항로를 개척하기 시작한 것도 마르코 폴로의 책의 영향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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