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생태주의 유토피아 (5)

필자 (匹子) 2019. 5. 26. 15:28

1. 앙리 망드라의 유토피아: 프랑스의 사회학자 앙리 망드라Henri Mendras1979년에 시골 유토피아 공동체 여행Pays de l’Utopie Rustique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유토피아의 전통을 자신의 작품에 의도적으로 반영하였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토피아의 전통 가운데에서 무정부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 특징을 담은 유토피아의 전통을 반영하려고 한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망드라는 알렉세이 차야노프의 농업 유토피아의 전통을 계승할 뿐 아니라, 이를테면 프랑스와 라블레라든가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에 입각한 유토피아의 구상을 자신의 작품에 담으려고 했습니다. 망드라의 유토피아에는 68 학생 운동 세대들이 추구했던 문화 혁명의 방향성이 담겨 있습니다.

 

2. 프랑스 한 복판에서의 시골 유토피아의 실험: 망드라는 20세기 후반에는 물질 추구의 삶이 종언을 고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합니다. 물질 추구의 삶은 자본주의가 자극한 이윤 추구의 삶입니다. 더 이상 이윤만을 추구하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는 이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이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 관한 근본적 질문이며, 대안의 삶을 모색하기 위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망드라는 물질 추구의 삶을 극복할 수 있는 삶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망드라가 헉슬리의 의 경우처럼 동남아시아의 고립된 섬을 배경으로 설정하는 것도 아니고, 우주의 어느 혹성을 배경으로 하여 자신의 바람직한 문학 유토피아를 설계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망드라의 유토피아는 놀랍게도 우리가 현재 처하고 있는 지상의 산업국가 내지 문화 국가의 내부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망드라는 68 학생운동 세대로서 자신의 시골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실험하였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농업 사회주의의 바탕 하에서 공동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리킵니다. 망드라는 자신의 농업 유토피아를 프랑스의 남서부 지방에 해당하는 가스코뉴 Gascogne로 설정했습니다. 그것도 자본주의 이용 가치를 전제로 한, 잘못된 도시 계획을 전환시키게 할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양적 성장에 대해 전적으로 제동을 가한다는 점에서 가히 놀라운 혁명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3. 농자천하지대본 農者天下之大本: 망드라는 처음부터 다음의 사실을 분명하게 제시하였습니다. 즉 프랑스 전체의 사회 경제의 문제를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독립적인 자치 공동체를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망드라의 유토피아는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고전적 유토피아의 속성을 과감하게 파괴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모어 이래로 고전적 유토피아는 유럽 사회와는 전혀 관계없는 먼 곳의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미지의 섬인지, 아니면 역사철학적으로 선취된 미래의 장소에서 발견되는 시간 유토피아인지? 하는 물음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골 유토피아 공동체 Pays de l’Utopie Rustique” (PUR)가 프랑스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윈스탠리Winstanley의 유토피아처럼 유토피아의 실현이 구체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68 학생운동을 이끌던 사람들은 프랑스 국가의 사회 구조를 용인하면서도 시골로 내려가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설립하였습니다.

 

4. “유비쿼터스Ubiquitous”로서의 시골 유토피아: 원래 시골 유토피아 공동체는 하나의 원칙으로서 이해될 뿐 아니라, 시민의 자본주의의 욕구로 생겨나게 된 도시 내부에도 이미 실제로 존재합니다. 작품에서 이곳의 방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사실 시골 유토피아 나라가 무엇인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시골 유토피아 공동체라고 명명하였으니까요. 그들은 자신을 오시타니아인, 프랑스인 그리고 유럽인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국적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습니다. 서유럽은 사실 여러 국가, 지역들 그리고 영토와는 무관한 연맹과 유사한 형태를 드러내니까 말입니다. 시골 유토피아의 공동체에는 명확하게 확정된 영토가 없어요. 이는 자본주의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도시를 만든 경우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밖에 많은 도시 내부에 이미 시골 유토피아 공동체라고 일컫는 구역이 위치하고 있지요.“ (RRU 27) 망드라의 경우 유토피아의 이상은 어디서든 간에 시골 유토피아의 공동체로서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습니다. 설령 대도시의 밀집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시골 유토피아의 공동체는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골 유토피아공동체는 어떻게 가시적인 면모를 드러낼까요?

 

5. 시골 유토피아의 여섯 가지의 특성: 망드라의 유토피아는 여섯 가지의 특성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1. 자본주의 그리고 산업화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고, 농업을 발전시켜 자급자족한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자급자족은 아니다.), 2. 자연 친화적인 삶 그리고 계몽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일, 인구 분산을 위해서 마을의 구조를 개선해 나간다. 3. 첨단 자연과학의 연구 결과를 무시하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물론 이 경우 기술은 온건하고 부드럽게 활용되어야 한다. 과학 기술은 때로는 인간 삶을 파괴하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온건한 방법으로 활용하도록 노력한다. 3. 시골 유토피아 나라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교육 그리고 문화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자가 고유한 일상적 예술적 삶을 가꾸어 나가야 한다. 4. 공동체는 다음의 사항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떠한 방해도 없이 자신의 개성을 발전시키도록 노력한다. 가족 친구 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가급적이면 타인의 삶에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다. 공동체는 자치적으로 관리되고,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변하여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다.

