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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릴케의 말테의 수기 (2)

필자 (匹子) 2019. 6. 7. 19:28

6. 아베로네와의 만남, 제 2부: 말테의 수기의 공간은 다시 역사적 공간으로 확장됩니다. 말테는 과거에 간접적으로 접했던, 잊힌 역사적 인물들 (그리샤 오트레포프, 칼 대제, 칼 6세, 아비뇽의 교황 등)을 기억해냅니다. 이러한 인물들은 역사에 실존했던 인물이지만, 말테의 뇌리 속에서 놀랍게도 “궁핍과 가난의 언어”로써 기이하게 상징화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이어지는 것은 그의 친척인 마만 Maman과 함께 지냈던 생활에 관한 기억입니다. 마만은 말테보다 약 열 살 정도 더 나이든 처녀였는데, 말테는 그미를 몹시 따랐습니다. 말

 

테는 마만의 나이어린 동생, 아베로네를 마음속으로 사랑했습니다. 아베로네를 만나던 기억에 관한 묘사는 작가의 사랑에 대한 은밀한 입장 표명과 교차되어 나타납니다. 아베로네를 처음으로 만났던 그날의 놀라움은 코뿔소와 젊은 여성에 관한 비유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코뿔소를 한 번도 바라보지 못한 사람에게 나타난 신비로운 동물은 놀라움 바로 그 자체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베로네의 형체는 비록 주인공의 뇌리에는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거대한 설렘으로 각인되고 있었습니다.

 

7. 찬란한 천국의 남성상으로서의 아베로네: 아베로네는 주인공보다도 릴케가 애인으로서 그리고 누이로서 사랑했던 루 살로메의 성격을 빼박았습니다. 말테는 신비롭고도 사랑스러운 아베로네를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그미는 부드럽지만, 어떤 “찬란한 천국의 남성상 eine strahlende himmlische Männlichkeit”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마도 릴케는 남성적인 풍모를 지닌 여성을 사랑한 것 같습니다. 첫 아내 클라라 베스트호프, 그리고 릴케의 영원한 누이였던 루 살로메 역시 선이 굵은 얼굴을 지닌, 당찬 여성들이었습니다. 여성적인 릴케가 남성적인 강인함을 지닌 여성에게서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려고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기도 합니다.

 

아베로네의 면모는 고대의 여성 시인 사포, 가스파라, 루이제 라베, 베티네 아르님 등과 같은) 보편적 여인상으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아베로네는 함께 책을 읽으면서 논평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자아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정한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사랑은 보편적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 형체 없는, 무소유의 상에 대한 매혹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고귀한 사랑의 감정은 릴케에 의하면 소유욕이 배제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무조건적이고도 형체 없는 사랑의 감정이며, 궁극적으로는 신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라고 합니다.

 

8. 말테와 아베로네, 코뿔소와 꽃을 든 여성, 부치와 팸: 우리는 심리적 성적 차원에서 아베로네와 말테 사이의 관계를 언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테는 육체적으로만 남자일 뿐이지, 그의 심리적 구조는 지극히 여성적인 여성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는 부드러운 남성의 차원을 넘어서서, 부치를 사랑하는 팸의 태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치 릴케가 여성 살로메에게 압도당하는 여성적 사내였다면, 주인공 말테는 비록 육체적으로는 사내이지만, 말테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아베로네를 수동적으로 포옹합니다. 가령 상상의 동물 코뿔소를 다루는 고귀한 여성의 상을 생각해 보세요. 고귀한 여성은 꽃과 향기로써 기이하게 생긴 코뿔소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끝내는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순한 짐승으로 행동하게 합니다.

 

