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현대영문헌

서로박: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2)

필자 (匹子) 2022. 9. 3. 11:55

6. 주인공의 회의 그리고 과학 기술의 폭력: 주인공 몬텍 역시 한 여성을 만나서, 주어진 체제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클라리세를 만남으로써 처음으로 자신의 소외된 삶을 감지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우연히 만난 클라리세는 귀엽고 천진난만하며 주인공으로 하여금 마치 오래 전해 체험했던 평온한 자연을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몬텍은 그미를 통해서 자신의 결혼생활 그리고 방화관으로서의 직업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나아가 금지된 책을 읽으면서 국가의 전체주의적 시스템을 의심하게 된 것도 클라리세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는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대중들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벽에 부착된 TV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귀에 라디오 조개 (이어폰)을 꽂은 채 경박하고 단순한 우스개 이야기에 넋이 나가 있다.” (Bradbury: 12). 현대의 첨단 기술은 현대인의 의식을 완전히 와해시키는 거대한 에너지로 돌변해 있습니다. 19세기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기술을 발전으로 인간 삶이 발전되리라는 낙관적 자세를 취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반대입니다. 과학 기술은 인간의 사회적 개인적 삶을 감시하고 조종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가령 기계로 만들어진 개 한 마리는 개개인을 감시하고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힘을 지닙니다. 개는 주어진 사회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들을 체포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7. 주인공의 사보티주 그리고 직장 상사, 비티의 발언: 어느 날 몬텍은 도서에 불을 지르기 위해 어느 건물에 뛰어듭니다. 그곳에서 어느 나이든 여자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그미는 자신의 도서들을 모조리 불태운 다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국가의 시스템에 순응하고 굴복하며 살아가느니 차라리 자살하는 게 낫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입니다. 시신을 바라보았을 때 누군가 주인공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친 것 과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몬텍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며칠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냅니다.

 

이때 그의 상사인 비티Beatty가 집으로 찾아옵니다. 체제옹호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비티는 정부의 현재 정책에 관해서 설명해줍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문학, 문화 그리고 자유로운 사상을 거부하는 일은 정부에 의해서 주도적으로 행해진 게 아니라, 사회적 변화에 따라 저절로 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국가가 검열 행위를 시행한 것은 사실이라고 합니다. 비티의 말에 의하면 모든 국민은 지적으로 동일한 수준을 지니며, 어느 누구도 스스로 핍박당한다는 느낌을 품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비티는 자기 자신도 여러 권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독서를 통해서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했다고 토로합니다.

 

8. 주인공 체제파괴적인 시각을 견지하다: 몬텍은 드디어 몇몇 책을 구해서 읽으려고 작심합니다. 그는 아내, 밀드레드에게 함께 책을 읽자고 독촉합니다. 밀드레드는 이를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독서는 자신의 일상화된 TV 시청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독서 행위에 관해서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퇴직 교수, 파버Faber를 찾아갑니다.

 

파버는 인문대 문화학 교수였는데, 문화학과가 실용주의자들의 압력에 의해 폐쇄되는 과정을 직접 체험한 바 있었습니다. 그는 독서의 가치를 인정하는 몬텍을 다독이면서, 책읽기가 타인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몬텍은 퇴직 교수의 충고를 개의치 않게 생각합니다. 어느 날 주인공은 아내와 여자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 한편을 낭송합니다. 그것은 매슈 아놀드Matthew Arnold 의 「도버 해변Dover Beach」이라는 시였습니다. 아놀드는 이 시를 통하여 현대인이 상실한 신앙심을 슬프게 노래한 바 있는데, 주인공은 그것을 체제 파괴적으로 수용합니다.

 

9. 매슈 아놀드의 시: 예컨대 도버 해변의 마지막 3행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들이 서 있는 곳은 어두운 광야/ 여기서는 무지한 군인들이 밤에 출동하여/ 싸움과 도주의 혼란한 경보음에 휩쓸리고 있다. And we are here as on a darking plain/ Swept with confused alarms of struggle and flight/ Where ignorant armies clash by night.”문제는 이 시에 대한 여성들의 부정적인 반응에 있었습니다. 밀드레드와 그미의 여자친구들은 시를 낭송하는 주인공을 위험한 사람이라고 속단합니다. 결국 자신의 아내조차 여성들의 견해를 따르게 됩니다. 며칠 후에 밀드레드는 비티를 찾아가서 남편을 당국에 고발합니다. 그러나 그미는 얼마 되지 않아 신경안정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합니다.

 

10. 주인공 야권 세력에 합류하다: 젊고 아리따운 클라리세는 언젠가 주인공에게 그의 삶이 행복한가? 하고 질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몬텍은 언어의 예술, 자유로운 사고의 가치 그리고 자연의 맑은 공기와 그 순수한 아름다움 등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러나 몬텍은 고발 초처당하여, 직장 상사, 비티에 의해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책이 비치된 주인공 자신의 집을 깡그리 불태우라는 명령이 바로 그 처벌이었습니다.

 

비티는 파버 교수의 수상한 행동을 비아냥거리면서, 대화 도중에 그를 감옥에 쳐 넣겠다고 협박합니다. 그러자 몬텍은 이를 지켜보다가 국가의 더러운 하수인, 비티를 자신의 화염방사기로 태워죽입니다. 뒤이어 그는 파버 교수의 도움으로 도시 외곽에 있는 강과 숲을 지나 도주합니다. 그는 메가 도시 밖에서 살아가는 몇몇 체제파괴적인 지식인 그룹에 합류하게 됩니다.