 

5. 전통적 가족제도는 파기되는 게 바람직하다. 전통적 가족제도가 존속되면 가족 이기주의가 형성되어 공동체 전체의 의향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블레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야 한다. 사랑과 성은 결혼이라는 통과의례를 통해서 실천되는 게 아니라, 이성의 만남은 각자의 의지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배려, 존경심과 책임감에 의해서 행해져야 한다. 6. 자본주의의 이유추구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공동으로 일하는 등 새로운 재화획득의 방식이 채택된다. 노동의 의무는 면제되고, 노동 시간 역시 정해져 있지 않다. 한 사람이 공장 하나를 소유할 수 없다. 생산 중심의 사회는 용역 중심의 사회로 이행되어야 한다.

 

6. 시골 유토피아 공동체의 변화 과정 (1): 상기한 여섯 가지 사항은 시골 유토피아 공동체가 어떠한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다양한 직업을 지니고 있으며, 삶의 방식 역시 이질적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항이 공동체 전체에 어떤 내적 동력을 가져다주게 합니다. 말하자면 공동체는 다양한 사람들로 인하여 계속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의 특성을 지속적으로 지니게 된 것입니다. “20년 전에는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이 교육과 문화에 집중되어 있었고, 10년 전에는 공동체 전반에 걸쳐 지방자치의 개혁이 실행되었으며, 지금에는 노동자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문제를 가장 비중 있게 다룹니다.” (RRU 133). 처음에는 사람들은 어떤 일에 대해 완전히 손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했는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일을 단계적으로 체계를 잡아서 하나씩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문화적 교육적 구도를 새롭게 정착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몇몇 지도자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일의 단계를 세우게 되자, 경제 행위의 새로운 형태가 나타났고, 자치적 삶이 실행되었으며, 고전적 가족 구도 역시도 서서히 파기될 수 있었습니다.

 

7. 시골 유토피아 공동체의 변화 과정 (2): 사실 초창기에 몇몇 사람들이 시골 유토피아 나라를 건립하였습니다. 그들은 기존의 시스템을 비난하면서 새로운 조직을 결성하였습니다. 우선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코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아예 히피족이라고 불렀지요. 뒤이어 그들은 서서히 세상과 화해하면서, 그들의 계획을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 시도한 것이 학교였지요. 이러한 거대한 운동은 이곳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니 참 기분이 좋습니다.

 

20년 전에도 나는 우리가 자치적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설파했는데, 그 당시에는 커다란 반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산업이 아니라, 농업 중심으로, 생필품 공장이 아니라, 거대한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도시가 아니라, 시골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웃었지요. 특히 인민경제학자들의 비난이 매우 컸습니다. 스스로 조달하는 삶의 방식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농업 경제의 논리를 재발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생산과 소비의 평균적 성장을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소비할 수 없는 좋은 물품들을 팔아야 합니다. 이로써 벌어들인 남는 수익은 나이 많은 사람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주어져야 합니다.” (RRU 84f).

 

8. 자본주의 사회와의 부분적 소통관계: 망드라의 유토피아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시골 유토피아 나라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의 발전과정과 변증법적으로 관련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자본주의의 발전 형태는 현대인들에게 사치에 대한 갈망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었습니다. “부유한 나라에서는 자신에게 필요한 물품을 얼마든지 직접 구입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자유 시간이라든가 자기 발전을 위한 여가 생활 등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자본주의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풍요롭게 살게 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모두가 이를 생각하지만, 아무도 이에 관해서 발설하지 않습니다. 시골 유토피아의 나라를 주창하는 데 있어서 사람들은 상당히 많은 다양한 계층 사람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특히 노인들의 상황, 봉사하는 일들, 이를테면 정보, 교육 그리고 문화 전반에 걸친 소통의 시스템 그리고 교통 수단 등조차도 배제할 수 없었습니다. 냉장 시설은 시골 유토피아 나라 전체의 상징적 표시와도 같습니다. 농부와 노동자 외에도 이러한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역설적으로 말해서 모든 것이 필요했습니다. 농촌의 사라져가는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서 농촌의 전통을 계승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시골 유토피아의 나라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품위 있는 존재임을 증명해내야 했습니다. 사실 시골에서의 삶은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물론 다은 곳에서는 도시도 있고, 산업 시설도 존재하지요, 거기서 돈이 나오게 되니까요. 그러나 사람들은 농촌에서 생산해낼 수 없는 모든 것을 필요로 합니다. 이를테면 냉장고, 자동차, 트랙터, 전화기 그리고 모든 현대적인 주방 기구를 생각해 보세요, 현대의 모든 기계 내지 유용한 기술들을 우리는 활용하면서 살아갑니다.” (RRU 92). 

