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상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시기에 들어서게 된다. 당시의 시대 상황에 관해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유럽 국가들은 생산력 그리고 생산 관계에 있어서 경제적으로 더딘 발전을 이루었다. 기독교를 신봉하던 유럽 각국들은 두 개의 거대한 정치권력에 의해 나누어져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황제 권과 교황 권이었다. 두 개의 대립되는 권력 구조는 평형을 이루고 있었다. 상대방을 견제하기는 하지만, 관여하지 않는 자세 때문에 세상은 두 권력의 상호 대칭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다. 당시는 십자군 전쟁이 끝날 무렵이었다. 이 시기는 하나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중세 초기의 철학과 중세 황금기의 철학을 양분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했다. 도시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도시의 시민 계층이 형성되었다. 거대한 도로 곳곳마다 상업이 성행하여, 이로 인해 도시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거대한 도로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여기서 내가 뮌헨 근처에 있는 독일 남부 도시, 아욱스부르크 (Augsburg)만 언급해도 족할 것 같다. 나중에 프랑켄 지방의 뉘른베르크 역시 놀라운 상업 도시로 발전한다. 십자군에 참전한 사람들은 매우 발전되어 있었던 동방으로부터 수많은 사치스러운 물품들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유럽은 십자군 운동으로 인하여 경제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얻게 되었다. 가령 우리가 사용하는 푹신푹신한 가구들, 예컨대 매트리스, 소파, 낮은 안락의자 (Diwan), (침대를 놓는 벽의 움푹 패인) 알코브 등은 아라비아에서 유래하는 것들이다. 찻잔 (Tasse)이라는 단어 역시 아라비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것은 아라비아의 “타사 (tassah)”에서 이탈리아의 “타체 (Tazze)”를 거쳐 파생된 단어이다.
이러한 물건에 관한 모든 단어들은 다음의 사실을 그대로 말해준다. 즉 섬세한 교양 있는 행동들 역시 프랑스 뿐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동방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말이다. 어쩌면 프랑스 사람들 또한 그들의 섬세한 에티켓이라든가 우아한 예의범절 등을 발전된 아라비아의 기사들에게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라비아의 기사들은 프랑스 기사들에게 커다란 인상을 심어주었으며, 프랑스 기사들은 섬세한 예의범절과 절도 넘치는 태도 등을 동방에서 배워, 이를 모방 내지 발전시켰다. 기사들이 지속적으로 가꾸어나가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여성에 대한 숭배였으며, 마리아에 대한 숭배 정신이었다. 여성 숭배는 하렘에서 여자들을 소유하고 있었던 터키인들에게는 쉬울지 모르나, 유럽에서 정착되기 힘든 풍습이었다. 왜냐하면 유럽에는 일부일처제가 온존하고 있었고, 다른 남자의 부인을 애호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 아라비아 상류층의 사치스러운 물품 그리고 예의범절이 유럽에 소개되었다. 그밖에 문화적 영역에서 많은 것들이 유럽으로 유입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고대 그리스 로마의 지적 자산들이었는데, 이것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커다란 교양을 쌓게 하였다. 신플라톤주의의 사상을 제외한다면, 동방에서는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그 가운데에서 나중에 사상적으로 발전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좌파의 철학사상이 찬란한 생명력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독교를 신봉하는 스콜라 학자들은 십자군 전쟁 동안에 아리스토텔레스를 접하게 되었으며, 고대의 위대한 의사인 히포크라테스 (Hippokrates) 그리고 갈레노스 (Galen) 등의 의학을 접했다. 이는 오로지 아라비아 문화의 중개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스콜라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의 여러 개념들과 이것들을 서로 세분화하였다. 이로써 그들은 고대 그리스인들과 이들의 여러 이론들을 접하게 되었으며, 세계에 대한 물질적 관계를 새롭게 고찰할 수 있었다. 물론 아라비아 사람들을 통해 고대 문화를 수용하는 데 있어서 제한 사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즉 고대에서 문화적 유산을 계승한 전달자인 아라비아 사람들은 오로지 신앙심에 바탕을 둔 채 “그리스도의 선구자들 (praecursores Christi)”을 찾으려는 수사들이 아니라, 오로지 연구에 대한 관심 때문에, 자연을 대하려던 의사들이었다.
