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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2)

필자 (匹子) 2021. 8. 8. 09:29

친애하는 J, 일반 사람들은 헛소문을 퍼뜨리기를 좋아합니다. 브론스키는 바람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안나를 저버리고 어떤 다른 새로운 여자와 엽색행각을 벌인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안나는 모든 것을 거짓으로 간주했으나, 나중에는 심각한 피해망상증에 시달립니다. 나중에 주인공은 의부증에 시달리면서 브론스키와 자주 언쟁을 벌입니다. 결국 안나 카레니나가 겪어야 하는 것은 소외감, 쓰라린 질투와 증오심 그리고 더 이상 희망할 수 없는 상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미는 지금까지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살고 올곧은 마음으로 한 남자를 사랑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주인공은 자신의 존재가 영혼의 고통을 느끼면서 감옥에서 살아가는 수인 (囚人)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기에 그미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불안, 현혹, 근심 그리고 사악함으로 가득 찬, 그미의 삶의 책을 다 읽은 후 촛불을 끄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친애하는 J, 안나의 심경을 전적으로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안나 카레니나는 한 번 결혼에 실패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미는 “한 번 실수는 있어도 두 번의 실수는 있을 수 없다.”고 다짐하곤 하였습니다. 안나는 브론스키를 처음부터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주위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바람둥이로 단정하였고, 안나 역시 나중에는 거짓된 흑색선전을 하나의 사실로 믿게 됩니다. 이게 비극이라면 비극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브론스키가 어머니의 집에 머물고 있을 때, 안나는 10시 경에 어느 역에서 도착하는 기차에 몸을 던져 한 많은 삶을 마감합니다. 절망에 빠진 브론스키는 살아가야 할 이유를 상실하고 전쟁에 참가합니다. 당시는 세르비아와 터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한 직후였습니다.

 

안나는 불쌍한 희생자입니다. 안나를 둘러싼 두 명의 남자, 카레닌 그리고 브론스키는 제각기 훌륭한 인품과 고매한 지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남편 카레닌은 고상한 사고를 지니고 있으며, 예의 바릅니다. 그러나 그는 감정의 영역에 있어서는 냉담하고 차가우며, 타인에 대해서 완전히 경직되어 있습니다. 끔찍한 자살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는 이를 그저 유감으로 생각하지만, 죽은 안나에 대해 추호의 동정심도 표하지 않습니다.

 

브론스키는 남성적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가상 세계의 노예로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는 안나와 성 관계를 맺으면서, 사랑의 열정 혹은 (그리고?) 동물적 욕정을 달래곤 합니다. 처음에 그는 장교의 경력에 흠집이 날까봐 안나가 이혼한 뒤에 자신과 결혼하는 것을 애타게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브론스키는 어째서 안나가 그토록 힘든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싸우려 하는지 절실하게 깨닫지 못합니다. 그는 다만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 살을 섞고, 헤어지는, 그러한 내연 관계를 고수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렇기에 브론스키는 다만 가상의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감정만을 채워줄 수 있는 남성적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그가 주인공의 고독한 영혼을 달래주고, 주인공의 처지를 완전히 극복하게 해준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안나를 둘러싼 얽힌 자들의 비극적인 관계를 작품의 모토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복수는 나의 것이다. 나는 반드시 보복하리라.” 톨스토이는 이를 쇼펜하우어 Schopenhauer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차용하였습니다. 이는 사필귀정 (事必歸正)이라는 톨스토이의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순수한 안나가 추구하는 행복에 대한 열정은 결국 주어진 고루한 사회적 관습에 의해 패배를 선언하고 맙니다. 그렇지만 톨스토이는 안나의 사랑을 용인하지 않는 고루한 사회적 관습이 반드시 징벌 당하게 되리라고 처음부터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키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미는 자신의 심리적 상처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언니 집에 머물면서 조카들과 함께 생활합니다. 그미의 언니인 돌리는 남편 스티바와 화해한 뒤에 시골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키티가 모스크바에 잠시 체류할 때 레빈이 찾아와서 키티에게 다시 한 번 정식으로 청혼합니다. 이때 키티는 즐거운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입니다. 결국 레빈과 키티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다가 아기를 낳습니다.

 

레빈 역시 안나처럼 자연스럽고, 적극적이며 고뇌할 줄 아는 인물입니다. 레빈은 무언가를 찾고 인식하려고 하며, 삶의 참뜻을 발견하려고 깊이 사고한다는 점에서 작가 톨스토이를 많이 닮았습니다. 레빈은 자연스럽고도 진정한 인간 삶의 이상을 시골에서의 평화로운 삶에서 발견합니다. 자연과 영원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러시아 농부들의 삶은 도덕적 자기 완전성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레빈은 키티 스케르바카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미와 결혼합니다. 물론 레빈과 키티는 서로 자식을 낳는데, 이는 톨스토이에 의하면 행복한 결혼의 궁극적인 성취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는 약간 진부하기는 하나, 안나의 불행과 대조되는 병렬적 스토리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브론스키는 안나가 자살한 뒤 터키에 대항하는 전쟁에 자원입대하여 죽으려고 합니다. 이에 비하면 레빈의 삶은 계속 이어지지요. 한마디로 『안나 카레니나』의 작가는 가정의 행복 그리고 도덕적 삶의 목표에 대해 그저 부분적인 해답을 제시한 셈입니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수많은 주변 인물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러시아의 살롱, 경마장, 가면무도회, 극장, 귀족의 홀 등의 배경을 자세히 접하게 됩니다. 이러한 주변 묘사는 소설 속의 스토리 진행 과정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소설 속의 문제점을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소설 속의 상이 지닌 상징성입니다. 안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는 동안 펑펑 쏟아지는 눈보라와 마주칩니다. 바로 이 순간 브론스키는 경마 경기에서 낙마 (落馬)하여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이는 소설 속의 여주인공의 운명 속의 어떤 중요한 전환점을 암시하는 그러한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쇠를 다루는 기이하게 생긴 난쟁이에 관한 꿈은 나중에 나타날 철도 사고에 대한 예견 내지는 암시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