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노이만의 레본나 (1)

필자 (匹子) 2020. 9. 1. 09:44

1. 자본주의 그리고 시민 사회의 가족제도가 파기된 레본나: 사회학자인 발터 G. 노이만 (Walter Gerd Neumann, 1947 - )은 소설의 형식으로 미래 사회의 유토피아를 설계하였습니다. 물론 그의 유토피아 소설, 『레본나. 2020년의 사랑과 사회Revonnah. Liebe und Gesellschaft im Jahre 2020』는 114페이지에 해당하는 짤막한 작품으로서 1986년 하노버에서 간행되었습니다. 제목에서 암시되고 있듯이 노이만이 묘사하고 있는 “레본나”라는 가상적인 사회는 미리 말씀드리자면 두 가지 대안적인 삶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자본주의를 극복한 사회주의의 경제적 삶을 가리키며, 다른 하나는 시민 사회의 가족제도가 파기된 새로운 사랑의 삶을 가리킵니다. 

 

전자의 경우 시장 내지 이윤 추구가 파기되어 있으며, 후자의 경우 싱글들은 강제적 성윤리가 사라진 상태에서 자유롭게 사랑과 성을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노이만은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간에 주어진 국가 체제 내에서 하나의 도시 규모가 완전히 새로운 정치적 경제적 체제를 갖축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작품은 여러 측면에서 문학사에 남을 만큼의 수준작 내지는 명작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작품 속에는 문학적 현실의 리얼리티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 등이 부분적으로 결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깊이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국가 없는 미래의 대안 사회에 관한 어떤 구체적인 틀을 가리킵니다.

 

2. 노이만은 누구인가?: 발터 노이만은 전형적인 늦깎이의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하노버 근처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기술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기술학교는 독일 학제에 의하면 중등학교로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기술을 배우는 학생들을 위한 학교입니다. 집안 형편이 그로 하여금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게 하지 않앗습니다. 그 후에 노이만은 일시적으로 관공서의 행정 업무를 배웠는데, 이 시기에는 주로 니더작센 주의 내무부서가 있는 힐데스하임의 학교에 다녔습니다. 

 

뒤이어 대학 진학의 꿈을 키워 대학 입학 자격에 해당하는 “아비투어” 시험을 치른 다음 1969년부터 1973년까지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는 주로 한스 위르겐 크랄Hans Jürgen Krahl 교수와 함께 공부하였습니다. 뒤이어 하노버 대학에서 사회학을 계속 공부했는데, 틈틈이 사회주의당의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하며, 녹색당의 대변인으로 활약하기도 하였습니다. 뒤이어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기도 하였습니다. 노이만의 풍부한 상상력은 이 시기의 독서편력에서 비롯한 것 같습니다.

 

1985년 이혼한 뒤에 발터 노이만은 직업인을 위한 대학교에서 강의하다가 1988년에 오스나브뤼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에 이릅니다. 현재 그는 하노버 대학교에서 교육학 교수로 일하면서 이따금 도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노이만은 1982년에서 2007년까지 종교, 철학, 사회학, 경제학, 생태학, 페미니즘, 사회, 역사 인간학, 구체적 유토피아 등의 테마로 무려 약 54권의 책을 간행하였습니다. 노이만은 지금까지 정신분석학에 입각하여 정치경제학을 비판해 왔습니다.

 

