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M, 오늘은 윌리엄 모리스의 『유토피아 뉴스』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모리스의 유토피아는 미리 말씀드리건대 무정부주의에 입각한 소규모 사회주의의 공동체의 유토피아에 편입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처음부터 국가의 체제 속에서 설계된 사회주의 유토피아와는 거리감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리스는 이를테면 독일의 빌헬름 바이틀링 Wilhelm Weitling의 농촌 중심의 기독교 사회주의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데, 나중에 루돌프 슈타이너 Rudolf Steiner의 대안교육 운동이라든가 생태코뮌 운동의 영역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작품의 제목은 명실 공히 “유토피아로부터의 소식”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제목은 자구적으로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부터의 소식 News from no-where”인데, “지금 이곳으로부터의 소식 News from now-here”라고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모리스는 깊은 숙고 끝에 “최상의 곳 (Eu+ Topos)”과 “없는 곳 (U + Topos)”의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유토피아“의 진의를 그렇게 탁월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지상에서 발견되지 않은 곳은” 그 자체 유토피아를 가리킵니다.
윌리엄 모리스 (1834 – 1896)는 영국의 건축가, 시인, 화가, 기술자, 양탄자 제작자, 인쇄업자 등 다양한 직업을 지녔던 소설가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사업 실패로 인하여 직업을 바꾼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삶에서의 여러 가지 행운이 다재다능한 그로 하여금 다양한 직업을 선택하여 살도록 자극했습니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전문백치보다는, 수많은 능력을 지닌 팔방미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모리스가 작가로서보다는, 오히려 화가, 특히 다양한 미술공예운동의 선구자로 더 잘 알려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1834년 영국의 월섬스토라는 마을에서 증권회사 소개상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월섬스토는 런던 근교의 자그마한 마을이었고, 농촌의 전원적인 분위기가 온존하고 있었습니다. 1847년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모리스는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습니다. 모리스의 꿈은 처음에는 가톨릭 신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리스는 옥스퍼드 대학의 엑서터 칼리지 그리고 버밍햄의 킹 에드워드 그렘머 학교에 다닙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친구들 가운데에는 영국의 사회 사상가이자 예술 비평가로 활약할 존 러스킨 (John Ruskin, 1819 – 1900)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리스는 서서히 예술 쪽으로 관심을 기울입니다. 신앙 대신에 예술로 방향전환하게 된 계기는 아내 제인 그리고 라파엘로의 그림이었습니다. 모리스는 1859년 제인 버든이라는 미녀와 결혼했는데, 제인은 1871년부터 화가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와 염문에 휩싸일 때까지 모리스에게 놀라운 예술적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모리스는 1861년부터 수공업을 위주로 하는 회사를 만들어서 그곳에서 유리 제품, 가구 그리고 실내 장식의 제품들을 생산하여 판매하였습니다. 사업 동료들이 하나씩 회사를 떠났지만, 모리스는 평생 회사 일에 참가했습니다. 1878년부터 그는 양탄자 제조업에 뛰어들어서, 오로지 수제 양탄자를 생산해냅니다. 사업이 안정적으로 영위되자 그는 역사적 건물을 보존하는 일 그리고 정치 등에 서서히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그의 노력은 1877년에 역사 건축의 보존 협회의 창립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모르시는 사회주의의 서클에 가담하여 사람들과 교우하였는데, 『유토피아 뉴스』는 바로 이러한 토론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의 삶을 한마디로 요악하자면 19세기 영국의 농촌에서 보낸 고풍스럽고 안온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의 대표작 『유토피아 뉴스, 혹은 휴식의 시대. 어느 낭만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소설의 몇 개의 단락듫. News from Nowhere, or an Epoch of Rest, Being Some Chapters from a Utopian Romance』는 사회유토피아를 담은 소설인데, 1890년에 발표되었습니다. 19세기 말에 모리스는 정치에 열정적으로 관여하였습니다. 사회주의 서클의 임원으로서 그는 기계가 모든 것을 장악한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적 상황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셈입니다. 모리스는 당시의 세 가지 사회적 경향을 무엇보다도 혐오하였습니다. 1. 서서히 파괴되는 환경, 2. 황량한 도시로 변모되는 시골, 3. 오로지 소비 욕구에 의해서 평가되는 예술 작품들. 게다가 모리스는 노동의 분화 내지 분업을 가장 혐오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분업은 노동자의 몸에 기계의 멍에를 씌우며, 기계보다 더 나은 생산 효과를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분업이 도입된 뒤부터 인간은 점점 부자유스러운 삶을 누리게 되고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서서히 소외되어 왔습니다. 모리스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품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인간은 오로지 자유로울 때 비로소 예술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만약 이상적인 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면, 인간 삶은 더욱더 풍요롭게 되고 개별적인 인간은 자발적으로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무언가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리스는 자신의 생각을 프랑스 혁명의 슬로건과 접목시킵니다. 이상적인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동지애”로부터, “평등”을 거쳐서 결국 “자유”로 향하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리스의 작품 『유토피아 뉴스』는 바로 이러한 분제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가상적인 국가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모리스의 아내 제인 버든
작품의 배경은 19세기 말의 영국입니다. 전지적인 화자가 등장하여, 자신의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친구는 자신의 동료 윌리엄 게스트의 경험을 들려줍니다. 윌리엄은 22세기에 해당하는 아주 먼 미래에서 며칠을 보냈다고 합니다. “윌리엄”은 작가의 이름과 동일하며, “게스트”는 손님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를 고려할 때 윌리엄 게스트는 작가의 분신이며, 동시에 미래 사회를 잠시 발문하는 손님의 의미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제 2장부터 “친구”는 주인공 “나”로 등장하여 윌리엄의 체험담을 하나씩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로지 자신만이 동료의 감정과 갈망을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개인의 체험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게 함으로써 작가 모리스는 동지애의 협동성을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자신의 사회주의적인 유토피아가 폭넓게 확장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습니다.
윌리엄 게스트는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주의 서클에서 친구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인 다음에 밤늦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전차 정류장의 악취와 더러움에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주위환경의 개선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다음날 아침에 목욕을 끝내고 바깥의 템스 강을 바라보니, 놀랍게도 강이 너무나 깨끗하게 변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처해 있는 곳은 미래 영국의 평화롭고도 전원적인 현실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개한 에덴동산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대도시 런던은 중세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새롭게 받아들여서 고색창연한 느낌을 불러일으켰으며, 거리의 사람들은 깨끗한 옷을 걸치고 활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순진무구한 아이들처럼 웃음을 머금으면서 자신이 행하는 일에 만족을 느끼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일감은 주로 두 손을 놀려서, 농사와 건축에 몰두하거나 그릇을 제조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듯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애착에 따라 수작업에 몰두하면서, 그다지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예술적 개성이 발휘된 생산품들을 천천히 만들어내어, 이웃에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물품의 조달은 이웃들이 필요한 만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기계로 만들어진 제품들, 불필요한 사치성 물품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고, 상품을 광고하는 일 역시 더 이상 행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기존의 지폐가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며, 무한정의 팽창을 도모하는 시장 경제 체제가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시장은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는 판매인과 더 싸게 물품을 구입하려는 구매인 사이에 진정한 인간관계를 형성시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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