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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하인리히 만의 신하 (2)

필자 (匹子) 2019. 5. 26. 15:22

6. 권위주의의 인간으로 성장하다: 헤슬링은 베를린에서 대학을 다닙니다. 우리는 주인공의 성격 형성의 과정에서 어떤 단순화 과정이라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오래 전부터 세계를 권력체계라는 단순한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모든 가치는 권력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는냐 하는 물음에 따라 결정됩니다. 권위주의의 인간의 관심사는 힘과 권력이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이로써 힘없는 유대인 그리고 돈 없는 노동자들을 무시하거나 짓밟는 것은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실제로 헤슬링은 소설 속에서 학생 단체 “노이토이토니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합니다. 주인공에게는 개별적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로지 단체의 회원, 군인, 관료, 교회 등 조직화된 집단적 존재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로지 권력의 체제로부터 혼자 쫓겨나가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헤슬링과 같은 권위주의의 인간들은 유형적으로 어떻게 해서든 힘 있는 자 내지 권력 기관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합니다. 가정, 학교, 대학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디더리히 헤슬링은 점점 강한 권위주의적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게 됩니다.

 

7. 주인공, 출세를 위해 사랑을 포기하다. 그런데 우리는 주인공이 권위주의의 성격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방해 요인을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헤슬링은 자유주의자 괴펠의 딸, 아그네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미에 대해 연정을 느끼고 접근하기도 합니다. 괴펠의 가정은 지금까지 경험했던 프로이센의 가정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아그네스는 겸손하고, 수줍으며, 주인공을 신뢰하려고 한 첫 번째 인물입니다. 말하자면 주인공은 아그네스와의 만남을 통하여 지금까지의 권력 지향의 삶을 떨치고, 올바른 방향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찾습니다. 게다가 미텐발트의 목가적 풍경 그리고 시골의 삶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일시적으로 권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듭니다. 물론 아그네스를 통한 따뜻함, 부드러움 그리고 사랑의 감정 등은 주인공의 마음에 일시적으로 안온함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헤슬링은 결국 이를 저버리고 맙니다. 왜냐하면 아그네스와의 사랑이 자신의 출세 내지 경력 쌓는 일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뒤이어 헤슬링은 그미로부터 차갑게 등을 돌립니다.

 

8. 신하근성, 혹은 주인공의 정치적 행위: 헤슬링은 학교와 군대에서 배운 대로 살아갑니다. 그는 사회인으로서 권력에 맹종하고, 아랫사람을 호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국가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일반 대중들에게 공감을 표명하기도 하고, 군대에서 교묘한 방식으로 근무를 기피합니다. 대학을 대충 다닌 뒤 헤슬링은 오직 자신의 고향에서 사람들과 이리저리 휩쓸립니다. 단골 술집에서 사람들을 선동하기도 하고, 자신이 근무하는 공장에서 제반 명령을 내립니다. 헤슬링은 집안 내에서 폭군으로 행세하였으며, (데모 군중을 쏴 죽여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무산계급에 대해 열정적으로 반대합니다. 그의 정치적 입장은 다음의 사건에서 잘 드러납니다. 즉 어느 유대인이 황제 모욕죄로 재판에 연루되었을 때 주인공이 유대인에게 불리하게 거짓 증언하는 게 그것입니다. 그는 사민당원, 나폴레옹 피셔가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도록 교묘한 술수를 씁니다. 나아가 헤슬링은 정부 총리 불코의 비서로 일하며, 돈 많은 구스테 다임혠과 결혼합니다. 그의 신혼여행 장소는 처음부터 로마로 확정되어 있었는데, 이는 다만 황제의 자취를 더듬기 위함이었습니다. 게다가 헤슬링은 비밀 깡패 집단을 동원하여 경쟁자 클뤼징의 제지 공장의 주식을 대부분 매수하게 합니다.