 

11. 사악한 정책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브래드버리의 전체주의 국가에는 어떤 빈틈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국가가 제 아무리 체제순응을 위한 교활한 정책을 수행한다고 하지만, 이는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은밀히 저항하는 재야 지식인들의 행위를 막지는 못합니다. 주인공 몬텍 역시 파버 교수의 도움으로 재야 세력에 합세합니다. (Bradbury: 164). 이들은 비밀리에 자체적으로 독서 그룹을 만들어서 문학과 철학에서 고전으로 알려진 작품들을 한편씩 정독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암송한 문장들을 자식들에게 구두로 전해줍니다.

 

이로써 핍박당하던 소수의 사람들은 인류의 문화유산을 자손에게 전해주게 됩니다. 이 대목이야 말로 독자에게 결코 사장될 수 없는 어떤 희망의 단초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브래드버리의 소설은 마지막에 이르러 전체주의적인 자기 파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핵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입니다. 전쟁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 했으며, 인간의 이성을 말살시키는 상품화된 대중문화 또한 거대한 범위로 몰락을 맞이하게 됩니다. (Bradbury: 169). 거대한 도시는 순식간에 폐허의 잿더미로 내려앉습니다.

 

12. 중우정치에 대한 작가의 비판: 브래드버리는 다음의 사항을 무엇보다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즉 현대의 미국 사회는 거짓을 진실로 곡해하여 보도하기 위하여 TV를 활용하고 있는데, 이는 인민의 눈과 귀를 차단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진실이 거짓으로 왜곡되는 이데올로기가 행해진 첫 번째 시점은 1790년이며, 이를 주도한 사람은 작가의 견해에 의하면 벤자민 프랭클린이라고 합니다. (황은주: 592). 이러한 유형의 이데올로기의 횡포는 1950년대의 미국 사회에서 나타납니다.

 

국가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만인에게 정보를 제공한다고 공언하지만, 권력 기관, 매스컴 등은 자신의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 거짓된 정보 내지 왜곡된 정보를 노출시킵니다. 매스컴은 근본적으로 올바른 정보의 전달과 비판을 행한다고 말하지만, 정보는 실제에 있어서는 권력 기관 내지 일부 사회 계층의 요구에 따라 왜곡되기도 하고, 무시되기도 합니다. 프로이트의 조카 에드워드 루이스 버네이스Edward Louis Bernays는 『프로파간다Propaganda』(1928)에서 거짓이 진실로 둔갑되는 교묘한 기술을 서술한 바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민에게는 왜곡되거나 거짓된 정보를 간파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정치력을 확장시키려는 사람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출현하고 있습니다.

 

13. 끔찍한 분서갱유: 원래 분서갱유라는 말은 진시황제 당시에 유래한 것입니다. 그것은 자구적으로는 책을 불태우고, 유생을 구덩이에 파묻는다는 뜻을 지닙니다. 당시 진시왕은 봉건제를 타파하고, 과감하게 중앙집권적인 군현제를 실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하들과 유생들은 이에 반발하였습니다. 이를 꺾기 위해서 진시왕은 죽간과 백서 등을 모조리 수거하여 불에 태웠습니다. 그렇지만 학사관의 도서만은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진시 황제가 세상의 모든 책을 불태웠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제3제국에서 히틀러 역시 반정부적인 서적들을 골라, 이것들을 선별하여 태워 없앴습니다. 유대인이 쓴 책들, 마르크스주의의 문헌 그리고 사해동포주의와 같은 평화를 추구하는 도서도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이에 반해 브래드버리의 문학적 현실에서는 세상의 모든 책들이 분서갱유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야 말로 전형적인 중우정치의 일환으로 내려진 끔찍한 짓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남한에서는 국가가 도서를 수거하여 직접 불태우는 경우는 없습니다. 전체주의적인 폭력 역시 더 이상 남한에 자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남한 사회는 금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순수 학문이 경시되고 대학이 실용주의의 분위기에 의해서 패망의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남한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분서의 폭력이 행해진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성이 패배하고, 학문이 사장되면, 남는 것은 마이더스의 똥밖에 없습니다. 한 인간이 돈에 파묻힌 채 살아가면, 남는 것은 가치 있는 문화의 죽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도』는 이를 일깨우기에 충분한 작품입니다.

 

참고 문헌

 

- 브래드버리, 레이 (2009): 화씨 451, 박상준 역, 황금가지.

- 양현미 (2009): 화씨 451에 나타난 디스토피아의 싱징주의, 현대 영여영문학, 53권 2호, 179 - 201.

- 황은주 (2012): 레이 브래드베리의 『화씨 451』과 지식 통제 사회, 실린 곳: 영어영문학, 58권 4호, 589 - 609.

- Bernays, Edward Louis (2011): Propaganda, Die Kunst der Public Relations 1928, Orange-Press, Freiburg.

- Bradbury, Ray (1991): Fahrenheit 451. Del Rey: New York.

- Bradbury, Ray (2011): Fahrenheit 451. Graphic Novel, Eichborn, Frankfurt a. M.

- Kohn, Martin (2009): Ray Bradbury: „Fahrenheit 451.“ 4. Auflage, Bange, Hollfeld.

- Robin Anne Reid (2000): Ray Bradbury. A Critical Companion. Greenwood Press, Westport, Conn. u. a.

- Ulm, Dieter (2018): Ray Bradbury, Fahrenheit 451: Interpretation, Stark, Hallbergmo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