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억과 갈망의 몽타주
너: 이정주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아무래도 나는 육식성이다』가 간행됩니다. 수록된 작품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나: 감히 말씀드리건대, 시집에 수록된 약 10편의 작품만큼은 어떠한 문학상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찬란한 기념비와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정주 시인은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오랜 시간 시작품의 창조에 매진해 왔습니다. 그는 생업을 제외하면 다른 곳에 거의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번 작품들은 간결한 시어 그리고 대화체 등으로 인하여 수월하게 읽혀졌습니다.
너: 시인의 시에는 현실의 맥락을 뛰어넘는 번득이는 비약이 있어요. 그리고 간간이 출현하는 기발한 착상이 독자를 놀라게 하고요. 그밖에 기억해야 할 사항은 주어진 현실에 입각한 기준과 논리에 결코 얽매이지 않으려는 과감한 표현 기법입니다. 이러한 특징이 이정주 시인의 시의 독특한 개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가령 이번 시집에는 다음과 같은 시구가 있습니다.. “집이란 공중에 그은 실선이다” 「무주택」, “여자는 LP 판위에 앉아 있다” 「습관에 관하여」, “수도꼭지를 튼다/ 바람이 빠진다/ 이윽고 시가 터져 나온다.”「단수」, “CCTV가 당신의 모습을 한 번 벗긴다. 흑백으로/ 아, 영혼이 빠져나간다.”「실종」
나: 그렇지만 “과감한 표현 기법” 대신에, “무궁의 상상력”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시인은 대체로 더 나은 표현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사통팔달의 연상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시적으로 표현된 사물들은 대체로 시인의 내면의 풍경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의도적으로 은폐시키곤 했습니다. 그렇기에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지금까지 이지적이고 냉정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겨 왔습니다. 어쨌든 이정주 시인의 이번의 작품을 읽을 때도, 우리는 자구적인 면에 비중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너: 자구적인 표현이 아니라면, 우리가 어느 측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까요?
나: 시인은 관점의 변화를 극대화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기대감을 표현할 경우에 다른 사람의, 혹은 다른 사물의 관점에서 뒤집어서 고찰하는 방법은 무척 효과적입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언젠가 나는 이정주의 시문학을 “기억과 갈망의 몽타주”라고 명명한 바 있습니다. 시적 현실 속에는 현재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과거의 기억 그리고 미래의 기대감 내지는 충격이 응집되어 있습니다. 시인이 이전에 발표된 네 편의 시집에서 산문시를 즐겨 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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