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감옥이 없다: “레본나”에서 크고 작은 범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만일 범죄가 발생할 경우 도시 내지 주의 평의회는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인간이 저지르는 범죄는 수많은 유형으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레본나에는 감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보다, 범죄의 발생 원인을 척결하는 게 더욱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자고로 범죄는 개인의 심리적 문제에서, 혹은 사회적 갈등에서 파생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간은 혼자 살아가면,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이웃과 타인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우리는 타인과 이웃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때로는 그들에게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한 사람이 질투심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경우를 상정해 봅시다. 이 경우 당사자의 마음속에 질투심을 유발하게 한 사람, 혹은 사회 규범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인을 무작정 처벌하고 엄단하는 것보다는, 질투심을 유발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하나씩 추적하여 문제점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더 낫다고 레본나 사람들은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범죄의 발생에 대해 모든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13. 새로운 질서 체계를 갖춘 병원: 레본나의 행정청은 병원을 위하여 가장 많은 금액을 책정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병원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지 않은 채 운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원의 의료진은 일정 기간 동안 정해진 곳에서 근무합니다. 근무처의 변경을 원하는 의료진은 행정청에 지원을 신청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지역의 의료진과 교체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근무처가 타인의 의지에 의해서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병원의 제반 질서 역시 변화되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는 동등한 신분으로 대접 받습니다. 간호사들은 간병인의 역할을 맡기 때문에 병원마다 상당수의 간호사들이 3교대로 일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에 있어서 매일 여덟 시간 근무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렇기에 가족들이 환자를 간병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주어진 정황에 따라서 의사는 간호사로 근무하기도 하고, 간호사는 의사로 일하기도 합니다. 응급 외과의 수술의 경우를 제외하면, 의사와 간호사는 함께 일하며 서로를 보조합니다. 특히 약재를 바탕으로 한 자연 치유 그리고 심리 정신 치료의 경우 그들은 의사 내지 간호사의 호칭을 생략합니다. 요약하건대 과거에 존재했던 병원의 위계질서는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13. 시간관념이 느슨하다: 레본나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며 허겁지겁 살아가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기존의 태양력이 사용되지 않고 자신의 독자적인 시간 질서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1년은 다섯 달로 나누어지고, 하루는 여섯 개의 단계로 구분됩니다. 1. 밤 시간, 2. 취침 시간 내지 청소 시간, 3. 성찰과 이성의 시간, 4. 일 그리고 따뜻한 식사의 시간, 5. 여가, 수업 그리고 음악 연주와 청취의 시간, 6. 만남과 조우의 시간, 맨 마지막 시간을 만남과 조우의 시간으로 설정한 것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저녁 늦은 시간에 가장 활발하게 친구들과 대화와 사랑을 나누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대체로 비교적 늦은 시간에 기상하여 10시에 아침식사를 해결합니다. 일찍 일어나서 정확한 시간 내에 관공서 내지 학교 등으로 가야할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루의 노동 시간은 두 시간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냉수마찰을 즐기는데, 이러한 경우는 H. G. 웰스의 유토피아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대목입니다.
14. 인간 소외가 극복된 삶: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유인으로 살아가려고 하며, 소외당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상대방을 자신과 다름없는 존재로 대해줍니다. 사람들은 의복을 직접 수선하고 꿰매어 착용합니다. 가구들 역시 자치적으로 운영되는 목공소에서 생산됩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편안한 옷을 입고 생활합니다. 여름에는 남녀 모두 원피스를 걸치면서 생활합니다. “나체 문화 FKK”,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강과 해변에서 특정 공간에서 옷을 벗고 생활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느 누구도 이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흐린 날과 비오는 날이 대부분의 날을 차지하는 유럽에서 일광욕은 자신의 몸의 건강을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건강을 도모하기 위하여 스포츠를 즐깁니다. 이곳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요가와 수영 그리고 명상 등을 즐깁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목숨을 잃게 하는 위험한 스포츠 유형은 철폐되어 있습니다. (NeumanA: 36). 대신에 자전거 스포츠는 건강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고 이곳 사람들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레본나에서는 육체적 심리적 건강을 중시하므로, 병에 잘 걸리지 않고,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15. 성은 존재하고 결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레본나”에서는 시민 사회의 이른바 강제적 성윤리의 성도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혼 제도가 없으므로, 사람들이 성적으로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은 당연하게 보입니다. 젊은이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실천합니다. 동성연애는 이성연애와 동등한 것으로 취급됩니다. 레본나에서 성 폭력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인 남녀들은 언제나 상대방의 뜻을 존중하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남녀 사이에 폭력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은 푸리에의 팔랑스테르 공동체의 경우와 동일합니다. 놀라운 것은 젊은이들의 애정 관계가 대부분의 경우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남녀가 서로 만나서 오랫동안 함께 사랑하고 함께 생활하는 것을 하나의 미덕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레본나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태도를 전근대적인, 진부한 사고로 간주합니다. 하룻밤의 연인, 하루 낮의 연인이 현대의 권태롭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의 고통을 달래주고 치유해주는 자극제라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귄 지 1년 이상 관계를 지속하는 커플은 매우 드뭅니다. 이곳 사람들은 사랑의 감정을 “동물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성욕을 미화시킨 하나의 허울 좋은 느낌”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물학적 기술로 인하여 사람들은 콘돔과 같은 피임 도구를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사후 피임약이 개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들이 남성들을 선택하여 파트너를 정합니다. 에로틱의 영역에서는 나이는 문제되지 않으며, 육체적으로 불구인가, 아니면 못생겼는가? 하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17. 성숙한 싱글들의 공동체: 레본나 사회에서는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일부일처제의 미덕이 무작정 전근대적으로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애틋한 사랑의 감정과 결혼을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구와 결혼하게 되면, 사랑하는 임을 위해서 자신의 많은 자유를 희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레본나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싱글로 살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사랑과 질투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이도 자신의 성적 욕망은 대부분의 경우 충족되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싱글들의 세상은 21세기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몹시 낯설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랑하는 임과 오랫동안 함께 살아가는 것을 하나의 미덕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NeumannA: 41). 혹자는 인간이 어떻게 사랑하는 감정 없이 타인과 함부로 살을 섞을 수 있는가? 하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싱글과 싱글의 만남은 동물 세계의 잡 교배와 뭐가 다른가? 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레본나 사람들의 사랑의 삶이 바람직한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하고 묻기 전에, 우리는 일차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숙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레본나에서는 인간의 자유가 적어도 성의 영역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차단되지 않는다는 사항 말입니다. 레본나에서는 이를테면 정신분열이라는 감정의 페스트는 전혀 발생하지 않습니다. 정신분열증은 한 개인의 심리를 수십 년 동안 괴롭히지 않습니까? 이곳 사람들은 자신이 원할 경우 얼마든지 예외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권위에 굴복하는 노예근성을 지닌 인간형도 레본나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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