3. 국경선, 화폐, 의무, 도덕, 강제 노동, 가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작품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제목 “레본나Revonnah”는 이국적으로 들리는데, 사실 그것은 “하노버Hannover”를 거꾸로 표기한 이름입니다. 그렇기에 작품이 2020년 하노버를 배경으로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릅니다. 하노버는 독일 북부 니더작센의 수도로서 51만의 인구가 살아가지만, 현재 대도시의 크기를 갖추고 있습니다. 레본나의 특징은 도시 전체가 수많은 코뮌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노버가 독일이라는 국가의 체제 속에 편입되어 있는 북부 독일의 도시라면, “레본나”는 국가로부터 어떠한 간섭을 받지 않은 채 코뮌의 공동체로 군락을 이루며 자치적으로 살아가는 지역이라고 명명될 수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2004년부터 많은 변화를 시도하였으며, 도시는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의 측면에서 놀라운 개혁을 실천하고 있는데, 개혁은 어언 16년 동안 지속되어 왔습니다. 도시에는 더 이상 전통적 의미의 국가 내지 도시 국가의 체제 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가가 없으니, 국경선도 존재할 리 만무하고, 화폐가 없으니 시민으로서의 세금 납부의 의무도 존재할리 만무합니다. 사람들은 화폐 대신에 정해진 물품 교환권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레본나에서는 국방, 납세, 교육, 근로, 환경 보전 그리고 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 등과 같은 6대 의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4. 주위 환경과 생태 친화적인 건물: 주위 환경은 많이 변했습니다. 은행, 회사의 빌딩 관공서로 쓰이던 건물에는 전시장, 영화관 그리고 강연장 등이 들어섰습니다. 이러한 행사는 자치 단체에 의해서 치러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코뮌의 건물에서 생활하는데, 거기에는 콘크리트 그리고 철근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건물마다 풍력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레본나 사람들이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식당의 부엌에는 여러 가지의 전자 기구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어서 힘든 가사 노동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건물은 “바닥 난방”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요즈음에 이르러 유럽인들은 바닥 난방 시설을 활성화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유럽에서는 무엇보다도 실내 공기의 온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설치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바닥 난방”은 유럽에서는 무척 생소하지만, 레본나에서는 이것이 상용화되어 있습니다. 건물에는 공동 거실, 도서관 음악실 그리고 미술실이 있습니다. 모든 건물은 4층 이하의 규모로 지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 사람들은 콘크리트 그리고 철근을 활용한 고층 건물을 서서히 허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남아 있는 이전의 건물들은 주로 손님의 숙소, 회의실 그리고 식료품 저장소 등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전의 공장들은 자연과학 박물관으로 변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낡은 VW 자동차를 측은한 눈으로 구경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휘발유 내지 경유 자동차는 환경 파괴로 인하여 오래 전에 생산이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5. 시대 비판: 작가는 2000년경에 제 3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기 10년 전에는 두 개의 사회가 병존했습니다. 그 하나는 경제성장을 최상의 과업으로 하는 기존의 낡은 체제의 사회이며, 다른 하나는 노동과 생산을 자치적으로 영위하는 새로운 사회를 가리킵니다. 전자의 경우 경제의 성장은 이룩되지만,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는 빈부 격차를 심화시켰습니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는 언제나 불안과 갈등이 존재했습니다. 부자든 가난뱅이든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자는 자신의 돈을 빼앗길까봐, 행여나 나중에 거지가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가난한 자는 일용할 양식을 얻지 못할까봐 언제나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새로운 사회에서는 이러한 불안과 고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작은 코뮌을 중심으로 서로 협동하며 재화를 나누는 공동체를 결성하였습니다. 말하자면 공동체의 연합이 새로운 사회의 토대가 된 것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새로운 사회의 사람들이 고도의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장시간 노동에 임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로 인하여 사회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사람들이 재화를 작게 생산하여 조금 소비하는 상호 협동적인 삶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국가의 고위 엘리트 증에게 수동적으로 대항하며,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킨 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요약하건대 레본나는 첫째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빈부격차를 극복한 사회를 가리킵니다. (NeumannB: 79). 이를 위해서는 노동과 임금에 관한 엄밀한 설정과 제도 개선 그리고 이에 대한 실행이 필연적으로 요청됩니다. 둘째로 레본나는 국가 중심의 권위주의적 수직구도의 권력 체계를 허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것을 작은 규모의 코뮌 사회에 관한 바람직한 범례로 이해할 수 잇습니다. (Schwendter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