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현대영문헌

서로박: (1) 헉슬리의 유토피아, "섬"

필자 (匹子) 2023. 1. 30. 18:44

1. 제3세계의 유토피아, 찬란한 장소의 섬: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를 발표한 지 30년 만에 또 다른 문학 유토피아를 설계하였습니다. 그것은 『섬』이라는 소설에 나타납니다. 이 작품은 이전의 작품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만, 유토피아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생략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이 작품에서는 이전의 디스토피아 작품과는 달리 제 3세계의 찬란한 삶이라는 장소 유토피아가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멋진 신세계』가 디스토피아 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데 비하면, 『섬』은 어떤 긍정적 유토피아의 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두 작품은 페터 퍼초가 말한 것과 같은 “반대되는 거울의 상”은 아닙니다. (Firchow: 178).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모어와 헉슬리가 묘사한 장소 유토피아의 차이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토마스 모어는 미지의 찬란한 섬을 묘사함으로써, 16세기의 영국의 비참한 현실을 은근히 고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헉슬리의 『섬』의 경우 20세기의 유럽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서 실론과 스리랑카 사이에 위치한 가상적인 섬을 끌어들인 것은 아닙니다.

 

2. 집필 계기: 헉슬리는 두 가지 이유에서 하나의 가상적인 섬을 설계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강대국에 의해서 경제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착취당하는 제 3세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헉슬리가 마치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처럼 제 3세계의 반식민주의의 자세를 강하게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헉슬리는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비극 이후에 인류가 추구해야 하는 바람직한 삶을 제시하려 하였습니다. 헉슬리가 팔라 섬을 묘사하게 된 두 번째 이유는 제3세계의 멋진 공간과 그곳에서의 자연 친화적인 삶을 강조하려고 의도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작품은 드니 디드로의 『부갱빌 여행기 부록』(1772)에서 묘사된 바 있는 타히티 유토피아의 속편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헉슬리의 섬은 “팔라”라고 명명되는데, 팔라 섬사람들은 놀랍게도 동양의 종교를 숭상하면서, 자유, 선 그리고 사랑을 말과 글로 표현하지 않고, 그냥 실천하면서 살아갑니다. 팔라 사람들에게는 사랑과 자유로운 사고를 말과 글로써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할 뿐입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 사이에는 어떠한 괴리감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섬사람들이 심리적 갈등을 느끼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3. 작품의 발단: 주인공은 “윌 애스퀴스 파나비Will Asquith Farnaby”라는 이름을 지닌, 냉소적이고 자기부정적인 저널리스트입니다. 윌은 윌리엄의 약어인데, 많은 유토피아 소설의 주인공의 이름은 윌리엄과 동일합니다. 나중에 알려지지만 그는 왕년에 주변의 섬, 렌당의 독재자, 디파 대령의 부관 노릇도 했고, 영국 석유회사의 직원으로 이곳 원주민들과 석유 채굴권을 따기 위해서 활약하는, 매우 비밀스러운 인물입니다. 윌은 우연히 배를 타고 항해하게 되었는데, 배는 폴리네시아 해안 근처에서 거센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결국 가라앉습니다. 그는 다행히 익사하지 않고, 어느 미지의 섬의 해안에 당도합니다. 뗏목 하나가 윌의 목숨을 부지하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뱀이 우글거리는 절벽에서 떨어져 심한 상처를 입고 다시 의식을 잃습니다. 다시 깨어났을 때, 윌의 주위에는 원주민들이 모여 신기한 듯 낯선 이방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를 돌본 사람은 로버트 맥페일 박사 그리고 무루간 마일렌드라는 제후였습니다. 로버트 맥페일은 어느 스코틀랜드 출신 의사 그리고 원주민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으로서 이곳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로버트의 며느리, 수실라 맥페일 그리고 로버트의 조수인 비자야 바타차리아 등이 환자를 보살핍니다. 윌은 병상에 누워서 이들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서서히 건강을 되찾아갑니다.

 

4. 주인공의 과거 행적: 팔라 섬의 이상사회를 다루기 전에 일단 주인공의 과거 행적을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윌은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참담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서로 싸우는 부모 때문에 고통스러운 유년을 보냈고, 젊은 나이에 한국 전쟁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 주인공은 먹고 살기 위해서 신문사에 취직했으나, 저널리스트로서 살아가는 각박한 일상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그곳에서 여류 화가, 몰리를 만나 결혼합니다.

 

그러나 윌과 몰리는 서로 맞지 않는 남녀들이었습니다. 성격 차이로 인하여 12년 동안 불행한 결혼 생활을 영위해야 했습니다. 윌리엄은 1년 전에 우연히 아프리카에서 바브스라는 여인을 만나, 깊은 관계에 빠져듭니다. 바브스는 성 중독증에 걸린 색정적 여인으로서, 그미와의 동침은 자신의 권태로운 삶을 일거에 사라지게 합니다. 윌은 짜릿한 성적 충동에 깊이 빠져 들어갑니다. 어느 날 그가 몰리와의 이혼을 선언하고 헤어졌는데, 바로 그날 저녁에 아내, 몰리는 세 명의 자식과 함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습니다. 자신의 가족이 비명횡사한 게 자신의 직접적인 잘못이 아니었지만, 윌은 아내와 자식들의 사망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습니다. 심리적 공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는 배를 타고 어디론가 항해하다가 팔라 섬에 우연히 도착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윌은 “죽음의 망령에 쫓기고, 갈등과 분열의 냉소에 시달리는 위태로운 인간”입니다. (이상화: 295).

 

5. 수실라 맥페일: 윌은 수실라 맥페일을 만납니다. 그미는 맥페일 박사의 며느리로서 남편을 잃은 뒤에, 팔라 섬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미의 남편은 최근에 암벽등반 도중에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수실라는 영국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여성이었는데, 동양적 정신세계에 몰두하면서 새로운 심리 치유법을 발견하고자 노력합니다. 수실라 역시 과거에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낸 불행한 여성이었습니다. 윌과 수실라는 명상과 평화로운 삶을 통하여 제각기 내면의 혼란되고 찢겨진 영혼을 하나씩 치유해 나갑니다. 수실라에게는 메리 사로지나라는 딸이 있으므로 교육은 비교적 자연스럽게 행해집니다.

 

팔라 섬의 아이들은 친부모 곁을 떠나 대리 부모 밑에서 개방적이고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심리적 상처 없이 자랄 수 있습니다. 수실라는 기억요법 그리고 상상요법 등을 동원하여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킵니다. 그미의 교육방법은 네 가지 사항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즉 읽기, 쓰기, 산술의 기초교육에다 자신의 운명을 자발적으로 개척하기라는 네 가지 사항이 그것들입니다. 수실라는 윌과의 대화 도중에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앞으로는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언젠가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며, 불교에 근거한 이상사회를 건설하는 일이야말로 미래의 방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윌은 그미의 영향으로 불교의 경전을 하나씩 접해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