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근대영문헌

서로박: (1)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필자 (匹子) 2023. 5. 20. 11:50

1. 토머스 모어와 마키아벨리 그리고 에라스뮈스: 친애하는 J, 오늘은 토머스 모어 (Thomas Morus, 1477/78 - 1535)의 『유토피아』에 관해서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이 책은 국가에 관한 철학적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작품은 1516년 간행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훌륭한 국가의 법과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한 정말로 멋진, 일시적이라기보다는 어떤 구원을 담은 소책자 Libellus vere aureus nec salutaris quam festivus de optimo republicae statu deque nova insula Utopia.” 16세기 유럽은 정신사적으로 고찰할 때 전환과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이를테면 바로 이 시기에 훌륭한 문헌들이 속출하였지요. 예컨대 마키아벨리 Machiavelli는 『군주론 IL principe』(1513)을 집필하였으며, 에라스뮈스 Erasmus는 당시의 카를 5세를 염두에 두면서『기독교 제후의 교육 Institutio principi christiani』(1516)을 집필 발표하였습니다. 에라스뮈스의 작품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정반대되는 관점에서 모든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설령 군주의 속성이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대로 사악하고 교활한 것이라 하더라도, 기독교 제후는 에라스뮈스의 견해에 의하면 사랑과 관용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토마스 모어의 초상화 

 

2.『유토피아』의 등장인물 히틀로데우스: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도덕과 정치가 어떻게 상호 작용하며, 과연 어떠한 목적으로 기능해야 하는 것을 설파하였습니다. 그는 이 책을 앤트워프에서 서기로 일하던 친구 페트루스 아에기디우스 Petrus Aegidius 에게 헌정한 바 있습니다. 모어의 작품은 처음부터 교육적 논문의 틀을 갖추고 있지는 않으며, 수사학적으로 고찰하자면 오히려 풍자 내지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는 대화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풍자와 비판은 작가의 놀랍고도 독창적인 상상력에 의한 것이지요. (이를테면 나중에 브록하우스라는 학자는 『유토피아』 제 2권의 저자가 토마스 모어가 아니라, 에라스뮈스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렇다고 『유토피아』의 모든 내용이 마구잡이로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의 어느 외교관이자 장관이 등장하여 포르투갈 출신의 선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선원의 이름은 라파엘 히틀로데우스 Raphael Hythlodeus라고 하는데, 언젠가 아메리고 베스풋치 Amerigo Vespucci와 함께 세상을 떠돌아다닌 적이 있는 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영국의 그 외교관은 앤트워프에 있는 유흥가에서 우연히 라파엘 히틀로데우스를 만나 여러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포르투갈 선원의 이야기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루어으므로, 그게 실제 사실인지 아니면 어느 휴머니스트의 상상에서 비롯한 철학적 가설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3.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의 문헌들: 친애하는 J, 작품 『유토피아』는 유토피아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문헌에 해당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더 나은 국가를 묘사한 책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전의 문헌들은 주어진 현실을 참조하지 않은 채 무작정 공상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를테면 플라톤 Platon은 현재 미완성 단편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작품 「크리티아스 Κριτίας」에서 대서양의 어떤 전설적인 섬, 아틀란티스에 관해서 암시했는데, 이것은 이미 『국가 Ρολιτεια』에서 다루어진 바 있습니다. 플라톤의 이러한 상상은 나중에 성 아우구스티누스 St. Augustin의 『신국론 De civitate Dei』에서 기독교적으로 변형된 상으로 훌륭하게 기술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틀란티스에 대한 고대인들의 상상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서 성서의 종말론과 접목되어, 역사철학적 최후의 공간에 관한 가상적인 상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이러한 문헌에 비해서 모어의 『유토피아』는 16세기 초 영국의 구체적 현실을 간접적으로 고려한 가상적 사회 유토피아라는 점에서 이전의 문헌들과 분명히 구별됩니다. 

