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현대영문헌

서로박: 마지 피어시의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2)

필자 (匹子) 2022. 8. 28. 21:48

9. 미래 사회에서의 종교와 교육: 미래 사회에서는 종교 그리고 신이 그다지 커다란 영향을 떨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을 숭배하는 종교가 존속되면, 사회의 구성원 역시 계층을 구분하게 되고, 권력을 탐하게 되며, 다른 사람들을 감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항 때문에 마지 피어시의 소설은 출간 이후에 미국의 많은 종교인들로부터 혹독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피어시의 문학은 전통 윤리와 기독교의 세계관을 허물게 하며, 혼란과 무질서를 부추기고 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작가가 종교의 영향을 지극히 제한시킨 까닭은 무작정 종교를 부정하고 싶은 의도 때문은 아닙니다.

 

작가는 대부분의 종교가 전통적인 관습을 준수하고, 계층 사회를 유지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이를 수정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를테면 피어시가 설계한 공동체 모델 속에서 모든 질서가 깡그리 철폐된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아이들의 교육은 즐거운 놀이의 방식으로 전개되며, 교육의 내용은 대부분 실천하는 일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재미있는 놀이가 동원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어른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고, 미래의 노동을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연습하게 됨으로써, 나중에 어른으로 성장하여 사회의 구성원으로 일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내용은 마치 루소의 『에밀 Emile』에서 묘사되고 있는 자연 학습법을 떠올리게 합니다.

 

10. 완전한 남녀평등: “마타포이세트”의 주민들은 자신의 존재를 더 이상 어떤 육체적 특징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껄끄럽거나 불편함을 가져다주는 특정한 노동에 더 이상 온종일 시달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기계가 그러한 일을 대신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반영된 마지 퍼시의 유토피아는 과학 기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성적 차별이 완전히 근절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미래 사회는 남녀평등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어떠한 성적 차이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미래 사회 사람들의 언어 역시 많이 변모해 있습니다. 여성과 남성을 지칭하는 표현들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그” 그리고 “그미” 등과 같은 성을 드러내는 인칭대명사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사람들은 “개인 person”을 뜻하는 “per”라는 대명사를 즐겨 활용합니다.

 

11. 좋게, 혹은 나쁘게 변화될 수 있는 이상 국가: 작가는 이상적 사회로서의 마타포이세트 생태공동체를 무조건 미화하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공간에는 크고 작은 하자와 갈등이 존재하는 법입니다. 이를테면 공동체 내에서 질투, 폭력 그리고 살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외부로부터의 전쟁 위협도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단합을 위해서 이곳 사람들은 정치적 모임을 마련하고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가하여 토론하곤 합니다. 만약 정치적 모임에 자주 참가하지 않는 사람은 그룹의 대표자와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반사회적 태도는 이상 사회에서도 병적인 것이라고 낙인이 찍히고 있습니다.

 

나아가 폭력은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사람들은 “권력은 폭력이다. 권력은 지금까지 평화로운 방법으로 제거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상습 폭력범은 이곳에서도 엄한 벌을 당하거나 처형될 수도 있습니다. 마지 피어시가 이런 식으로 이상 국가를 정태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변모 가능한 역동적인 사회로 묘사한 것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작가는 찬란한 긍정적 사회가 하루아침에 비참하고 사악한 사회로 전락할 수 있고, 사악하고 추한 사회는 몇몇 근본적 문제점이 해결될 경우 얼마든지 더 나은 사회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12. 오이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동시에 다루다: 놀라운 것은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가 찬란한 이상 사회로서의 오이토피아 뿐 아니라, 끔찍한 미래 사회에 해당하는 디스토피아를 동시에 다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어떠한 다른 문학 유토피아에서도 드러나지 않는 사항입니다. 제 15장에서 코니는 단 한 번 실수로 인하여 미래의 어떤 또 다른 세계로 여행하게 됩니다. 그 지역은 2137년의 뉴욕으로서, 도시 전체가 유리로 덮여 있습니다. 전체주의가 통용되는 뉴욕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성 그리고 인종에 의해서 완전히 계층화되어 있습니다.

 

생태계는 완전히 파괴되어 있으며, 나무 없는 기계 숲 속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비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전문 살인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치 파시스트처럼 성적 방종을 일삼으며, 끔찍한 폭력을 휘두릅니다. 여자들은 모든 자유를 상실하고, 남자들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인종적 차별을 겪으면서, CCTV로 감시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코니는 외계의 이러한 끔찍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안간힘을 쏟습니다. 말하자면 고통스러운 남성적 계층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강인한 의식을 견지하면서 전문 살인자들과 완강한 자세로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13. 코니의 변신과 투쟁: 자고로 새로운 현실을 접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현실의 문제점을 더욱 예리하게 의식하는 법입니다. 코니가 그러했습니다. 그미는 자신이 폭력과 편견으로 사로잡힌 미국 사회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미는 찬란한 이상 국가, 마타포이세트에서도 언제나 크고 작은 문제와 갈등이 속출한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두 개의 서로 다른 미래 사회에 대한 체험이 그미로 하여금 어떠한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분명하게 의식하게 한 것입니다. 주어진 현실의 상태는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의향과 노력이 서로 부딪치고 합해져서 생겨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체득합니다.

 

이로써 코니는 환상 세계 뿐 아니라, 주어진 현실에서 완강하게 싸우기로 결심합니다. 그미는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독약이 든 커피를 마시도록 조처합니다. 이는 작은 일이지만, 남성적 계층 사회의 굳건한 의료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출발의 저항이었습니다. 독약을 복용해야 하는 자는 자신이 아니라, 의료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코니의 이러한 시도는 안타깝게도 실패로 돌아갑니다. 결국 주인공은 마치 감옥과 같은 록오버 요양원으로 송치됩니다. 이로써 코니는 이전의 정신병원에서 주어졌던 최소한의 자유 시간마저 모조리 빼앗기고 캄캄한 독방에서 감시당하며 자신의 삶을 이어갑니다.

