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Bloch 흔적들

블로흐: 은폐된 위대한 인간성 (3)

필자 (匹子) 2021. 1. 1. 10:13

이야기에 등장하는 기인은 처음에는 잘못된 것 같으며, 어떤 증상을 보여주다가, 나중에는 마치 수수께끼처럼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치자크 라이프의 외적인 모습이라든가 평소의 행실 또한 어떤 놀라운 품격을 보여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서 성자에게서 엿볼 수 있는 선하고 훌륭한 특징을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최상의 경우 그가 삶에서 어떠한 결실을 맺을지를 유추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명료하게 인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장삼을 타고 물위로 방황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증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 위의 여행은 랍비들의 카발라 세계에서는 주지하다시피 놀라울 정도의 마력적 초능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성스러움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해석될 수 없다.

 

톨스토이의 인민 동화 「세 노인」 역시 많은 부분에 있어서 앞에서 언급한 하시디즘 이야기와 공통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세 노인은 주 기도문을 배우기 위해서 대양에 떠 있는 선박으로 향했는데, 이때 그들은 초능력을 발휘해서 바다 위를 성큼성큼 걸어왔던 것이다. 그들의 성스러운 행위는 처음부터 결정된 것이었다. 말하자면 세 노인은 이미 믿음과 축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으며, 천국의 천사들처럼 찬란한 빛을 퍼뜨리고 있었다.” 톨스토이가 서술하는 세 명의 노인은 마치 경건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후광을 드러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곁에 서성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어떤 비밀스러운 열쇠가 치자크 라이프의 익명 존재 속에서 드러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그가 살고 있는 집을 가리키면서 이 속에 실질적인 비밀의 열쇠가 도사린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치자크 라이프는 한 번도 문을 열고 “천사의 문”을 열어젖히지 않았다. 아니, 그의 행위는 이에 절반도 못 미치고 있다. 어쩌면 천사의 문은 실제 현실에 자리할지 모른다. 인간의 삶은 현명한 인간 내지 성자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러한 특징은 철저하게 은폐되어 있다. 어쩌면 성스러움은 우리 자신 앞에서 감추어져 있다. 바로 이 점이야 말로 하시디즘의 핵심적 사항이 아닐 수 없다. 성자들은 자신이 “위대하다”고 어렴풋이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이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성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마지막 예식과 관련된다. 이른바 “완전무결한” 인간은 하나의 익명존재로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심리적, 사회적 종교적인 강령과는 전혀 다르거나 무관하다. 바로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한 이야기는 결코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하시디즘의 이야기는 우리를 그야말로 설레게 하고, 통상적 기준에서 벗어나는 어떤 가르침으로 우리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이다.

 

물론 확고한 인성, 신뢰할만한 면모 그리고 이러한 면모의 방향성 등은 세상에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들 역시 아직 완결되지 않은 채 자신 앞에서 조우할 수 있는 마지막의 비결정성에서 유래하는 무엇이다. 확고한 인성, 신뢰성 그리고 그 방향성은 마무리되어 있지만, 폐쇄되어 있지 않다. 어떠한 의미심장함도 이러한 엄격한 개방성으로부터 마지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거대한 성스러움은 스스로 너무나 강인한 눈길을 지니므로, 인간의 시각으로는 아직 분명히 투시될 수 없다. 랍비 라파엘은 처음에는 이에 대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으나, 나중에는 추론했을 뿐, 이를 인식하지는 못했다. 언젠가 톨스토이는 말했다. 사람들은 빠르든 이르든 간에 모든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되면 인간은 자신이 어디로 향해 나아갈지 절반 정도, 혹은 완전히 알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었던 특성인 은폐는 마치 면사포처럼 벗겨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가능성이 찬란한 광채를 드러낼지 모른다. 그것은 인간적인 광채로서 인간 본연의 위대한 불꽃으로 장려하게 피어오를 것이다. 톨스토이는 우리 모두가 궁극적으로 향하게 되는 열쇠로서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죽음만으로는 감추어져 있는 인간적 위대함을 말하기에는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