 

9. 시골 유토피아의 토대는 프랑스 자본주의의 경제적 발전에 기인한 것이다.: 망드라는 중요한 유토피아 구상에 있어서 유토피아 비판의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의 유토피아 설계에서 거의 도외시되어온 사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판의 첫 번째 사항은 시골 유토피아 나라의 경제적 토대에 관한 것입니다. 시골 유토피아의 공동체라고 해서 주위 사회와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는 독자적 사회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주위의 이웃, 지방차지 단체, 국가와의 끝없는 교류 내지 경제적 지원이 없으면, 어떠한 공동체도 지속될 수 없습니다. 시골 유토피아 나라에 관한 구상이 발전된 것은 1950년대 이후로 약 20년간 프랑스 전역에 이룩해낸 놀라운 경제적인 비약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약은 1970년대 중엽에 이르러 어떤 정체 상태에 이를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항이 시골 유토피아의 나라를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비유컨대 순진하게 변한 부유한 장년층을 생각해 보세요.

 

10. 대안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의 공생관계: 망드라는 다음의 사항을 확신합니다. 즉 대안 사회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성공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말입니다. 이러한 사회는 자치권, 세금 납부에 유리함 점 그리고 국가의 보조 등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많은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 뿐 아니라 대안 사회는 이행 과정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시스템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공동체를 결성하더라도 사람들이 이전의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어야 하고, 동시에 새로운 시스템 속에서 나타나는 장점들을 향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도와주는 용역의 일감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얼마든지 유효하게 활용되고 팔릴 수 있습니다. 시골 유토피아의 나라의 대표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은 세벤 협곡 그리고 피레네 산맥을 방문했다고 하더군요. 이 지역에서는 한 가지 사실이 명확합니다. 시골 유토피아 나라는 인민 경제의 도움으로 살아간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곳으로 흘러드는 개인과 국가의 돈을 생각해 보세요,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곳에 정주하여 연금을 받고 살아갑니다. 도시 사람들은 휴가 시간 혹은 주말에 농촌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몇몇 특권을 지닌 사람들, 이를테면 예술가, 교사 혹은 수공업자들은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결코 무언가를 생산하는 일을 담당하지는 않아요. 그밖에 국가는 정치적, 경제적 전략적이고 이데올로기의 이유에서 산맥에서 살아가며 삼림 사업에 몰두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결정하였습니다. 국가는 삼림을 가꾸고 보호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지원해주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시골에서 숲을 가꾸는 각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건축자금을 마련해주었던 것입니다.” (RRU 166f).

 

11. 개인의 자유와 삶은 국가와 사회의 영향으로부터 얼마만큼 벗어나 있는가? 어느 대학교의 학장은 공동체에 속해 있는 사람인데, 공동체를 방문한 알렉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 특히 어린아이를 잘 교육시키고 그들의 개인적 인성 구조를 가꾸게 할 수 있는가? 하고 묻습니다. 이에 대해 알렉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당신의 질문에 대해 답하기 어렵습니다, 학장님. 나는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나의 얄팍한 견해를 듣고 싶다면 다음과 같이 말씀드릴게요. 이곳에서 살고 있는 어린아이들 그리고 미성년자들은 즐겁게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비굴함이나 (1968년에 파리에서 접했던) 저항감을 드러내지 않는 것 같아요, 이곳에서는 교육의 영역에서 깊은 변화가 일어난 게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나는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 사고가 시골 유토피아 공동체에 영향을 끼쳤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까 해요.” (RRU 172).

 

12. 원탁의 기사 가웨인, 혹은 사적 이기주의: 시골 유토피아의 공동체는 자신의 내적 구조를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 사람들이 국적을 포기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국적을 포기함으로써 국가에 대해 더 이상 정치적인 책임을 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현재 상태에 대해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사적인 삶에 집착하게 되었으며, 더 이상 전체로서의 사회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태도는 사적 삶에 집착하는 이기주의라고 비난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어쨌든 바로 이러한 대목에서 우리는 시골 유토피아 공동체의 취약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계 전체의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골몰하지 않고, 사적인 아름다움과 감각적 삶만 추구하려는 자들의 수수방관주의를 생각해 보십시오, 시골 유토피아의 공동체의 이상은 세상이 몰락하더라도 나는 100명의 여자들과 메르베이유 성에서 유유자적하게 살아가겠노라."고 선언하는 원탁의 기사, 가웨인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