 

14. 작품에 담긴 사회 비판 (1) 병원의 불완전한 의료 행위: 첫째로 작품은 병원의 불완전한 의료 행위에 대해 신랄한 메스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작품의 주인공은 성적으로, 인종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억압당하며, 착취당하는 여성입니다. 코니는 “모든 하인의 하인”이며, 마치 “아교덩어리”와 같은 침묵하는 무기질의 인간처럼 보입니다. (Piecy: 146) 그렇지만 그미는 자신에게 압박을 가하는 외부의 모든 인간들에 대해 완강하게 저항하지 않고, 감내하면서 살아갑니다. 술과 마약 복용으로 인하여 코니는 육체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서서히 몰락의 위기를 겪습니다. 문제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뒤에도 코니의 병증은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코니의 심리적 위기는 심리적 질병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공의 병적 증세는 그미가 처한 현실과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하는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국 병원의 의사들은 코니처럼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현실 상황은 조금도 반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병원을 찾는 사람들의 육체적 상태만 어느 정도 호전시키면 그것으로 치료는 종결되고 자신의 임무가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의사들은 치료와 치유를 구분합니다. 치유는 완치를 뜻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임무 내지 소관이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의사들은 치료만 담당할 뿐, 환자의 치유를 완전히 책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 맞장구를 치는 사람들은 의료윤리 학자들입니다.

 

병원은 병을 치유하는 공간이 아니라, 질병의 증상을 적당하게 완화시키는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의사와 의료학자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의무를 축소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아니나 다를까, 코니를 치료하는 의사들은 약물 투여만으로 도중에 치료를 끝내고 환자들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물론 뇌 조직의 변형을 위한 수술이 행해지기도 합니다만, 이는 드물 케이스입니다. 어디서나 그러하듯이 의사들은 의학자와 제약회사와 암묵적으로 담합합니다. 국가는 의사들의 이러한 완벽하지 못한 치료 행위를 방조합니다. 왜냐하면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의료비용을 절감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5. 작품에 담긴 시대 비판 (2). 미국의 비참한 현실상: 둘째로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는 미국의 생태 환경에 관한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문학 유토피아가 그러하듯이 주인공의 가상적 마을 마타포이세트는 주어진 미국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의 현실입니다. 마지 피어시는 주위 환경의 “더러움”을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1. 시멘트로 이루어진 멋없는 거주지. 대도시에는 높은 빌딩이 솟구쳐 있는데, 이를테면 뉴욕과 서울 그리고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는 거대한 유리 빌딩들이 마치 자본주의 남성 사회에서 자신의 부와 성장을 만천하에 자랑하는 좆바위처럼 하늘 위로 솟구쳐 있습니다. 높은 빌딩에서는 모든 거래가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금융 자본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2. 물, 공기의 오염입니다. 대기는 항상 스모그로 가득 차 있고, 강에서는 썩는, 아니 썩지 않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Piercy: 343). 3. 화석 연료의 사용. 상기한 오염은 결국 석유, 석탄과 같은 화석 연료의 사용에서 비롯된 것이며, 핵연료의 사용 역시 엄청난 재앙의 위험을 낳게 합니다.

 

16. 여성의 저항은 어느 범위에서 가능한가? 마지 피어시는 코니 라모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다음의 사항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즉 60년대와 70년대의 여성 삶은 한마디로 정신 병원에 구금된 채 살아가는 환자들의 생활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는 수천년 전부터 여성을 착취하고 억압해 왔습니다. 작가는 과연 여성들이 이러한 근본적인 구도를 떨치기 위하여 어느 정도로 저항할 수 있는가? 하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를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유토피아 계열의 소설 속에 편입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마지 피어시의 작품은 가령 남성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여성들의 세계를 묘사한 작품, 살로트 퍼킨스 길먼의 소설 『여자만의 나라 Herland』(1915), 과학 기술을 부정하면서, 원시적으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여성 공동체를 묘사한 소설, 샐리 밀러 기어하드 Sally Miller Gearhart의 『방랑의 땅. 힐 여성들의 이야기 The Wanderground: Stories of the Hill Women』(1979) 와 평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피어시가 다루고 있는 페미니즘 문학세계에 영향을 끼친 문헌을 언급할까 합니다. 그것은 술라미트 파이어스톤 Sulamith Firestone가 1970년에 발표한 급진적 논문인 「성의 변증법 The Dialectic of Sex」입니다. 여기서는 자연 환경, 페미니즘 그리고 반인종주의 사상에 입각한 양성을 갈구하는 하나의 대안 세계가 설계되어 있습니다. 페미니즘 사상적 모티프들은 제반 구체적인 현실과의 관련성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김일구: 마지 피어시의 소설을 통해 살펴본 신세계 질서, 실린 곳: 영미문화, 7권 2호, 2007, 61 – 61쪽.

- 키지, 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정회성 역, 민음사 2009.

-피어시, 마지: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2권 변용란 역, 민음사 2010.

-Gearhart, Sally Miller: The wanderground: stories of the hill women, Misigan Uni Press 1979.

-Firestone, Sulamith: The Dialectic of Sex, The Case for Feminist Revolution, London 1988.

-Heilbrun, G. Carolyn: Toward a Recognition of Androgyny: A Search Into Myth and Literature to Trace Manifestations of Androgyny and to Assess Their Implications for Today, Reprica Books 1997.

- Piercy, Marge: Frau am Abgrund der Zeit, Berlin 1996.

-Rousseau, J. J.: Emile oder über die Erziehung. Paderborn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