도시의 시민계급에 관해서 더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항을 발견하게 된다. 즉 중세 황금기의 위대한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고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도시의 시민 계급의 입장에서 사회 이론 내지 윤리학 등을 개진해나갔다. 토마스는 살상을 즐기는 기사 계급을 혐오하였으며, 특히 가난을 싫어했다. 이 두 가지 취향을 지니게 된 데에는 제각기 다른 어떤 연유가 있다. 그의 철학은 특히 중간을 중시하였다. 토마스는 봉건귀족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존재를 본질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봉건귀족은 그에게 외면당했다고나 할까?
그 대신에 토마스의 이론에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은 도시의 시민 계급이었다. 시민계급은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이유에서 교황 측과 동맹을 맺고 있었다. 이들은 말하자면 황제 세력 그리고 황제에 충성을 다하는 이탈리아 기벨린당의 귀족들에 대항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방향을 고려할 때 다음의 사항은 무척 중요하다. 즉 토마스의 스승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황을 추종하는 도미니크 파에 속했다는 사항 말이다. 실제로 도미니크 수도원의 철학은 토마스주의, 즉 상대적인 개념의 실재론, 신학적 유형의 객관적 관념론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에 대항하는 입장은 중세 초기에 나타난 유명론이었다. 다시 말해서 유명론을 고수하는 학자들은 상대적 경험주의를 중시하였다. 이들은 특히 둔스 스코투스 (Duns Scotus) 그리고 윌리엄 오컴 (William Occam) 등과 같은 프란체스코 교단에 속하고 있었다.
일단 나는 중세 황금기의 두 학자에 관해서 먼저 말씀드리려고 한다. 그들은 다름 아니라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1193 - 1280)는 우리가 이 시대에 접할 수 있는 위대한 사상가들 가운데 첫 번째 독일인이다. 원래 그의 이름은 알베르트 볼슈테트 (Albert von Bollstädt)였다. 그는 파도바 그리고 볼로냐 등의 도시에서 수학했으며, 나중에 쾰른 대학의 교수직을 맡았다. 그곳에서 알베르투스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제자로 맞아들인다. 그 후에 그는 독일의 남부 소도시 레겐스부르크와 파리에서 연구와 강의를 계속했다. 1280년 사망 시에 그는 21권의 책을 세상에 남겼다. 이 책들은 돼지가죽의 화려한 양장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리옹 판으로 1651년에 발간되었다. 이 책들의 내용은 성서, 시편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물 등에 대한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그밖에 자연과학에 관한 알베르투스의 연구서도 상당한 분량으로 오늘날 전해지고 있다. 특히 놀라운 작품은 『풀과 나무에 관하여 (De vegetabilibus et plantis)』이다. 그렇지만 알베르투스의 대표작은 무엇보다도 『신학 대전 (Summa theologiae)』인데, 이 책은 “철학 대전 (Summa philosophiae)”과 같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가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유럽의 스콜라 사상가들 가운데 아라비아의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자연과학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 첫 번째 학자가 바로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였다. 그 때문에 알베르투스는 교회로부터 이른바 은폐된 자연력을 사용하는 “마법사”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비록 교회의 입장에서 고찰할 때 알베르투스의 깊은 신앙심을 추호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심지어는 목숨의 위협까지 당해야 했다. 알베르투스를 둘러싼 마법에 관한 전설 속에는 나중에 파우스트의 전설의 요소들이 발견되고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유입되지 않은 게 있다. 알베르투스는 사상적으로 가장 완고하여, 지극히 말을 아꼈다고 한다. 그의 강인한 입으로부터 무언가 대답을 들으려면, 사람들은 그의 귀에다 한 가지 질문만 속삭이면 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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