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란 8

파울 첼란: "여행중에"

파울 첼란 (1920 - 1970)은 (본명: 파울 안첼) 1920년 부코비나의 체르노비츠에서 태어나, 1970년 프랑스 파리에서 자살하다. 그의 부모는 유대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이유로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 살해당하다. 그의 아버지는 1940년 티푸스에 걸려, 그의 어머니는 총살당하다. 첼란은 1938년부터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의학을 공부하였고, 1939년 이후로 체르노비츠에서 라틴어문학을 전공하다. 1942년 독일 군이 부코비나를 점령했을 때 도로 포장공사를 위한 강제 노동에 징집되었는데, 전쟁의 와중에서 살아남았다. 1947년 첼란은 비인을 거쳐 파리로 여행하다. 그 후에 그는 번역가로서 그리고 대학 강사로 일하면서 살다. 1950년 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한 뒤에 많은 훌륭한 시를 발표하였다. 여행..

21 독일시 2022.02.19

로베르트 무질

"헤르만 브로흐 그리고 로베르트 무질이 없으면, 오스트리아 문학도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 정도로 무질이 오스트리아 문학에 기여한 바는 큽니다. 로베르트 무질은 1880년 오스트리아의 클라겐푸르트에서 공대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권고로 그는 오스트리아의 군사아카데미에 다녔으며, 이곳에서 기계 공학을 공부하여 엔지니어 자격 시험을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23세가 되는 시기까지 그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행하는 범생이 아들이었습니다. 사진은 클라겐푸르트에 위치한 로베르트 무질의 생가입니다. "Am 6. 11 1880 wurde in diesem Haus der Dichter Robert Musil geboren." 이렇듯 작가는 생전에는 부와 명성을 누리지 못하다가, 죽은..

9 문학 이야기 2022.01.19

서로박: 싱거의 "적들 어느 사랑의 이야기" (2)

(7) 죽었다고 믿었던 아내가 살아서 돌아오다: 그런데 어느 날 타마라가 그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타마라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습니다. 타마라는 갖은 고초를 다 겪고, 이곳 미국까지 남편을 수소문하여 찾아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헤르만은 마샤에게 평생 함께 살자고 약속했던 터였습니다. 이제 자신만을 생각하고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찾아온 첫 번째 아내를 문전박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폴란드에서 어려운 시기를 함께 지내던 조강지처가 바로 타마라였던 것입니다. 헤르만은 살아서 돌아온 타마라를 부둥켜안고 시간가는 줄 모르는 채 눈물을 흘립니다. 이 일이 발생한 이후로 주인공은 세 명의 여자와 동시에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31 동구러문헌 2021.12.16

모제스 로젠크란츠, 혹은 아우슈비츠 이후의 시쓰기 (3)

7. 얼마 지나지 않아 파울 첼란은 심리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는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표절 시비 때문이었다. 가령 이반 골 (Ivan Goll, 1891 - 1950)의 아내, 클레어 골은 첼란이 1953년에 간행된 시집 『양귀비와 기억』에서 죽은 남편의 시구를 마구 베꼈다고 주장하였다. 시적 표현들은 우연히 비슷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작가는 다른 작품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작품을 쓸 수도 있다. 굳이 잘못 아닌 잘못을 찾는다면 그것은 체험현실이 동일하다는 데에서 발견되는 문제일 것이다. 예컨대 누군가 전후 독일 문학에서 명작으로 손꼽히는 시, 귄터 아이히 (Günter Eich, 1907 - 1972)의 「소지품 목록」이 체코의 시인 리하르트 바이너 (R. Weiner, 1884 - 1937)의..

22 외국시 2021.10.21

모제스 로젠크란츠, 혹은 아우슈비츠 이후의 시쓰기 (2)

4. 아도르노는 루마니아 출신의 노시인의 작품을 읽고 무척 놀라워했다. 시편들은 간결하지만, 주어진 사물과 사건을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다. 정교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생경한 표현, 그것은 어쩌면 “독일 고전주의의 일그러진 일면” (E. Kanterian)을 보여주는 듯하였다. 고색창연한 것 같으면서도 진부하지도 않고, 투박한 생명력이 곳곳에 배여 있었다. 그런데 시편 가운데에는 「피의 푸가」라는 게 있지 않는가? 시편을 읽으면서 아도르노는 자신의 놀라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아도르노는 로젠크란츠 부인의 부탁을 이행하겠노라고 구두로 약속한 뒤에, 그녀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낸다. 즉 한 가지 조건만 충족시킨다면 남편의 시편의 발표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게 편지의 내용이었다. 한 가지 조건이란 어떠한 ..

22 외국시 2021.10.21

모제스 로젠크란츠, 혹은 아우슈비츠 이후의 시쓰기 (1)

“아내여, 내가 죽으면, 당신에게 유산으로 남길 게 있어. 그건 나의 발이야. 내 발은 아주 억세고 잘 생겼어. 동쪽 발이거든. 서유럽에서는 이런 발을 볼 수 없을 거야. 어릴 때는 맨발로 눈 덮인 들판을 뛰어다녔고, 수감되어 있을 때는 동토의 땅을 맨발로 걸어야 했어. 거기에는 자갈과 뾰족한 돌들이 많았지. 고문 형무소에서, 우라늄 탄광 속에서도 나의 발은 한 번도 다친 적이 없거든. 발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고난의 삶을 헤쳐 나오지 못했을 거야.” 모제스 로젠크란츠 (Moses Rosenkranz, 1904 - 2003)는 95세 생일에 그렇게 말했다. 로젠크란츠는 1904년 부코비나의 작은 마을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유대인의 여섯 째 아들로 태어났다. 소외감, 가난, 냉대 등은 그의 입을 굳게 다물게..

22 외국시 2021.10.21

서로박: 짧은 만남과 오랜 이별, 첼란과 바흐만 (2)

첼란과 바흐만, 그들은 언제나 헤어져 있는, 그러나 항상 마음속으로 함께 지내는 친구이자, 연인이자, 동료이자 반려였다. 1958년에 두 사람은 우연히 독일의 부퍼탈에서 다시 만납니다. 이때 두 사람의 마음을 격렬하게 스치는 것은 아직 꺼지지 않은 사랑의 훈풍,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바흐만은 지난 6년 동안 마치 재능 있는 집시 여인처럼 살았습니다. 그동안 문학상도 여러 개 받았고, 여성 시인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습니다. 첼란은 그동안 지젤과 결혼하여 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많은 재산이 있었으므로, 물질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문턱에서 문턱으로』라는 시집으로 저명한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부퍼탈에서 만난 뒤부터 첼란은 그미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사..

9 문학 이야기 2018.04.16

서로박: 짧은 만남과 오랜 이별, 첼란과 바흐만 (1)

친애하는 J, 자고로 주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불가능한 사랑은 당사자에게 극도의 고통을 가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당사자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하고, 주어진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게 하기도 합니다. 파울 첼란 (1920 – 1970)과 잉게보르크 바흐만 (1926 – 1973)역시 죽는 날까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947년 초에 상대방에 대해 애호의 감정을 품습니다. 한 사람은 27세의 젊은 사내였으며, 다른 한 사람은 21세의 처녀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불꽃은 순간적으로 격렬하게 타올랐지만, 주위의 거친 바람 때문에 마냥 꺼지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역사적 아픔 내지 비극적 상처가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개인적 사랑은 어처구니없게도 깊은 역사적 상..

9 문학 이야기 2018.04.16