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레티프의 '남쪽 지역의 발견' (2)

필자 (匹子) 2022. 9. 26. 06:52

9. 이상적 공동체의 어떤 구조적 원칙: 이제 작품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소설은 사랑의 이야기에다 비행선 하나를 발명하는 에피소드를 첨가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빅토린은 자신의 기술을 활용하여 비행선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루키아노스 Lukian,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Cyrano de Bergerac, 프랜시스 고드윈 Francis Godwin 등이 언급한 비행물체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레티프가 이러한 작가의 상상을 모방한 것처럼 느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유토피아의 사고를 비행선에 결부시킨 사람은 다름 아니라 레티프 드 라 브레톤이었습니다. 시라노의 작품 『비행하는 인간』에서 주인공은 아침이슬을 가득 담아서 자신의 초능력을 실천에 옮깁니다. 태양이 병 속의 물을 기화시키면, 비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레티프의 경우 과학기술의 활용은 주어진 사회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하나의 전제 조건과 같습니다. 실제로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과학 기술의 발전에 관한 사항일 뿐 아니라, 어떤 이상적 공동체의 구조적 원칙을 분명하게 규정하는 일이었습니다.

 

10. 작품에 반영된 세 가지 유토피아의 상: 레티프의 작품은 세 개의 사회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도피네 섬, 메가페타곤 그리고 크리스틴의 섬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첫 번째 사회설계는 마치 루소가 『새로운 엘로이스』에서 전원적 자연을 중시했듯이, 찬란한 자연이라는 배경 하에서 이루어집니다. 소설의 주인공, 빅토린은 귀족 출신의 처녀, 크리스틴을 유혹하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비행선을 이용하여, 아무도 근접할 수 없는 “도피네 Dauphiné 섬”으로 데리고 가는 게 그의 계획이었습니다. 레티프는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바로 이곳에서 찬란한 이상 사회를 설계하였습니다. 그것은 부정이 판치고 썩어가는 프랑스 문명과는 다른, 어떤 성취된 삶의 구체적 형상을 가리킵니다.

 

둘째로 주인공 빅토린은 처음부터 섬의 인구가 증가하기를 애타게 기대하였으며, 자신의 발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싶었습니다. 이는 결국 남태평양의 어떤 거대한 영토를 꿈꾸게 하였습니다. 레티프는 당시에 널려 회자되던 여러 가지 여행기를 잘 알고 있었는데, 여기에 착안하여 가상적인 섬을 떠올립니다. 주인공, 빅토린과 그의 큰아들은 “메가페타곤 Megapetagon”의 이상적 공동체를 착안해냅니다. 이것이 두 번째의 유토피아 사회의 설계를 가리킵니다.

 

세 번째 유토피아는 페타곤 영역에 속하는 도피네 섬의 근처에 있는 크리스틴 섬에서 발견됩니다. 첫 번째의 도피네 섬은 사람들의 접근이 불가능한 정상의 돌이라는 점에서 유토피아 사회 설계와는 무관한 공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기에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사회 설계인 메가페타곤 그리고 크리스틴의 섬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레티프의 작품에서는 두 개의 중요한 이상 사회가 출현하는데, 그 하나는 태평양에 있는 크리스틴의 섬이며, 다른 하나는 “메가페타곤”입니다.

 

11. 계몽주의 사조와 변화된 현실: 레티프는 작품, 『남쪽 지역의 발견』을 통하여 자신이 처한 시대에 관해서 분명한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왕권 체제는 계층 사회의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억압과 폭정 그리고 귀족과 수사 계급의 패륜을 방조해 왔다고 합니다. 시대의 예술적 조류 역시 계몽주의의 말기의 현상을 반영하고, 계몽주의가 추구하던 합리성과 도덕 등이 이제 더 이상 변화된 현실적 정황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작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작품에는 작품 편찬자가 등장하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현재의 시점은 계몽주의의 사고가 그 정점에 도달하여, 계몽사상이 갈망하던 바는 프랑스의 아담스미스라고 명명되는 앙-로베르-자크 튀르고 Ann Robert Jacques Turgot라든가, 루이 16세의 재정 장관을 지내던 자크 네커 Jacques Necker의 개혁주의 정치에 의해서 성취되기 직전입니다.

