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서로박: 그 언덕에 세워진 이정주 시인의 탑 (8)

필자 (匹子) 2020. 8. 27. 11:20

8. “제 몸 버릴 곳 마땅치 않아”

 

나: 마지막으로 명시들 그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시는 아무래도 「절터」라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자신이 없으므로

그 언덕에 탑을 세운 거다

그래도 자신이 없으므로

탑 가득히 불을 피워 넣은 거다

불쏘시개로 제 손을

밀어 넣은 거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니

손가락이 무너진다

무너지지 않는 것이

어디 있을까

달도 무너진다

 

제 몸 버릴 곳 마땅치 않아

절을 짓는 거다

절도 받아주지 않으므로

떠도는 거다

어깨 움츠리며 탑 하나

무너진 달 속으로 들어서는 거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작품을 탄생시킬 때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마치 호랑이가 토끼 한 마리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듯이, 예술가는 하나의 틀 속에서 가장 완전한 작품을 창조해내려고 합니다. 인용 시에서 “탑”과 “절”은 불교와 신앙을 연상하게 하지만, 탑은 예술 작품으로, 절은 작품 탁마의 공간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너: 시인은 “탑‘이 더 이상 “자신이 없”기 때문에 만들어진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는 무슨 뜻일까요?

나: 네. 바로 거기에 놀라운 역설이 담겨 있어요. 자신이 없다는 것은 여기서 포기 내지 체념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불쏘시개로 제 손을 밀어”넣다시피 하여 명작을 만들어내다가, 마지막에 조우하게 되는 아쉬움일 수 있어요. 이제는 더 이상 최상의 무엇을 창조할 수 없다고 생각될 때, 예술가의 뇌리에 스치는 정서와 관련되는 느낌이지요. 에른스트 블로흐 Ernst Bloch의 표현을 빌면 “실현의 아포리아”라고 할까요?

 

너: 과거에 정조는 활을 잘 쏘았다고 합니다. 백발백중의 궁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화살을 의도적으로 과녁 한복판에 명중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으면, 차제에 활 쏘려는 의지가 사라진다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이 시 역시 마치 정조의 활쏘기와 같은, 어떤 구도정신을 담은 것 같은데요?

 

나: 잘 보셨습니다. 작품은 예술 창조의 결실일 뿐 아니라, 완전무결한 무엇을 찾아 헤매는 구도자와 노력의 소산입니다. “제 몸 버릴 곳 마땅치 않아”라는 의미 역시 이와 관련됩니다. 어찌 인간으로 태어나서 처음부터 제 몸 버릴 곳을 찾겠습니까? 인간이면 누구든 자신이 바라는 바를 성취하려고 노력하겠지요. 그러나 자기희생을 동반한 열광적인 노력 속에서 우리는 끝없이 자신의 “손가락이 무너지”는 것을 감지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이룩하려는 최종 목표 역시 도달될 수 없는 무엇으로 각인되곤 합니다. 절터에는 탑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탑은 끝내 완성되지 않고, 이미 오래 전에 “달 속으로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너: 달리 생각해 보면, 시집 『아무래도 나는 육식성이다』자체가 “그 언덕에” 세워진 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에는 이정주 시인의 수십 년 동안의 작품 창작의 노력이 고스란히 배여 있습니다.

나: 동감입니다. 부디 이번 시집이 원래의 가치에 합당한 좋은 반응을 얻기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