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디드로의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필자 (匹子) 2022. 7. 7. 11:40

 

디드로의 단편 소설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Ceci n’est pas un conte1773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작품은 서술자와 독자 사이의 대화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로써 작가는 서술의 진행 과정 그리고 서술 내용이라는 두 가지 차원의 현실을 복합적으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작품은 두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로써 작품은 놀랍게도 서술하는 관점과 서술되는 관점이라는 두 가지 현실적 차원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단락은 한 남자가 어느 술집 여자의 속임수에 빠져서 고통을 당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인공 타니에는 어린 시절부터 이리저리 방랑하면서 살아가는 젊은이입니다. 그는 엘사스 지방 출신의 마담인 뢰머와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그미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열정적으로 뢰머 부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미의 부탁이라면 모든 것을 마다하지 않고 들어줍니다. 더러운 일을 하라면, 시키는 대로 하고, 돈을 구해 오라면, 어떻게 해서든 그걸 마련해 옵니다.

 

뢰머 부인은 자신과 함께 살려면 거액이 있어야 한다고 타니에에게 말합니다. 이때 타니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 미국으로 떠나 그곳에서 열심히 돈을 벌리라고 결심합니다. 그 전에 주인공은 뢰머 부인에게 하나의 약속을 받아내려고 합니다. 즉 자신이 없는 동안 어떠한 다른 사내에게 눈길을 돌리지 말아야 하며, 10년 후에 결혼하는 게 바로 그 약속이었습니다. 

 

뢰머 부인은 겉으로는 그의 청을 들어주는 척 합니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거의 10년 동안 자신을 사랑하는 젊은이로부터 매달 수령하게 될 돈을 생각하니, 너무나 기뻤습니다. 타이네가 떠난 다음에 뢰머 부인은 자신의 날씬한 몸매와 아름답게 가꾼 얼굴로 뭇 사내들의 마음을 홀리곤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그미에게 남자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길손에 불과했고, 자신은 나룻배를 젓는 사공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타니에는 오랜 시간이 흘러 부자가 되어 프랑스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운 뢰머 부인의 끔찍한 탐욕을 충족시켜줄 수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미는 사랑이 아니라, 경제적 품요로움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타니에는 거액을 마련하라는 그미의 부탁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어서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이번에는 캐나다로 여행을 떠납니다. 며칠 후 그는 도중에서 열병에 걸려 객사하고 맙니다.

 

 

 

 

위대한 프랑스 작가, 철학자, 드니 디드로 (1713 - 1784)

 

소설의 두 번째 단락은 내용상으로 앞의 이야기를 뒤집은 것 같습니다. 마음씨 착한 여자는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남자로 인하여 몰락을 거듭합니다. 델라 쇼라는 처녀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어느 날 의대생 자델을 만나,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미는 편안하게 생활하던 부모의 집을 떠나, 그 남자의 품에 안기려고 합니다. 델라 쇼는 남들이 뭐라고 입방아를 찧든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명예를 포기하며 생활합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틈틈이 모았던 결혼 자금을 오로지 그를 위해 지출해버립니다. 심지어 그미는 몇 년 동안 공부를 계속하여, 취직합니다. 이는 오로지 자델로 하여금 자신의 일의 일부를 맡아서 돈을 벌게 해주기 위한 일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자델은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델라 쇼를 수수방관합니다.  

 

문제는 델라 쇼가 공부에 몰두한 나머지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서서히 상실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자델은 더 이상 델라 쇼에게 미련을 두지 않고 냉혹하게 그미를 저버립니다. 그미의 부모는 더 이상 가출한 딸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병원의 인턴으로 근무하는 자델은 더 이상 델라 쇼에게 편지 한 장 보내지 않습니다. 최소한 그미의 돈이라도 갚아야 했을 텐데, 그는 이기적으로 행동합니다. 함께 동거하면서 지출한 돈을 놓고, 헤어진 남녀끼리 돈으로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번거로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델라 쇼는 이별로 인하여 커다란 고통을 당합니다. 고통은 델라 쇼를 더욱 병들게 하였고, 근심 걱정을 안겨줍니다. 어느새 그미에게 병마가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병으로 그리고 가난으로 인해 수년 간 고통을 당하다가 델라 쇼는 어느 옥탑 방에서 유명을 달리 합니다. 유명한 의사가 되어 부자로 살아가는 자델은 그미의 부음 소식을 접하고,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디드로의 소설은 현대 단편 소설문학의 선구적인 위치를 점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이야기의 핵심적 사항만을 선택하여 이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작품은 스토리 전개 및 주제와 관련되는 집중적 특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건의 이야기는 명징하기 이를 데 없으며, 문장 내에서 어떠한 군더더기도 뒤섞여 있지 않습니다. 소설의 전개 양상은 극작품의 과정을 방불케 하며, 서술자와 독자 사이의 대화 역시 생동감 있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추측컨대 소설은 1772년에 집필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작품 속에는 실제 인물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많아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세상에 발표하기란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자델은 실존 인물인 의사, 장 밥티스트 자델 (1726 1808)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데이비드 흄의 책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델라 쇼를 냉혹하게 저버린 바 있습니다. 디드로는 델라 쇼의 질병을 치료했던 의사 카뮈를 통해서 모든 정황을 전해 들었습니다. 작품이 처음에 프랑스가 아니라, 독일에서 간행된 것은 작품으로 인하여 구설수에 오르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19세기에 이 작품의 가치를 재발견한 사람은 소설가 발자크였습니다. 발자크는 가난한 부모 Les Parents pauvres(1847) 서문에서 디드로의 소설을 격찬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