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안나 제거스의 기이한 만남

필자 (匹子) 2021. 7. 14. 11:24

 

안나 제거스 (A. Seghers, 1900 - 1983)의 단편 모음집, "기이한 만남 (Sonderbare Begegnungen)"은 1973년에 간행되었다. 이 작품 속에는 세 편의 단편, 「지상에 없는 존재에 관한 전설들」 (1970), 「약속 지점」 (1971), 「여행의 만남」 (1972)이 중요 작품에 해당한다. 제거스는 이 작품집을 통하여, 독자에게 예술이 일상 현실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가를 말하려고 하였다. 그미는 상상적 요소를 추적하면서, 오래 전부터 자신이 견지해온 창작 의향을 실현시키려고 하였다. “오늘날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사실을 서술하는 일 그리고 여기에 동화적인 색채를 부여하는 일 - 나는 소설 속에서 무엇보다도 그것을 합치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지상에 없는 존재에 관한 전설들 (Sagen von Unirdischen)」에서 인간과 유사하게 생긴, 고도의 기술을 지닌 외계인들이 지구를 방문한다. 그들은 의뢰인 한 사람을 보낸다. 마리라는 소녀는 그를 대천사 미햐엘이라고 간주한다. 의뢰인은 16세기 농민 혁명의 현실로 빠져든다. 그는 유용한 일만을 추구하려고 애쓰는데, 화가 마티아스의 제단화에 감탄한다. 마티아스는 비록 주위에 궁핍함과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위험을 무릅쓰고 제단화를 완성하려고 한다. 도시가 온통 화염에 휩싸이게 되자, 의뢰인은 마티아스와 그의 딸, 마리를 자신의 우주선에 태운다.

 

백년 후에 외계인 멜히오르는 우주선을 타고 지구에 도착한다. 지상에는 30년 전쟁이 치러지고 있다. 멜히오르는 바로크 음악과 놀라운 회화 작품에 감탄을 터뜨리지만, 주위에는 파괴와 폐허가 자리하고 있다는 데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지상에 거주하는 족속들은 자신의 창조물들을 파괴하고 있구나. 인간들은 우리의 별 사람들이 한번도 성취하지 못한 무엇을 예술적으로 형상화시켰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광분에 사로잡혀 가끔 스스로 창조한 놀라운 예술품들을 파괴하곤 하는구나.

 

이러한 모순을 더 잘 알기 위하여 멜히오르는 끝내 자신의 동료들에게 되돌아가지 않는다. 제거스는 자신이 30년대에 사용한 사이언스 픽션의 모티브를 다시금 활용하고 있다. 이로써 대비되는 것은 인간의 광기 속에 도사린 파괴 충동 그리고 예술 작품 속에 도사린 조화와 완전성에 대한 동경 바로 그것들이다. 멜히오르는 인간의 모호한 특성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신과 같은 우월성을 상실한다. 그의 후예들은 놀라운 유토피아의 예술적 권능을 기술적 권능과 결합시킨다.

 

「약속 지점」에서 친구 두 사람은 어떤 거사를 일으키기로 약속한다. 그들은 히틀러의 권력에 저항하는 공산주의자들로서, 무장 테러를 일으키려고 약속한다. 그러나 에어빈은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고 돌아선다.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동지들을 배반하게 되는 것이다. 에어빈은 과연 거사가 실제로 이루어졌는지 전혀 모른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끊기게 되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 에어빈은 비상 사태를 위한 약속 지점에 가까이 접근한다. 기이하게도 날짜와 시각이 과거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사를 일으키려던 바로 그 친구가 아닌가? 이때 에어빈은 자신의 비겁한 행동을 털어놓으며, 친구에게 용서를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친구는 에어빈의 말문을 가로막고, 당시에 위험 신호를 보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거사에 관해서 아무 정보도 나누지 못하고 그냥 헤어진다.

 

거사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자신의 두려움 그리고 용기 없는 태도는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 왔다. 에어빈은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의 죄의식을 털어놓으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편지는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온다. 과연 이 소설이 발터 얀카의 체포 사건에 대한 제거스의 무책임하고 용기 없는 태도와 무관한 것일까? 이에 대해 분명하게 답하기란 몹시 어렵다.

 

여행의 만남 (Reisebegegnung)」에서 세 명의 작가는 어느 지점에서 마주친다. E. Th. A. 호프만 (1776 - 1822), 고골 (1809 - 1852) 그리고 카프카 (1883 - 1924)는 다른 세대의 사람으로서 서로 상종했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제거스는 이들이 1922년 프라하의 어느 커피숍에서 가상적으로 만나는 것으로 서술한다. 세 명의 작가는 꿈과 현실 사이의 관계, 상상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에 대한 형상화, 예술의 과업과 예술가가 처함 위험성 등에 관하여 토론을 벌린다.

 

세 명의 작가들은 제각기 시대적 변환기에 처해 있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관리로,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로 살아야 하는 이중적 존재에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그로테스크의 방법을 동원하여 교묘하게 관료주의의 횡포를 비판한 바 있다. 그들이 주어진 현실을 비판하고 이를 풍자적으로 다루게 된 것도 바로 자신의 개별적 삶의 비극에 기인한다. 카프카와 고골에게는 어떤 악몽적 특성이 온통 현실을 규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카프카는 고골과 마찬가지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속에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카프카의 작품 속에는 어떤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에 반해서 호프만은 실제로 예술과 삶 사이의 종합을 성취한 것 같아 보인다. 그는 다른 두 작가와는 달리 난관을 돌파할 것을 요구한다. 

 

제거스는 이러한 여행을 통하여 문학사에서 고증될 수 있는 내용과 가상적인 내용을 뒤섞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를 곰곰히 생각한다. 아울러 역사를 의식하며, 자기 자신을 비판하기도 한다. 예술 철학에 관한 상기한 토론을 통하여 작가는 자신의 고유한 예술적인 창조 방식을 반영한다. 이는 제거스의 톨스토이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에세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제거스의 문학은 한편으로는 “마력”, “에너지” 등에 의해 야기된 변모의 유형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소외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술이 필연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동시에 제거스는 실제 현실보다도 더 막강한 예술적 현실을 창조하기 위하여, 동화적 상상적인 요소를 동원하였다. 제거스의 이러한 입장은 문학 작품 속에 소극적으로 반영되었으나, 나중에 크리스타 볼프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수용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