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자연을 이상으로 삼는 두 개의 공동체, 크리스틴 섬과 메가페타곤: 이상 사회는 레티프에 의하면 모든 개인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시스템을 가리키는데, 그곳에서는 모두가 서로 잘 알면서 서로 필요한 존재로서 행복하게 그리고 미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이상적 공동체는 (라옹탕이 언급한 바 있는) “고결한 야생 Bon Sauvage”이라는 자연의 특성을 지닌 틀 뿐 아니라, 유토피아의 공간으로서의 어떤 엄격한 기하학적 모델을 필요로 합니다. 레티프의 경우 이상적 삶의 세계는 한편으로는 18세기의 가장 현대적인 기술과 발전된 수공업적인 능력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예컨대 문명의 동질적인 이상은 크리스틴의 섬에서는 주민들이 동일한 의복을 착용함으로써 분명하게 표현되지만, 또 다른 이상 사회인 “메가페타곤”에서는 철저한 질서에 의해서 정해진 사람들의 하루 일과 속에서 명징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레티프의 이상 사회의 상은 다른 한편으로는 시골의 전원에 합당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빅토린과 크리스틴은 섬에 도착한 다음에 아무도 등정할 수 없는 화산의 안락한 동굴 속에서 거주하면서 살아갑니다. 나중에 그들은 코린트식의 왕궁을 건축하게 하는데, 이것은 고전적 풍모를 지닌 시골의 멋진 집으로 드러납니다. 크리스틴의 섬에는 편안한 집을 축조함으로써 이곳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자랑하게 됩니다. “메가페타곤” 역시 자연에 합당한 건축물을 축조하였습니다. 새로운 이상사회로서의 메가페타곤은 사각형 내지 원형으로 구성된 도시형의 건축물을 지양하고, 시골의 면모를 그대로 도입합니다. 이곳에서는 약 100개의 가족이 거주하는데, 네 개의 구역마다 25개의 가족이 공동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6. 사유재산의 철폐: 크리스틴의 섬에서는 사유 재산은 완전히 철폐되어 있습니다. 모든 재산은 공동으로 활용됩니다. 이 조항은 공동체의 핵심적인 기본 법칙과 같습니다. 크리스틴 섬의 주민들 역시 재물을 전적으로 공평하게 나눔으로써 그들의 행복을 찾습니다. 기본법 제 4조에 의하면 재화의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이 평등의 토대라고 합니다. 제 7조는 공동체 내에서 채무라든가 사유권이 철폐되어 있다고 규정합니다. 그럼에도 각자 한 채의 집을 공급받게 됩니다. 이는 각자 공동으로 노동에 임하지만, 처자를 데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한 조처입니다. 메가페타곤에서도 공동 소유의 원칙은 통하고 있습니다. 만인은 공동체 전체의 보편적 안녕을 위하여 노동에 임하고, 수확물 내지 생산품을 공평하게 얻습니다. 메가펜타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물건을 오로지 자신의 것으로 차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적 소유물은 만인에게 이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7. 화폐 사용과 시장의 철폐: 레티프는 지금까지 전통적 유토피아에서 언급되는 것과는 반대로 화폐를 폐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시장 제도를 없앰으로써 자본의 교환 행위를 처음부터 원천봉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돈은 재화의 축적을 위한 매개체도 아니고, 물품과 교환할 수 있는 대용 가치를 지닌 것도 아닙니다. 화폐란 그저 욕망 충족을 위한 최소한의 도구로 사용될 뿐입니다. 이를테면 크리스틴 섬에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즉 개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물건들은 공동체의 경비로 지출된다는 원칙 말입니다. 금액은 노동의 가치가 아니라, 노동자 그리고 수공업자의 필요성에 따라 책정됩니다. 이를테면 여섯 아이를 지닌 노동자는 세 아이를 데리고 사는 노동자보다 두 배의 물품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식이 많아서 힘든 가계를 영위하는 가정을 돕기 위한 조처입니다. 물론 우리는 돈의 유통 내지 유통 구조에 관해서 명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공동체 내에서 물품 분매를 관장하는 기관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윤을 남겨서는 안 되며, 오로지 사람들의 개별적 욕망의 충족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18. 크리스틴의 섬에서 나타나는 농업과 수공업 위주의 경제: 레티프가 살았던 시대에는 길드라든가 조합의 체제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레티프의 작품에서는 조합의 특성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는 유럽 길드 조직의 가능성에 관한 선취의 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혹자는 다음과 같이 비판합니다. 