 

지금까지 성공가도를 달리던 합리주의는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위기에 처한 채 더 이상 주어진 현실의 문제점을 반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작가는 갈망의 상 내지 꿈 그리고 유토피아의 상으로 현재의 제반 문제점을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경직된 합리주의는 레티프에 의하면 인간의 몽상과 꿈에 의해서 보완될 필요성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오늘날 작가에 필요한 것은 인간의 욕구라든가 감각적 본능을 통한 현실 묘사라고 합니다.

 

12. 시대 비판: 레티프는 프랑스 계층 사회의 잘못된 면 그리고 봉건적 사회 구조를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회는 계층으로 분화되고, 사유 재산은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 비약의 장, 「어느 원숭이에 관한 편지 Lettre d’un singe」에서 작가는 “재화의 소유에 관한 현행 법칙”을 “인간 삶을 궁핍하게 만든 근원”이라고 규정합니다. 현재의 유럽에서 소수는 놀고먹으면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반면에, 다수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을 힘들게 행하면서도 가난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정의는 없고, 평등은 존재하지 않으며, 폭정만이 자리할 뿐입니다. 법적 시스템은 사회적 불평등을 합법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사회의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럽인들은 오로지 재화를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며, 개개인이 서로 물어뜯고 찢어 죽이는 식의 사악한 세계로 향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사회의 불평등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하여 불행하게 살아가게 합니다. 노동자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부역의 의무로 인하여 심신이 쇠약해 가는 반면에, 부유하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자들은 바보 같은 열정에 사로잡혀 자신의 오성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사치와 유흥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Réstif: 497).

 

13. 제 3세계 그리고 유럽 중심주의 비판: 레티프의 사회비판은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을 지닙니다. 그것은 제 3세계를 착취하려는 유럽인들의 오만에 대한 비판입니다. 지금까지 유럽 사회는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노동계층을 억압함으로써 계층 차이를 공고히 해 왔습니다. 이러한 억압과 착취는 비단 국가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은 재화를 차지하려는 유럽인들의 욕구는 결국 타 민족에 대한 억압과 살육을 어떻게 해서든 정당화시키려고 합니다. 예컨대 유럽인들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질서와 자신의 규정을 따르라고 강요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비유럽권의 문화 그리고 비유럽인들의 삶의 토대를 완전히 파괴합니다.

 

이를테면 레티프는 신대륙에서 페루를 정복한 파치로와 코르테스를 잔인한 정복자로 규정합니다. 만약 그들의 만행이 없었더라면, 버림받은 아메리카 대륙은 지금도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정복자들이 빅토린이 거주하게 되는 남쪽 섬들을 발견했더라면, 이 섬들 역시 끔찍할 정도로 황폐하게 되었으리라고 합니다. 자신의 민족에게 도덕과 정의를 가르치려는 사람은 절대로 유럽인들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레티프는 말합니다. 유럽 사람들은 자신에게 굴복한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인종들에게 재화를 강탈하려고 기를 쓴다고 합니다.

 

14. 이상 사회의 조건으로서의 만인의 평등: 그렇다면 레티프는 어떠한 규범적 토대를 통해서 기존의 썩은 유럽 사회와 정반대되는, 어떤 완전한 사회 질서를 설계하려고 할까요? 레티프의 사고는 18세기 후반에 살던 사람들의 갈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회의 특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서 자연을 언급합니다. 이러한 사고는 루소의 그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자연은 인간의 문명에 의해서 더럽혀지지 않은, 무위의 영역으로서 완전성의 척도에 가장 근친하다고 합니다. 자연은 원래의 순수함의 성스러운 도피처이며, “근원적 선함”의 총체적 개념과 같습니다. 처녀지로서의 자연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고유성을 찾을 수 있으며, 외부의 모든 강요 내지 규범을 벗어던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완전무결한 자연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최소한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습니다. 즉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들의 인간관계를 보다 완전하게 형성하기 위해서, 자연 속에서 과연 어떠한 규범적 척도를 발견할 수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자연의 핵심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사회적 측면에서 고찰할 때 만인의 평등입니다. 레티프는 “사회의 모든 악덕을 근절하는 것은 평등이다.”하고 반복해서 말합니다. (Réstif: 513). 만인의 평등은 강도, 살인자, 좀도둑 등에게 어떠한 범행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리라고 합니다. 완전한 평등 없이는 미덕도 없고, 행복도 없습니다. 완전한 평등이 없으면, 만인으로 하여금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려는 사회의 근본 목표는 결코 달성될 수 없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