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9

서로박: 쥘리앵 그린의 "표류물" (2)

7. 상호 의존적 인간 그리고 사랑으로 향하는 방랑: 필리프는 자신의 권태를 달래기 위해서 자주 영화관을 찾는데, 이러한 장면 역시 주인공의 지루한 비극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지루함은 필리프의 경우 존재론적 차원에서의 어떤 불안과 연결됩니다. 필리프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사적인 사랑의 삶에서 실패한 인간으로 나타납니다. 주인공에게는 자신의 절망을 파악하고 이해해주는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필리프는 아들에게 집착하게 됩니다. 두 남자는 이런 식으로 제각기 위태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아버지의 무기력함은 아들의 존재라는 무의미한 받침대에 지탱하게 되고, 아들의 무의지는 편안함을 보장해주는 아버지의 재산에 의해 수동적으로 채워진다고 할까요? 엘리안은 집을 뛰쳐나..

33 현대불문헌 2023.02.17

서로박: 릴케 파스테르나크 츠베타예바

릴케의 초상화 “아무도 펼치지 않았고, 지금도 외면당하는 잡지 속에 먼지 묻은 채 자리하고 있는 아무도 읽지 않는 나의 시구를 위한 마치 묵은 포도주와 같은 나의 시구를 위한 시대는 반드시 도래할 것이다.” (마리나 츠베타예바) 당신은 오늘 수업시간에 릴케에 관해 발표하였습니다.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며, 앞으로의 공부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사항을 언급하려고 합니다. 자고로 위대한 예술가들은 대부분 주위로부터 외면당하며 비참하게 살아갑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불행하게 살아가게 만들까요? 운명의 신이 후세에 나타날 시인의 커다란 명성을 질투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들이 특정한 시대정신을 예리하게 간파하는 촉수를 지니기 때문일까요? 어쨌든 모든 예술가는 게오르크 뷔히너 Georg Büchner가 말한..

22 외국시 2022.09.18

서로박: 톨스토이의 부활

러시아의 문호 레오 톨스토이 (1828 – 1910)의 "부활"은 1889년에서 1899년 사이에 집필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집필된 “노작 勞作”이지요. 안나 카레니나가 발표된 지 꼭 20년 만에 간행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톨스토이의 가장 유명한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맨 처음 발표된 시기는 1899년이었는데, 일부의 작품이 검열에 의해서 삭제되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거대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작품 집필의 계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887년 친구로부터 어느 법정의 기이한 판결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톨스토이는 이를 소재로 하여 거의 10년 동안 집필에 매달렸습니다. 소설은 1880년대 말의 어느 해 4월 28일부터 ..

31 동구러문헌 2022.04.09

서로박: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 (1)

1. 사랑과 성, 그 불일치의 일치성: 친애하는 T, 인생에서 연정 그리고 성처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연정 그리고 성이 만약 두 개의 서로 다른 악기라면, 그것들의 연주는 대체로 불협화음으로 울려 퍼지게 될까요? 과연 연정과 성이 제각기 독자적으로 기능한다고 이해해도 되는 것일까요? 흔히 사람들은 사랑 없는 섹스를 방종한 육체적 놀음으로 여기고, 섹스 없는 사랑을 플라토닉 러브라고 간주하곤 합니다. 어쩌면 인간은 남녀의 짝짓기에 대해서 동물과는 다른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인간은 사랑과 성이라는 두 개의 동일한 (?) 악기에 대해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요? 확실한 것은 섹스 없는 사랑이 추상적이고 공허하다면, 사랑 없는 섹스가 작위적이고 ..

