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서로박: 톨스토이의 부활

필자 (匹子) 2022. 4. 9. 09:08

러시아의 문호 레오 톨스토이 (1828 – 1910)의 "부활"은 1889년에서 1899년 사이에 집필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집필된 “노작 勞作”이지요. 안나 카레니나가 발표된 지 꼭 20년 만에 간행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톨스토이의 가장 유명한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맨 처음 발표된 시기는 1899년이었는데, 일부의 작품이 검열에 의해서 삭제되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거대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작품 집필의 계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887년 친구로부터 어느 법정의 기이한 판결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톨스토이는 이를 소재로 하여 거의 10년 동안 집필에 매달렸습니다.

 

소설은 1880년대 말의 어느 해 4월 28일부터 9월까지의 일어난 사건을 줄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30세를 갓 넘긴 귀족, 네글루도프는 배심원으로 선출되어, 법정에 참석합니다. 27세의 창녀, 마슬로바가 어느 남자를 독살시켰다는 죄목으로 법원의 피고석에 앉아 있습니다. 주인공은 순간적으로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마슬로바는 어린 시절에 사귀었던 주인공의 여자 친구였습니다. 8년 전에 그는 이모 소유의 농장에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농장에서 살아가는 처녀 한 명이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슬로바라는 이름을 지닌, 소작농의 딸이었는데, 살결이 너무 희고,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야밤에 그미를 불러내어서 함께 춤추면서 즐깁니다. 그날은 바로 부활절 축제가 거행되던 밤이었습니다. 선남선녀가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지내면, 자연스럽게 키스와 포옹 그리고 동침이 이어지곤 합니다. 이때 네글루도프는 격정적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처녀의 육체를 범하고 맙니다. 경험이 없는 마슬로바로서는 분위기에 이끌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고상하게 생긴 청년에게 몸을 맡기게 된 것이었습니다. 자정이 지날 무렵 그는 더 이상 그미를 거들떠보지 않은 채 사라집니다.

 

사랑에 취한 채 마슬로바는 어느 농장의 헛간에서 정신을 잃고 있었습니다. 새벽이 되어 주위를 바라보니, 자신의 몸을 탐하며 황홀해 하던 사내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새벽이 되어야 비로소 그미는 벗어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안이 벌컥 뒤집어졌습니다. 옷은 거의 찢어져 있었고, 옷과 몸에 흙과 먼지가 흠뻑 묻어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다른 사내와 살을 섞은 마슬로바를 단죄합니다. 낯선 사내에게 몸을 맡긴, 순결을 잃은 처녀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미는 심지어 부모와 형제자매로부터 외면당하게 됩니다. 가부장 사회는 버림받은 처녀로부터 행복한 삶의 가능성을 완전히 빼앗아갑니다. 가부장주의가 만연해 있는 시민 사회는 젊은 처녀에게 어떠한 갱생의 기회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미는 호구지책으로 술집에서 일해야 합니다. 마슬로바가 끝내 당도한 곳은 바로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홍등가였습니다. 결국 그미는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하여 가출해야 했고, 술집을 전전하다가 끝내는 창녀로 살아가게 됩니다.

 

마슬로바는 피고석에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습니다. 사실 그미는 홍등가에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그미에게 살인의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진범은 잡히지 않고, 마슬로바는 법정에서 4년의 강제 노동을 선고 받습니다. 네글루도프는 이러한 판결을 접하고 참혹한 마음을 떨치지 못합니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그미가 신세를 망쳤다고 여겨졌던 것입니다. 자신의 과거의 행동이 한 여성을 불행의 구렁덩이로 빠지게 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이후 그는 마슬로바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미의 무죄는 주인공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밝혀지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고뇌하는 네글루도프에게 갱생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자신의 죄를 참회하기 위하여, 그미를 따라 시베리아로 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누렸던 모든 부귀영화를 저버립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농부들에게 나누어줍니다. 그리하여 네글루도프는 지위와 명예 그리고 부를 저버린 채 시베리아로 떠납니다.

 

마슬로바가 시베리아에 도착했을 때 그미는 운좋게도 강제 노동으로부터 사면 받게 됩니다. 그미는 시베리아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몇 년 후에 그미는 죄를 씻게 되어 다른 사람과 얼마든지 결혼할 수 있게 됩니다. 네글루도프는 그미를 찾아가서 자신의 애타는 마음을 전하면서 프로포즈합니다. 그러나 마슬로바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치적 이유로 처벌당한 시몬손이라는 남자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물론 마슬로바가 네글루도프를 마음에 두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미는 오래 전부터 주인공에게 연정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슬로바는 다른 남자와 결혼식을 거행합니다. 이를테면 시몬손과의 결혼을 통하여 억압당하는 한 인간을 구원해줄 수 있다는 게 마슬로바의 판단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네글루도프와의 결합은 개인적 사적 차원의 행복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미의 선택이 어리석은 것인지 아닌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소설이 끝납니다.