사실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린 상상 속의 동물 코뿔소는 낯설음과 미지를 상징한다고 이해되지만, 사실은 어쩌면 그 자체 남근의 기표에 해당하는 이른바 “팰러스 Phallus”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뒤러는 한 번도 코뿔소를 보지 못한 채 상상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동물을 그렸는데, 신비로울 정도로 동일합니다. 1515년에 사람들은 서인도 제도에서 탱크 코뿔소 Panzernashorn 를 데리고 왔는데, 어느 미지의 화가가 이를 보고 목판화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 그림은 1516년에 로마로 건너왔는데, 아마도 뒤러는 이 목판화를 바라본 듯합니다. 코뿔소의 피부는 마치 철갑으로 이루어진 것 같으며,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무늬로 치장해 있는데, 이는 놀랍게도 팰러스, 즉 남근의 피부를 유추하게 해줍니다. 요약하건대 아베로네 그리고 말테 사이의 관계는 살로메 그리고 여성적인 시인, 릴케 사이의 관계이며, 이는 코뿔소 그리고 분노를 잠재우는 꽃을 들 여성 사이의 관계를 말해줍니다. 이러한 관계는 동성의 연애를 즐기는 부치와 팸 사이의 관계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9. 잃어버린 아들에 관한 이야기: 『말테의 수기』는 의미심장한 우화로 끝맺고 있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아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젊은이는 어릴 때 이미 나르시스와 같은 가정적 사랑에 이끌립니다. 자란 뒤 그는 더 이상 가정의 요구를 견뎌내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끝내 가출하고 맙니다. 낯선 곳에서 젊은이는 온갖 사랑의 삶을 추구합니다. 쾌락과 방종은 짜릿하나, 일시적이고 허망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정한 내면의 거대한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달콤한 사탕을 먹으려는 아이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달콤한 사탕을 빨면 빨수록, 더욱더 목이 마르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쾌락과 관능을 추구하는 사내 역시 그러한 충동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관능적 쾌락은 자신의 욕망을 일시적으로 달래주지만, 욕망은 잠에서 깨어난 뒤에는 그럴수록 더욱더 끓어오르는 법이지요. 젊은이는 적어도 무의미하게 동물적 쾌락에 탐닉하는 한, 진정한 사랑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습니다. 결국 그는 목사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어떤 대상과 결부되지 않은, 신에 대한 사랑을 체험합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유년을 현재의 관점으로 추체험하기 위해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는 과거에 느꼈던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 없습니다. 오직 신만이 그를 사랑할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은 그를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10. 불안으로 인한 자기 차단과 고립: 소설은 미완성으로 끝납니다. 그렇다면 릴케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요?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안에 근거한 두려움에 관한 정조입니다. 실제로 말테 라우리게 브리게는 수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대도시에서 불안을 느낍니다. 이러한 불안은 자신이 도시의 궁핍함에 의해 파멸되고 말리라는 극도의 불안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정작 두려운 것은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가난과 공허함, 바로 그것입니다. 이를 떨치기 위해서 그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믿음에 의지해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채택한 것은 주위 여건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일입니다.

 

인간 동물은 스스로를 고립시킴으로써 자기 존재를 간파할 능력과 힘을 얻게 됩니다. 고독은 한 인간에게 우울의 정조를 가져다주지만, 다른 한편 자신의 벌거벗은 존재를 냉철하게 되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고독은 뮤즈의 친구이다. Solitudo musis amica”라고 과거 사람들이 말하지 않았던가요? 릴케는 이 소설을 탈고한 다음에 오랫동안 침묵합니다. 한편으로는 작품이 미완성으로 끝난 것을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렇지만 릴케는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모든 열정과 능력을 투여했기 때문에 “나는 작가로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자신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아베로네가 어째서 결혼하지 않았는지 몹시 궁금하게 생각해요, 나는."

 

11. 한국 작가들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작품: 이 작품은 한국의 작가들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70년대 초에 잡지 현대문학은 대다수의 가장 영향을 준 외국 명작에 관한 앙케트를 조사했는데, 약 삼분의 일 이상의 한국 작가 내지 한국 시인들이 말테의 수기를 꼽았습니다. 그들은 작가 계용묵이 (많은 오역을 담고 있는) 일본판을 토대로 번역한 말테의 수기를 읽고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권력자는 의도적으로 퇴폐적 감상 문학을 용인하고, 어떠한 정치적 도전을 담은 문학적 사조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작가들이 수용한 문학적 경향은 퇴폐적인 낭만주의 문학이었습니다. 현재에도 말테의 수기 번역본은 상당히 많습니다. 릴케의 작품이 좋든 싫든 간에 한국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1) 박환덕 역, 문예출판사 1999, (2) 김용민 역, 책세상 2000, (3) 문현미 역, 민음사 2005, (4) 김재혁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5) 안문영 역, 열린책들 2013, (6) 백정승 역, 동서문화 출판 2014. 나는 당신에게 김용민 교수가 번역한 『말테의 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12. 퇴폐적 로맨티시즘이 문제다: 마지막으로 『말테의 수기』의 어떤 치명적인 한계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작품이 독자에게 현실 도피주의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로맨티시즘의 정조를 너무나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퇴폐주의의 폐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어느 독자는 이 작품을 “어느 정신병자의 넋두리 같다.”고 토로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릴케는 19세기 말의 경제적 사회적 모순 구조를 외면하고, 너무나 범신론적 신비주의에 침잠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9세기 말부터 극으로 치달은 자본주의의 폭력은 마침내 세계대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릴케의 산문을 읽고, 공상적 판타지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프로이센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전쟁 이데올로기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는 한반도에서도 그대로 해당되는 말입니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 살아가던 수많은 한국 작가들이 병든 사랑과 죽음의 정조라는 독소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유미주의에 침잠했는데, 이러한 분위기에 일조한 작품이 『말테의 수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김동리 내지 서정주와 같은 예술을 위한 예술 l’art pour l’art 내지 유미주의 문학은 그 자체 존재 가치를 지닐 수는 있겠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을 지닙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마치 마약이 그러하듯이 사회 정치적으로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사회적 모순을 감지하지 못하도록 작용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