31 동구러문헌 2021.12.26

서로박: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2)

친애하는 J, 일반 사람들은 헛소문을 퍼뜨리기를 좋아합니다. 브론스키는 바람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안나를 저버리고 어떤 다른 새로운 여자와 엽색행각을 벌인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안나는 모든 것을 거짓으로 간주했으나, 나중에는 심각한 피해망상증에 시달립니다. 나중에 주인공은 의부증에 시달리면서 브론스키와 자주 언쟁을 벌입니다. 결국 안나 카레니나가 겪어야 하는 것은 소외감, 쓰라린 질투와 증오심 그리고 더 이상 희망할 수 없는 상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미는 지금까지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살고 올곧은 마음으로 한 남자를 사랑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주인공은 자신의 존재가 영혼의 고통을 느끼면서 감옥에서 살아가는 수인 (囚人)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기에..

31 동구러문헌 2021.08.08

서로박: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1)

친애하는 J, 오늘은 당신에게 레오 톨스토이 (1828 - 1910)의 장편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수많은 작가 그리고 예술가들이 지금까지 간행된 최고의 연애 소설로서 『안나 카레니나』를 손꼽았습니다. 소설은 1875년에서 1877년 사이에 집필되었고, 1878년 책으로 간행되었습니다. 그 전에 발표된 두 번째의 장편 소설 『전쟁과 평화』 (1868 - 1869)에서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찬란한 과거로부터 등을 돌리고, 1870년경의 현재 현실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작가는 언젠가 안나 카레니나의 가족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톨스토이에 의하면 -비록 상류층에 속하지만- 러시아 인민의 사상 감정을 진솔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

31 동구러문헌 2021.08.08

서로박: 안나 제거스의 기이한 만남

안나 제거스 (A. Seghers, 1900 - 1983)의 단편 모음집, "기이한 만남 (Sonderbare Begegnungen)"은 1973년에 간행되었다. 이 작품 속에는 세 편의 단편, 「지상에 없는 존재에 관한 전설들」 (1970), 「약속 지점」 (1971), 「여행의 만남」 (1972)이 중요 작품에 해당한다. 제거스는 이 작품집을 통하여, 독자에게 예술이 일상 현실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가를 말하려고 하였다. 그미는 상상적 요소를 추적하면서, 오래 전부터 자신이 견지해온 창작 의향을 실현시키려고 하였다. “오늘날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사실을 서술하는 일 그리고 여기에 동화적인 색채를 부여하는 일 - 나는 소설 속에서 무엇보다도 그것을 합치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지상에 없는 존재에 관한..

45 동독문학 2021.07.14

서로박: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1)

최근에 영화 “더 리더 The Reader”가 개봉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책에 관해 언급하려고 합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 Bernhard Schlink는 1944년 빌레펠트에서 태어나 하이델베르크 그리고 베를린 등지에서 법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는 1981년 헌법에 관한 교수 자격논문을 쓴 뒤, 본 대학교수로서 헌법학 그리고 행정법 등을 가르쳤습니다. 슐링크는 어린 시절부터 작가, 혹은 사회학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아버지처럼 신학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습니다. 즉 어릴 때부터 문장 쓰기에 대해 애착을 지녔지만, 순수 전업 작가보다는 법학 교수의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말입니다. “문장에 대한 애착”은 결국 “이야기에 대한 애착”으로 변모했..

44 20후독문헌 2019.06.03

노벨 문학상, 혹은 요구르트 Alles Mueller oder was?

친애하는 J, 200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서 루마니아 출신의 소설가 헤르타 뮐러가 선정되었습니다. 뮐러는 흔한 이름입니다. 나는 뮐러라는 이름을 들으면, 독일에서 즐겨 먹던 요구르트가 생각납니다. 노밸상의 수상작은 "Atemschaukel" 이라고 합니다. 이는 직역하자면 "호흡 그네", "(그네처럼) 흔들리는 호흡"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소련 강제 수용소에서의 각박한 삶의 체험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수많은 루마니아 독일인들이 소련으로 끌려가서 고초를 당했습니다. 왜냐하면 루마니아에는 그곳 출신의 독일인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소련 군인들은 그곳의 독일인들이 과거에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모조리 잡아다가 감옥으로 보내곤 하였습니다. 50년대 초반에는 수많은 루마니아 출신의 독일인들이 소련의..

2 나의 글 2019.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