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반칠환의 시 "어떤 채용 통보"

필자 (匹子) 2020. 9. 26. 07:14

어떤 채용 통보

반칠환

아무도 거들떠보도 않는 저를 채용하신다니
삽자루는커녕 수저 들 힘도 없는 저를,
셈도 흐리고, 자식도 몰라보는 저를,
빚쟁이인 저를 받아주신다니
출근복도 교통비도, 이발도 말고 면도도 말고
입던 옷 그대로 오시라니
삶이 곧 전과(前過)이므로 이력서 대신
검버섯 같은 별만 달고 가겠습니다
미운 사람도 간다니 미운 마음도 같이 가는지 걱정되지만
사랑하는 사람도 간다니 반갑게 가겠습니다
민들레도 가고 복사꽃도 간다니
목마른 입술만 들고, 배고픈 허기만 들고
허위허위 는실는실 가겠습니다
살아 죄지은 팔목뼈 두개 발목뼈 두 개
희디희게 삭은 뼈 네 개쯤 추려
윷가락처럼 던지며 가겠습니다
도면 한 걸음, 모면 깡충깡충 다섯 걸음!
고무신 한 짝 벗어 죄 없는 흙 가려넣어
꽃씨 하나 묻어들고 가겠습니다

 

너: 시가 쉽게 읽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 그렇습니다. 시의 함의를 파악하기란 힘이 드는 법이지요. 그래도 인용 시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어떤 채용 통보"는 하루종일 나의 심금을 울렸으니까요. 그렇다고 이 시가 당신의 가슴 속에도 동일한 감동의 파장을 퍼뜨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너: 왜지요?

나: 왜냐하면 사람에 따라, 작품을 수용하는 그릇의 크기와 질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 채용, 채용이라... 본문의 내용은 공채에 관한 게 아닌데요?

나: 네. 여기서 말하는 채용이란 일자리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너: 여기서 일자리를 얻는 것이란 몇 푼의 임금을 받기 위해서 일부러 친절하려고 애를 쓰고, 무조건 웃으면서 고개를 숙이는 행동과는 분명히 다르겠지요?

 

나: 네, 채용이란 통상적인 의미로는 남들에게 유용한 일을 행할 수 있는 직장 얻기를 뜻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말하는 채용은 이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됩니다. 그것은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와 관련되는 것 같습니다.

너: 장자 (莊子)의 체념일까요, 아니면 이순 (耳順)의 그림자와는 반대되는 의미일까요? "이력서 대신 검버섯과 같은 별만 달고" 도달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나: 가령 자본주의의 쳇 바퀴 속에서 마침내 채용"당"한 자가 "허위허위 는실는실" 가는 곳은 (故 백설자 교수의 번역서 제목처럼) 망각의 레테 Lethe 강의 어귀가 아닐까요? 그는 어쩌면 저세상으로 인도하는 자의 배에 올라타서 "고무신 한 짝 벗어 죄 없는 흙 가려넣어/ 꽃씨 하나 묻어들고" 떠날지 모릅니다. 시인은 원한과 증오를 멀리하고 싶지만, 이것들 역시 인간의 애환의 삶 속에 뒤섞여 있는 나쁜 흔적이라면, 따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미운 사람도 간다니 미운 마음도 같이 가는지 걱정되지만/ 사랑하는 사람도 간다니 반갑게 가겠습니다."

 

너: 어쩌면 이 시는 궁극적으로 일회용 물건처럼 살아가는 자본주의 체제 속의 속물 (homo normalis)을 역으로 풍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추측입니다만 물구나무 선 먹이 피라미드에서 상부로 향하려고 아둥바둥거리는 자는 이 시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난을 더럽다고 외면하려는 자, 어떤 경우든 성공을 위해서 달리려는 자 또한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저 사회의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자의 푸념 내지 하소연으로 지레짐작할 테니까 말입니다.

 

너: 성공에 대한 야망을 한낱 허망함으로 인지하는 나이든 분, 인생의 단 맛 쓴 맛 다 맛본 지천명들은 이 시의 함의를 어느 정도 감지할까요? "살아 죄지은 팔목뼈 두개 발목뼈 두 개/ 희디희게 삭은 뼈 네 개쯤 추려/ 윷가락처럼 던지며 가겠습니다"라는 구절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것 같은데...

 

나: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본의든 아니든 간에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지르는지요?

너: (...)

나: 내가 놀라는 것은 한 번도 50 나이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던 시인이 자신의 혹은 타인의 미래 삶을 예리하게 관통하여 이를 문학적으로 형상화시켰다는 사실입니다.

너: 시는 시인 반칠환에게 앞으로의 삶에 대한 차시간표이겠지요?

 

나: 그렇습니다. 시 속의 내용은 시인의 미래 삶과 다를 바 없습니다. 어쩌면 시인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 (Arthur Rimbaud)의 말대로 "시 작품 속에 반영된 예견에 따라 삶을 살아"가려고 의도하는 것일까요?

너: 어쨌든 반칠환 시인의 천재성은 놀랍습니다.

나: 동의합니다. 한 번도 살아보지 않고, 미래의 삶과 이에 대한 여운을 예리하게 통찰하게 하고 그것을 적확하게 묘사하는 일 - 이는 범인 凡人의 일감은 결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