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차주일의 시 "어떤 새는 모음으로만 운다 - 사랑"

필자 (匹子) 2020. 11. 19. 11:49

자신을 먹이로 쫓던 새를 찾아가

그 새의 눈물을 빨아먹어야만 살아남는 나방이 있다.

천적의 맥박 소리에 맞춘 날갯짓으로

잠든 눈까풀을 젖히는 정지된 속도로

천적의 눈물샘에 긴 주둥이 밀어 넣을 수 있었던

진화는 천적의 눈 깜박이는 찰나에 있다.

천적의 눈물에 침전된 염기를 걸러

제 정낭을 채운다는 미기록종 나방이여

상사 빛 날개를 삼켜 다시 염낭을 채워야 하는 새여

날개로 비행 궤적을 지우는 고요의 동족이여

제 감정에 마음 찔려본 자만 볼 수 있는 궤적은

내가 가위눌린 몸짓으로 썼던 미기록종의 자음들

나여, 불면이 네 눈으로 날아와 살아남으려 함은

이미 제 영혼인 울음을 간수할 유일책이기 때문

나여, 새의 부리를 조용히 열고

울음통 속으로 들어가 보아라.

차마 소리로 뱉지 못할 자음이 있어

모음만으로 울며 날아가는 궤적을 읽어보아라.

 

 

 

 

자본주의는 우리 서로를 친구로 지내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우리는 제각가 고객과 상인의 관계에 처해 있습니다. 혈육도 이웃도 서로의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수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적, 다시 말해서 원수가 생겨납니다. 어느날 우리는 원수, 즉 천적에게 피해당합니다. 우리는 피흘리면서 내심 바랍니다. 우리의 적도 언젠가는 내가 당했듯이 피눈물을 흘리기를... 어느 날 그의 파산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내심 쾌재를 부릅니다. 이때 우리의 심정은 새의 눈물을 빨아먹어야만 살아남는 나방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미기록종 나방일지 모릅니다.

 

코로나19의 시대는 많은 분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하고 있습니다. 고통의 근원은 대체로 "만물의 근원 nervus rerum", 즉 돈에 있습니다. 타인에게 자신의 고통을 발설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분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제 감정에 마음 찔려본 분들은 혼자서 흐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새의 움음통에서 도사린 차마 뱉지 못한 자음은 이러한 흐느낌의 내용입니다.차주일의 시는 삶의 고통 그리고 이러한 흐느낌이 얼마나 처참하게 은폐되어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