 

4. “유토피아” 그리고 “히틀로데우스”의 어원 속에 담긴 모순점: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든 사항이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 견문을 넓힌 라파엘 히틀로데우스에 의해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이름 자체 속에 놀라운 사실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즉 “라파엘”은 히브리어로 신의 구원을 지칭하는데, 여행자의 수호자이자 구원을 알리는 자로 간주됩니다. “히틀로데우스”는 한편으로는 지어낸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들려주는 이야기꾼이라는 뜻을 지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시대의 재담가를 비아냥거리는 현자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의 모순된 사항으로서, “유토피아”라는 단어 속의 중의적 의미와 묘하게 일치되고 있습니다. 유토피아는 한편으로는 “훌륭한 장소 eu + topie”라면, 다른 한편으로는 “없는 장소 u + topie”를 가리키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모어는 세인들로부터의 비난과 오해를 사전에 차단시킬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d Brecht는 「진리를 기술하는 데 있어서의 다섯 가지의 어려움 Fünf Schwierigkeiten beim Schreiben der Wahrheit」에서 토마스 모어의 이러한 처사를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술수 List”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5. 모든 사회적 죄악은 사유재산제도에서 비롯한다.: 친애하는 J, 작품의 화자의 역할을 어느 정도 짐작하시겠지요? 히틀로데우스는 추기경이자 대영제국의 수상인 존 모턴 (John Morton, 1420 - 1500)과 대화를 나눕니다. 이때 그는 현재 영국의 비참한 사회적 상황 및 기독교 사제들의 몰락에 관해서 무지막지하게 비판하지 않습니다. 히틀로데우스에 의하면 엄격한 보복을 주장한 바 있는 드라콘 Drakon의 법 내지 사형 법은 더 이상 인민에게 범법 행위에 대한 위협 내지 경종으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국가는 사람들에게 극형의 위협을 가할 게 아니라, 우선 사회 시스템 속에 도사리고 있는 끔찍한 처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끔찍한 살인사건의 수는 현저하게 줄어들게 되리라는 게 히틀로데우스의 지론입니다. 빈부차이가 심화되고, 하층민의 경제적 상황이 극한에 도달했기 때문에, 하층민들은 무장 강도로 돌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히틀로데우스는 빈부 차이가 온존하는 사회적 상황을 비교하면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지적합니다. 즉 재화의 분배 정책에 있어서 결정적인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사유재산제도라는 것입니다.

 

6. 히틀로데우스의 태도 속에 담긴 전략: 친애하는 J, 작품에 관해 언급하기 전에 화자의 서술 방식에 관해서 약술하려고 합니다. 히틀로데우스는 대화의 상대자를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체념의 자세로 모든 것을 수수방관하는 태도 역시 취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형법의 실행과 관련하여 마치 플라톤처럼 철학자가 국가를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이는 한편으로는 국경 확장의 원칙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재정과 내부 문제 때문에 관철되기 무척 어렵습니다. 유토피아의 이웃에 해당하는 아호리 사람들 (바다에 떠도는 자들) 그리고 마카렌 (다른 섬의 사람들)에 관한 비유는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참담한 상황에 처한 유럽의 국가들을 유추하게 합니다. 주어진 시대가 사람들을 힘들게 하더라도 히틀로데우스는 모든 것을 패배적으로 체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무시하며 이상주의의 태도로 무작정 달리 생각하는 자들을 강압적으로 설득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그는 인내심을 지닌 채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설명해 나갑니다.

 

 

 

 

 

1518년 암브로시우스 홀바인이 그린 삽화 

 

 

7. 인간 이성의 근본을 반영한 이상 국가: 유토피아라는 섬은 어떤 가상적인 국가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작품은 조아키노 다 피오리 Joachim di Fiore의 「여러 가지 상징의 책 Liber figurarum」에서 묘사된 천년왕국의 미래 구상과 같은 입장 내지 인간의 자세 등을 추상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또한 작품은 로저 베이컨 Roger Bacon이 『거대한 작품 Opus maius』에서 다른 바 있는 놀라운 영혼의 울림 또한 독자에게 전하지도 않습니다. 『유토피아』는 어떤 국가적 모델이 될 수 있는 구체적 역사의 현실을 세밀하게 다루고 있는데, 모든 것들은 가상적 아이러니와 풍자라는 거울의 상을 통해서 투영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J, 우리는 여기서 유토피아의 특성을 다시 고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최상의 장소Eutopie”와 “없는 장소 Utopie”는 영어로는 구분되지 않는 표현으로서 한편으로는 어떤 모범적 범례로 작용하는 보편적 현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상적으로 꾸며낸 “없는 장소”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천국에 대한 기억으로서 떠올린, 이른바 황금의 시대라는 고대의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유토피아는 어떤 의미심장한 계획으로 이루어진 도시 국가에 대한 미래지향적 관조과 관계되고 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바람직한 국가의 설계상은 어쩌면 인간 이성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