즉 작가는 18세기 후반에 도달한 산업과 기술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농촌의 마을 공동체의 농업 분야만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18세기 후반의 어떠한 유토피아에서도 현대의 산업 사회를 선취하는 상이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레티프의 크리스틴의 섬과 메가페타곤에서는 농업과 수공업 분야에서의 생산이 전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령 크리스틴의 섬에서는 가축 사육 뿐 아니라, 정원과 농경지를 가꾸는 일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밖에 포도주 재배, 물고기를 포획할 수 있는 어망 기술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18세기 후반부에 출현한 모든 수공업 제품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19. 메가페타곤에서의 재화의 생산 조직: 재화의 생산 조직과 과정에 관해서 작가는 메가페타톤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조합에는 150세의 나이 먹은 노인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는데, 노인은 하루에 수확하거나 생산된 재화의 사분의 1을 모든 공동체 회원들에게 분배합니다. 이때 노동자의 노동력이 충분히 고려됩니다. 조합 내에서의 노동의 일감이 어떻게 나누어지는가? 하는 문제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노동의 지루함을 떨치기 위해서 조합에 속하는 노동자들은 가급적이면 자주 일감을 바꿉니다. 사람들은 아무런 간섭 없이, 작업량에 대한 부담감 없이 자발적으로 일합니다. 하루의 노동시간은 네 시간으로 정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로 오전에 일한 다음에 공동으로 식사하고, 오후에는 주로 가정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구두를 제작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바늘을 사용하는 일을 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여자들입니다. 여자들이 비교적 가벼운 일을 맡는 반면에, 남자들은 금속, 나무 그리고 암석 등과 관련된 일을 합니다. 메가페타곤의 땅에서는 국가주의의 계획 경제가 추진되지는 않지만, 마치 근대의 공산주의의 생산 조합의 경우처럼, 공동체의 모든 임원들은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뿐 아니라, 잉여 생산을 이룩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남는 재화는 외국과의 교역을 통해서 물물 교환됩니다. 이를테면 크리스틴 섬에서는 많이 생산되는 제품들은 수많은 유형의 농사 도구입니다.
20. 풍요로운 삶, 그러나 사치는 없다: 그렇다면 메가페타곤 공동체는 조합의 토대로 이루어진 경제 형태를 고수하고, 사유재산 내지 이윤 추구의 욕망을 완전히 떨치기 위해서 시장 제도를 포기하고 있는데, 과연 어떻게 이러한 구도 속에서 경제적 풍요로움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레스티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노동량을 처음부터 엄격하게 설정함으로써 공동체는 노동 자원을 거의 완전할 정도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공동체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익한 삶을 위해서 상부로부터 어떠한 명령이 없다고 하더라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모든 사람은 형제자매와 다를 바 없습니다. 형이 열심히 일하는데, 동생이 그냥 게으름을 피우며 빈둥거릴 수는 없다고 합니다. 고전적 유토피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레티프의 유토피아에서도 사치스러운 물품의 생산과 소비는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메가페타곤 사람들이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음악과 춤입니다. 음악과 춤은 이곳에서는 미덕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크리스틴의 섬에서도 사치는 금지됩니다. 제 7조항에 의하면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도 더 잘 먹고 더 잘 입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21. 수공업 기술의 장려: 주인공, 빅토린은 유럽에서 통용되던 계층 차이의 관습을 모조리 없애버렸습니다. 농업 중심의 경제 토대를 고수하면서, 그는 18세기 후반부 유럽 문명이 이룩한 과학 기술의 장치를 최대한 활용하였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자력에 의해서 선박을 제조하여, 유럽으로 보내어, 크리스틴 섬에서 구할 수 없는 물품들을 조달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수공업자라든가 특정 물품 전문가를 유럽에서 이곳으로 이주해오도록 조처했습니다. 크리스틴 섬은 태평양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빅토린은 이곳 사람들로 하여금 수공업 그리고 기술을 익히게 하였습니다. 어떤 새로운 제품을 발명하거나, 원래 제품의 기능을 향상시킨 수공업자에 한해서는 노동의 의무를 면제해주는 등의 방식으로 빅토린은 수공업 생산을 장려했습니다. 빅토린 자신이 비행 기술을 개발하여, 이곳 섬으로 비행한 사람인 것을 감안한다면, 수공업 기술 개발의 장려는 어쩌면 당연한 정책이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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