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현대영문헌

서로박: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 (1)

필자 (匹子) 2022. 9. 3. 11:54

 

1. 한국 사회의 행복지수: 한국 사회의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꼴찌에 가깝습니다. 세계 제 11위의 경제 대국이지만, 재화가 제대로 분배되지 않아서 빈부 차이가 극심합니다. 인구의 5%의 부유층이 국토의 80% 이상의 국토를 소유하고 있으며, 부동산 가격은 계속 천정부지로 솟구쳤습니다. 사회복지의 지원은 극히 제한적이므로, 노인들은 찢어진 가난을 감수해야 하고, 청년 실업은 과히 극에 달해 있습니다. 젊은 남녀들은 취업의 문제로 미래가 암담하다고 말하면서, 비싼 집값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독점 자본주의의 횡포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줄줄이 정리해고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인구의 85% 모두가 프레카리아트의 신세로 전락해 있는 상황을 고찰하면, 우리는 남한의 행복지수가 필리핀 내지 태국보다 훨씬 낮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인의 의식 구조입니다. 학자든 일반인이든 간에 과학 기술이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다고 지레짐작하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을 맹신하는 사고는 그 자체 일천하고 너무나 위험합니다. 그것이 일천한 까닭은 오로지 눈앞에 보이는 기능적 향상만이 중시되기 때문이며, 그것이 위험한 까닭은 자연과학자들이 미래에 나타날 자연과학의 폐해를 예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자연과학에 대한 기대감은 우리의 의식 속에 강력한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2. 분서갱유의 시대: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책, 즉 도서가 외면당한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에는 도서 산업이 패망의 길로 치닫고 있습니다. 베스트작가 외에는 시인과 작가들에게는 발표 지면이 거의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부분 도서를 구입하지 않기 때문에, 문예지 간행은 사향 산업으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생들은 교재조차 구입하기를 꺼려합니다. 대신에 그들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립니다. 몇 년 전부터 과학 기술, 4차 산업, 컴퓨터, 대중 매체 등이 중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매스컴은 대중 산업 (스포츠 산업, 영화 산업 그리고 요식업 등)에서의 성공 사례를 들려주며, 황금만능주의를 간접적으로 부추기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성공한 사람은 예컨대 돈을 많이 번 재벌, 야구 선수, 영화배우 그리고 거대 식당의 사장들입니다. 사회의 모든 가치가 이런 식으로 돈과 비트코인으로 측정되면, 우리의 의식 또한 황금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분서갱유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으로 말해서 독서의 중요성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독서는 예술적 아름다움, 자유로운 정신 그리고 자발적인 사고를 강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이 여행보다 중요한 일감이 독서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3. 『화씨 451』: 미국작가, 레이 브래드버리 (Ray Bradbury, 1920 - 2012)의 소설 한 권은 우리로 하여금 책의 가치와 분서갱유의 사건을 떠올리게 해줍니다. 제목에 해당하는 “화씨 451도”는 섭씨 232도를 가리킵니다. 도서를 가장 잘 타오르게 하는 온도가 화씨 451도라고 합니다. 소설은 가까운 미래의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는 한계 상황인데, 일반 사람들은 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국가가 실제 사건 내지 올바른 정보를 인민들에게 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민들은 독자적인 견해를 포기하고, 자신의 고유한 의지를 저버린 채 살아갑니다. 이는 대중 매체가 TV를 통해서 인민의 의식을 마비시킨 결과 때문입니다. 모든 인민은 마약을 복용하고, 항상 방영되는 선동선전 방송을 관람해야 합니다. 어떠한 비판적 발언은 용납되지 않고, 이를 어긴 사람은 쥐도 새도 모르게 체포되어 처형당합니다.

 

4. 국가의 폭력, 바보 상자 TV의 활용과 분서갱유.: 주인공은 가이 몬텍이라는 이름을 지닌 30세 나이의 남자입니다. 그는 직업은 소방대원, 아니 방화대원입니다. 국가는 방화대원을 차출하여 그들의 손에 화염방사기를 안겨줍니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든 도서를 불태우게 합니다. 이는 모든 개인주의의 사고를 차단시키고 사적이고 자발적인 사상 감정을 국가의 차원에서 말살시키기 위한 정책에서 나온 조처입니다.

 

전체주의 국가는 만인의 의식을 조절하기 위해서 굳이 언어적 폭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자본주의 문화 사업을 장려하고, 이를 대중매체를 통해서 활성화시키면 충분할 뿐입니다. 대중매체는 인간의 의식을 세뇌시키기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습고도 천박한 내용을 방영합니다. 이는 사람들의 비판의식을 압사시키고, 국가 조직에 반기를 들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처입니다. 요약하건대 국가는 한편으로는 대중매체를 통해서 비정치적인 내용을 방영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비판의식을 마비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상의 모든 도서들을 찾아내어 불태우게 합니다.

 

5. 오웰의 『1984년』과의 비교: 이쯤 되면 우리는 브래드버리의 작품이 분명히 디스토피아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령 『1984년』은 전체주의 사회의 경제적 생산 그리고 정치적 시스템이 어떻게 개개인의 자유를 빼앗는지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오웰의 작품에 비하면 『화씨 451도』에서 사회적 구조에 관한 구체적이고 상세한 언급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또한 미래의 미국 사회에서는 선거를 통해서 대표자를 선출하는 시스템이 처음부터 없습니다.

 

자유주의 내지 민주주의의 요구는 이미 오래 전에 박탈되어 있으며, 신문 방송은 대중적 오락 프로그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바보상자인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며, 여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럼에도 『화씨 451도』에서는 디스토피아의 특성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가령 주인공 몬텍은 처음에는 국가 권력을 맹신하고 이에 추종하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등을 돌립니다. 이 점에 있어서 『1984년』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와 같습니다. 윈스턴 스미스도 처음에는 체제 옹호적 의식을 지니다가, 줄리아라는 여성을 만나, 국가의 음험한 이데올로기를 감지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