 

주지하다시피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원의 역사 속의 핵심적 내용으로서 동유럽 지역에서는 가장 성스러운 부활절 축제를 거행하게 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러시아 정교가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가를 생각해 보세요. 부활은 기독교 신앙에서는 어떤 기적을 통해서 출현한다고 합니다. 그밖에 기적의 이야기는 주로 신약 성서에 등장합니다. 톨스토이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기적의 이야기를 오히려 기독교인들의 고유한 신앙심을 약화시키게 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몇 개의 빵이 담긴 광주리로 수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다든가, 앉은뱅이가 예수의 말씀으로 벌떡 일어서서 걸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현실성이 없는 황당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사실 성서에 묘사되는 기적에 관한 일화들은 근본적으로 고찰할 때 구원 자체가 아니라, 구원에 대한 하나의 비유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기적의 함의를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톨스토이는 기적과 부활을 로마 가톨릭 교회와는 달리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탄생은 톨스토이에 의하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라, 한 인간 영혼의 깨달음으로 인한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고려할 때 작품 "부활"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전통적으로 전하는 이른바 신화적 부활의 의미를 무시하고, 자신의 탈신화적인 고유한 입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부활은 톨스토이에 의하면 죽음 이후 저편의 세상에 자리하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부활은 한 인간의 내면에서 정신적 원칙이 육체적 열망을 극복하게 되는 것을 내용으로 합니다. 이를테면 권력 추구 내지 금력 추구 등을 스스로 포기하는 자는 새로이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부활이 새로운 변혁의 시작이라고 이해한 에른스트 블로흐의 사고와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속적인 인간이 자신의 헛된 육체적 욕망, 권력욕 그리고 금력욕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합니다. 신의 이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신은 그 인간의 양심에 부활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전해준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소설의 두 주인공은 이러한 경우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네글루도프의 경우 부활은 마슬로바를 바라보는 순간 불현듯 찾아옵니다. 한 인간이 어떤 놀라운 계기로 인하여 과거의 삶을 저버리고 새롭게 갱생하여 살아간다는 결정 자체가 부활의 순간입니다. 부활의 순간은 처음에 주인공에게 극도의 고통 그리고 후회로 인한 번민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부활은 이후에 이르면 한 인간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완전히 변화시켜줍니다. 이를테면 네글루도프는 자신의 재물 그리고 성적 욕구를 모조리 포기합니다. 네글루도프는 자신의 모든 노력을 다하여 마슬로바에게 부활의 계기를 전해줍니다.

 

이는 마슬로바에 입장에서 볼 때 처음에는 당혹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정신적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장본인이 다시 사랑하는 임의 마음에 정신적 부활의 불을 피우려고 하니까요. 그러나 나중에 그미는 네글루도프의 본심을 깊이 이해합니다. 마지막 대목에서 마슬로바는 도덕적 에너지에 대한 사랑의 측면에 있어서 네글루도프보다 더 숭고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마슬로바는 시몬손과의 결혼을 통해서 절망에 빠진 선량한 정치범 한 사람을 구원해줍니다.

 

톨스토이에게 종교적 도덕적 테마는 종교와 도덕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러시아가 처하고 있는 사회 현상에 대한 톨스토이의 비판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국가, 조직 그리고 공무원 등을 노동하는 계급을 착취하는 족속들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군대, 국가 조직, 교회 등은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전체주의적 기관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비판은 무엇보다도 법원 그리고 형법의 집행으로 향합니다. 형사 소송의 과정에서 수많은 민초들은 권력 국가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권력자들은 얼마나 수월하게 법망을 빠져나오는지요? 작품 속에 실려 있는 수많은 에피소드, 전기 그리고 성찰 등은 당시 러시아 사회 내의 법 집행의 불법성을 지적하고, 형사 소송의 법 집행에 있어서 나타나는 비인간적 처사들을 처절할 정도로 완강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톨스토이가 추구한 아나키즘의 세계관에 바탕을 둔 기독교적 인간 삶의 존엄성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시 법과 법집행에 관한 작가의 비판을 고찰해봅시다. 톨스토이의 비판은 더욱 깊은 곳으로 향합니다. 구금 형이란 톨스토이에 의하면 범죄를 예방하는 수단이 될 수 없고, 범죄를 더욱 부채질하는 형벌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작가는 감옥의 존재를 지극히 저주합니다. DMZ와 같은 장벽이 인간 삶의 장소를 구속하는 것이라면, 통행 금지 제도 내지 감옥은 인간 삶의 시간을 구속하는 무엇이 아닌가요? 예수의 이름하에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마음대로 심판하는 것은 톨스토이에 의하면 결코 정의롭지 못합니다. 오로지 야훼 신만이 인간의 근본적인 죄악을 처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견해를 사회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소설이라는 장르를 선택하였습니다. 그가 소설 집필을 위해서 수많은 보고서, 법률 서적을 참고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소설은 오로지 윤리적 사회 비판적 경향 때문에 가치를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톨스토이는 세밀한 심리 분석, 생기 넘치는 언어, 작품 내용에 대한 작가의 열정적인 입장 표명 등으로 독자를 감동시킵니다. 흔히 말하기를 소설가가 집필 시에 전지적 (全知的) 태도를 취하면, 소설은 재미없을 뿐더러, 독자를 은근히 권위적으로 억압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적어도 톨스토이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인간에 대한 절실한 애정과 이해가 톨스토이 문학의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