 

9.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은 권력에 대한 일순간의 배반으로 출현할 수 있다. 작가는 상기한 작은 에피소드들을 연결시켜, 다음과 같은 물음에 답하고 있습니다. 즉 주인공 디더리히 헤슬링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폭군이자 신하라는 이른바 이중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헤슬링은 한편으로는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인 조직 내지 단체에 충직하게 봉사합니다. 이러한 단체들은 실제로 빌헬름 황제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충실히 따르며 이를 실천에 옮기는 기관입니다. 그러나 헤슬링은 다른 한편으로는 은밀하고도 교활하게 상기한 단체 (학교, 대학, 노동 단체 군대 등등)에서 개인적 권력을 키워 나갑니다. 주인공의 기회주의적 처신은 바꾸어 말하면 자신의 경력 쌓기의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주인공의 권력에 대한 의지는 어떤 완전한 복종의 순간에 주어진 권력 체계를 벌컥 뒤엎어버리겠다는 열광적 도취로 돌변합니다. 이 경우 권력에 대한 깊은 복종은 어느 순간에 이르게 되면 권력에 대한 배반으로 출현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귀결과 같습니다.

 

10. 잠재적 파시스트로서의 디더리히 헤슬링: 하인리히 만은 헤슬링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빌헬름 2세에 복종하는 신하들의 의식적 무의식적 처신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려고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신하들은 허리를 굽히면서 독재자에게 복종하지만, 어느 절대 절명의 순간에 이르면 자신의 노회한 기지를 발휘하여 끝내 살아남을 뿐 아니라, 이를 위해서 독재자를 일순간에 배반합니다. 따라서 신하는 일부 충직한 인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돌변한 인간처럼 행동하곤 합니다. (물론 결과론이지만) 이러한 돌변이야 말로 나중에 파시즘을 잉태시키는 근본적 이중성, 즉 굴종과 배반 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심지어 헤슬링은 어느 연설에서 독일인의 영혼을 지금까지 내려온, 신에 의해 축복 받은 권력과 동일하다고 말합니다. 하인리히 만은 헤슬링의 연설과 함께 어떤 뇌우의 순간을 삽입하고 있는데, 뇌우는 작가의 입장을 은밀히 드러내는 객관적 상관물입니다. 뇌우에 관한 묘사는 한마디로 말해 모든 질서를 용해시키고, 빌헬름 제국주의의 자기 파괴 행위를 징벌하는 초정부주의적인 환영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11. 지식인에 대한 작가의 비판: 하인리히 만은 작품 속에 또 다른 부정적인 인물을 묘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다름 아니라 헤슬링의 친구인 볼프강 부크입니다. 부크는 이를테면 헤슬링과 같은 보수적이자 권위주의의 인간형을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신의 신념을 행동을 옮길만한 추진력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부크는 작품 내에서 유미주의로 도피하고 있는데, 이러한 태도는 패배주의에 함몰된 당시의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것입니다. 하인리히 만은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지식인을 작품에 반영함으로써 당시 빌헬름 제국주의 정책에 맞서 싸우지 않고 지적 유희에 침잠해 있었던 지식인 계급을 신랄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실제로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은 대부분 사회주의 혁명 투쟁에도, 자본주의적 팽창 정책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세기말의 분위기에 휩싸인 채 기껏해야 리하르트 바그너의 (칙칙하고도 과거 지향적인) 오페라에 몰입되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반동적 파시스트” (E. 블로흐) 칼 구스타프 융의 전체적 신비주의 내지는 도취 충동이 얼마든지 활개 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2. 권위주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성의 억압: 아도르노는 1950년에 『권위주의의 성격 The Authoritarian Personality』라는 글을 통해서 인간이 어째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을 맹신하는 권위주의의 증후군을 추적하였습니다. 인간은 아도르노에 의하면 관습, 복종, 공격성, 이데올로기, 파괴성 등에 의존하여 새로운 사상 내지 낯선 인간에 대해서 적대적 태도를 취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유형적 성격의 범례를 헤슬링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성 과학자 빌헬름 라이히는 『파시즘의 대중 심리』에서 할술 더 떠서 권위주의가 어떻게 대중을 전체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맹종하게 만드는가? 하는 사항을 언급하였습니다. 권위와 권력에 맹종하는 인간의 유형은 라이히에 의하면 파시스트 그리고 사회주의자 할 것 없이 성의 억압을 강요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의 억압이 라이히에 의하면 한편으로는 인간을 심리적으로 병들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도마조히즘의 인간을 양산시키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을 향유하는 사람은 개개인들을 선동하는 국가 이데올로기의 저의를 예리하게 간파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